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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표지
<초의> 표지 ⓒ 김영사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쓰고 소설을 쓰고 있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 한승원(64)이 조선 후기 대선사이자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1786-1866)의 삶과 사상을 다룬 장편역사인물소설 <초의>(김영사)를 냈다.

초의선사는 선(禪)과 유학, 학문과 예술,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던 대자유인으로 걸림돌이 없는,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선지식'으로 평가받는 선승이다. 초의선사의 속세의 성은 장(張)이며, 자는 중부(中孚),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초의(艸衣)는 그의 호.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한승원 문학의 뿌리는 고향인 장흥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뜬금없이 초의선사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을까. 1997년에 고향으로 훌쩍 내려간 작가 또한 초의선사의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을 깨달아,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느끼고 있는 중이란 말인가.

다선일미사상 ? 근데 다선일미사상이란 무엇이며, 법희선열(法喜禪悅)은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다선일미사상이란 차와 선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법희선열이란 법을 알아들음으로 기쁨을 느끼고 참선을 함으로서 기쁨을 느낀다는 그런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선일미사상 법희선열(茶禪一味思想 法喜禪悅)이라는 말은 차와 선이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하나이듯 법과 선도 별개가 아니라 하나이며, 그러한 하나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법과 선이 기쁨이니, 저절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서 최고의 즐거움(열락, 悅樂)을 느낀다는 그런 뜻이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 작가 한승원은 어떻게 살고 있어? 낮에는 해산토굴에 들어가 해산토굴 앞 연못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글꽃을 피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대. 그리고 밤이 되면 지네를 잡아 유리병에 넣어 키우며 살고 있대. 그러면 다선일미가 아니라 문선일미(文禪一味)잖아?

그게 아냐. 지금 그곳에 가면 작가가 사는 해산토굴 주위에는 온통 차향으로 그득하대. 어째서? 작가 스스로 차를 덖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그동안 작가가 차를 다루는 법을 누군가에게 전수라도 받은 모양이지? 그게 아냐. 작가가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공부한 덕분이래.

그렇다. 작가 한승원이 <초의>라는 장편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는 고향인 장흥으로 내려간 뒤 초의선사의 흔적을 찾아 해남 대흥사 일지암을 비롯한 강진의 다산초당, 무안의 삼향마을, 지리산 칠불암, 나주 운흥사 등을 3년 동안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또 초의선사와 교유가 깊었던 다산 정약용 선생과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해거도인 홍현주, 소치 허련 등 초의선사가 살았던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시문집들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 뒤 작가는 마침내 자신도 모르게 그윽하고 향기로운 다선일미사상에 빨려들었다. 그리고 썼다.

<초의>는 초의선사의 삶과 사상을 새롭게 되살려낸 장편소설이다. 또한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의선사의 유년시절과 출가 직후 3년간의 행적까지도 낱낱히 찾아냈다. 게다가 작가는 지난 1998년에 초의선사와 선승들의 이야기를 담은 <스님의 맨발>이란 수필집을 펴낸 적도 있다.

16세에 출가한 초의선사.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과 도교에도 통달했고, 범서(梵書)에도 능통했다는 초의선사. 우리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불법을 구하고자 노력한 초의선사. 선사는 자신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둔사의 동쪽 계곡에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을 홀로 정진하다가 어느날 문득 구름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1866년 80세, 법랍 65세.

작가 한승원은?
1997년 고향 장흥으로 내려가

작가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8남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로부터 <명심보감>을 배웠다. 1954년에 고교에 입학, 당시 문예부장이었던 소설가 송기숙을 만나 교지 <억불>을 창간, 수필을 발표하면서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1966년에는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되었고, 1968년에는 <대한일보>에 '목선'이 당선되었다. 소설집으로는 <한승원 창작집>(1972) <앞산도 첩첩하고>(1977) <여름에 만난 사람>(1979) <신들의 저녁노을>(1980) <신화>(1981) <불의 딸>(1983) <포구>(1984) <우리들의 돌탑>(1989) <해산 가는 길>(1997) 등이 있다.

수필집으로는 <허무의 바다에 외로운 등불 하나>(1993) <키 작은 인간의 마을에서>(1996) <스님의 맨발>(1998) 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열애일기>(1991)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1995)가 있다.

한국소설문학상(1980), 대한민국문학상(1982), 한국문학작가상(1983), 현대문학상(1988), 이상문학상(1988), 한국해양문학상(1997)을 수상했다. 또 2002년에는 <아버지와 아들>로 미국의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을 받았다. / 이종찬 기자
초의선사는 시와 그림, 선, 삶과 우주를 아무런 걸림 없이 넘나들었던 당대 최고의 선승이었다. 초의선사는 당시 '호남 칠고붕'으로 추앙 받은 뛰어난 선승이자 선지식이었으며, 범패, 탱화, 단청, 바라춤에 이르기까지 그의 다재다능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초의가 25세 되던 때에는 20여 년이나 연상인 다산 정약용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그때 극도로 불안했던 시대적 상황에 맞닥뜨린 다산 정약용은 초의선사와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할 정도였으며, 초의선사 또한 다산을 '정신적인 아버지'로 극진하게 모셨다.

초의선사는 추사 김정희와도 만난다. 이후 초의선사와 추사와의 우정은 추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끈끈하게 이어진다. 또 당대의 천재였던 초의와 추사는 사상과 선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한다. 하지만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 초의는 제주도까지 직접 찾아갈 정도로 우정에는 결코 변함이 없었다.

초의선사는 운흥사 행자 시절에 다감 스님에게 차 기르는 법과 따고 덖는 법 등을 전수받는다. 이후 43세가 되었을 때 은사의 부름에 따라 청나라 모문환이 엮은 만보전서 중 <다경요채>에서 '차 제대로 마시는 법'을 초록해 <다신전>을 저술한다. 그리고 52세 때에는 해거도인 홍현주의 부탁을 받고 그 유명한 <동다송>을 펴낸다.

초의선사는 차를 제대로 잘 마시는 것이 곧 삶을 제대로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다송에 나오는 다선일체(茶禪一體),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삼매(茶禪三昧)도 바로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동다송>에는 차에 대한 전설에서부터 차의 효능, 생산지에 따른 차 이름과 품질, 차 만드는 일, 물에 대한 평, 차 끓이는 법, 차 마시는 구체적인 방법 등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초의>에서 작가 한승헌은 입적을 앞둔 초의선사의 현재와 초의의 어린 시절부터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과거를 자유스러이 오가며 초의선사의 일생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간다. 마치 책을 읽는 사람이 금방이라도 초의선사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초의선사가 출가한 비밀이 담긴 부분은 이 책의 백미다.

어린 시절에 초의는 집 근처에 있던 연못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때 근처를 지나던 한 스님이 초의를 구했다. 소설 속의 그 스님은 운흥사의 벽봉 민성 스님이다. 민성 스님은 그 인연으로 초의를 출가시킬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초의는 그보다 훨씬 지난 16세에 출가한다.

특히 이 부분에서 작가 만의 탁월한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여기에서 연못은 상징적인 의미로 비쳐진다. 또 그 연못 속에는 하늘과 구름이 들어와 있고, 늙은 적송과 산과 대숲 같은 연못 밖의 세상 그리고 또 하나의 얼굴도 들어 있다. 이후부터 초의가 바라보는 세상은 확 달라진다.

"어제의 그는 죽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발에 밟히는 그림자와 그 자신이 바뀐 양 어제의 그림자가 오늘의 자기가 되고, 어제의 자기는 오늘의 그림자가 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 역병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운흥사로 가려는 초의를 나룻배에 태워준 어느 아낙이 동전 두 닢을 초의에게 주면서 '먼 훗날 그 돈 받을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오' 하고 남긴 말이다. 이 말은 소설 <초의>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동기 부여이자 초의선사의 영원한 화두가 된다.

여기에서 작가는 초의선사가 그때 그 아낙이 쥐어준 동전 두 닢을 이 세상에 되돌려주기 위해 세속을 떠도는 것처럼 소설을 이끌고 나간다. 또 초의를 연모하다가 마침내 출가를 하는 비구니 니지 현순 스님을 등장시킴으로써 이 책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나열식 기록이 아니라 한 편의 진정한 창작품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준다.

초의

한승원 지음, 김영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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