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금낭화2
금낭화2 ⓒ 김규환
이현세 님의 만화<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를 아십니까?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 ⓒ 김규환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젊은 부부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효성이 지극하였지만 시어머니는 늘 못 마땅해 했습니다.

시아버지의 제삿날. 아무리 가난해도 제사에는 쌀밥을 올려야겠기에 그동안 아껴두었던 쌀을 꺼내 솥에 앉혔습니다. 밥이 거의 다 되어 갈 무렵 익었나 보려고 며느리가 솥뚜껑을 열어 밥알 두 개를 막 입에 넣으려 할 때였습니다.

밖에서 몰래 엿보고 있던 시어머니는 솥뚜껑이 열리는 순간 부엌으로 달려와 "어른이 잡숫기도 전에 먼저 먹다니!" 하며 몽둥이로 사정없이 며느리를 때렸습니다. 며느리는 그만 밥 알 두개를 입에 문 채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며느리의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며느리밥풀꽃'입니다. 새색시 얼굴 마냥 연분홍 꽃 아래 하얀 밥풀 모양의 무늬가 있어 이런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며느리밥풀꽃은 '잣나무털녹병'의 기주식물인 '송이풀' 등과 함께 현삼과에 속한다. 현삼과 식물은 7-8월 꽃을 피운다.

금낭화1
금낭화1 ⓒ 김규환
금낭화 관찰하는 행운을 얻고...

이런 한을 품은 '며느리밥풀꽃'을 빼 닮은 꽃이 하나 있다. '금낭화(錦囊花)'다. 경기 북부와 강원 산악 깊은 골짜기에 자생하는 꽃 금낭화. 청계천에도 심어진 꽃 금낭화 말이다.

가평 유명산 자락에서 97년부터 3년 간 농사지으며, 총각 홀로 민박을 치며 살 때 직접 만든 꽃밭에도 금낭화가 있었다. 봄에 못 가져간 꽃을 캐 가는 날이었는데 전에 살았던 아주머니께 간곡히 부탁해서 한 그루만 남겨두시라고 했더니 다 캐가고 한 포기 남겨두고 간 것이다. 그 날로 나는 금낭화 관찰에 들어갔다.

꽃밭에 들국화 감국(甘菊)만 없었더라면 1만 포기가 넘게 번졌을 지도 모르게 번식력도 대단했다. 뿌리로도 퍼지지만 씨로 번식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다. 열매가 익어 씨가 생기는 족족 팥처럼 생긴 자루에 든 예닐곱 개나 되는 씨가 톡톡 벌어져서 바닥에 떨어진다. 짧은 휴면기 만을 거치고 이내 움을 틔워 이듬해에는 뿌리로 성장하는 대단한 것이었다.

곳곳에 깔린 애기똥풀
곳곳에 깔린 애기똥풀 ⓒ 김규환
다음해 여린 풀이 고개를 내밀더니 '애기똥풀' 처럼 금새 자라서는 분홍꽃이 줄줄이 피었다. '이제 못 보겠지' 하고 그만 단념할까 생각하고 보기를 포기할라치면 다음날 이슬을 먹고 끝마디에 꽃눈을 틔워 피워댔으니 낯 선 동네에서 산 첫해 색시 없는 총각이 날마다 그 꽃에 매료되어 시름 잊고 지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서울로 이사 나온 뒤에도 잊지를 못하고 봄만 되면 그 꽃밭을 찾았지만 금낭화는 누군가 캐가고 없었다. 내 땅 조금이라도 마련하면 가장 먼저 맞아들일 꽃 금낭화. 금낭화 흐드러지게 핀 꽃밭을 만들 것이다.

금낭화3
금낭화3 ⓒ 김규환
낯선 동네에서 산 첫해 색시 없는 총각이 날마다 그 꽃에 매료되어 시름 잊고 지내

며느리밥풀꽃과 차이라면 금낭화는 4월 말 부터 핀다는 것과 양귀비과(楊貴妃科)라는 점, 그리고 줄기 섬유질이 거의 없어 만지면 줄기 속이 비어있어 흐느적거리며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금낭화는 양귀비과의 다년생 꽃으로 야생으로 자라지만 요즘 갈수록 관상용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줄기 높이는 40∼50cm로 전체가 흰빛이 도는 녹색이다.

꽃은 봄에서 여름에 걸쳐 분홍 꽃이 원줄기 끝에서부터 주렁주렁 피기 시작하여 계속 생성되면서 연이어 피기 때문에 길게는 두 달 가량 핀다. 한쪽에서는 씨가 익고 끝에서는 꽃이 피는 걸 볼 수 있다. 네 잎이 모여 비단 주머니 같은 모양을 이루는데 그래서 금낭화라고 불린다.

'며느리취'라고도 하는데 어린 싹이 나는 이른 봄 나물로 데쳐서 먹기도 한다.

금낭화4
금낭화4 ⓒ 김규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