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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농협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쌀을 포장하고 있다.
옥천농협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쌀을 포장하고 있다. ⓒ 이승후
옥천농협은 생산자인 농민과 함께 품종선택부터 재배, 수확,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옥천농협은 '한눈에 반한 쌀'이라는 상품을 전국의 백화점과 할인점에 직접 납품하여 농가소득 증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내놓을게 쌀 밖에 없어 이 악물고 승부수를 걸었다"

옥천은 해남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해있지 않아 오로지 쌀과 보리밖에 경작할 것이 없었다. 사정이 열악하다보니 자연히 농협을 중심으로 활로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말단 직원시절부터 '고품격 쌀' 생산 계획에 매달려온 임창석(42) 상무는 "89년 우르과이 라운드(UR) 소식을 접하고 변변한 특수작물 하나 없는 우리 지역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집디다"하며 '고품격 쌀'을 개발하게된 동기를 설명했다.

임 상무는 '마냥 앉아서 죽기는 억울해서' 브랜드 쌀로 승부를 걸기로 결심하고 우선 단위 면적당 생산량 향상과 직거래를 위한 유통구조 단순화 작업에 착수했다. 다행히도 옥천은 내륙분지 지형 특유의 큰 일교차와 비옥한 토지, 풍부한 수자원 등 쌀 재배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991년 일본에서 '히도메보레' 품종을 도입해 종자를 지역 특성에 맞게 개량하고 부족한 농가일손을 경감할 수 있는 직파 재배 기술을 병행시켰다. 또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배급한 퇴비와 목초액, 키토산을 투입하는 친환경농법을 통해 '땅심'을 키워 일반 쌀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물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왜 하필이면 일본계 품종을 쓰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 농업진흥청과 언론에서 이와 관련한 질책이 연일 나왔다. 임 상무는 "UR에 대비해 정부방침마저 없는 상태에서 홀로서기로 몸부림칠 때 도움은 못줄 망정 종자문제로 발목을 잡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며 "많은 품종 중 옥천 토양에서는 '히도메보레'가 가장 좋은 밥맛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거 하나 믿고 이 악물고 버텼다"고 회상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철저한 품질관리와 마케팅으로 소비자 만족 추구

아무리 좋은 쌀을 생산하더라도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없으면 시장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옥천농협은 생산단계서부터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농협과 다른 관리체계를 구축했다.

보통 농협은 농민이 생산한 쌀을 수매하고 도정공장에서 가공해서 유통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옥천농협은 품종사전고시→생산지도→수매→가공→유통의 5단계 관리시스템을 적용시켜 품질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또 가공일로부터 15일이 지나면 쌀에 백태가 끼어 찰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15일이 지난 쌀을 소비자가 구입하면 100% 교환해주는 리콜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옥천농협은 '유통부장' 직제를 신설하는 한편, 전산시스템을 도입하여 발주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출하가 가능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밥맛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다.

옥천농협은 쌀의 품질뿐만 아니라 독특한 마케팅으로도 유명하다. 옥천농협은 대도시 가족의 형태를 분석하고 평균치를 계산한 결과 '대도시 핵가족 2인 가족이 1주일 먹을 분량'을 기본 판매단위로 결정했다.

그 결과 1994년 전국최초로 3kg으로 포장된 '한눈에 반한 쌀'이 출시됐다. 다른 상품이 20kg에 4만원을 받는 것에 비해 '한눈에 반한 쌀'은 10kg에 4만원을 받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이승후
옥천농협은 고품격 쌀의 성공으로 2002년 239억 원의 사업실적을 올렸고 20억 원의 농가지원 효과를 기록했다. 또 지난해에는 전국최초로 계약재배 면적을 관내 모든 생산면적으로 확대해 전량 수매했다.

임 상무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 앞으로 수입개방 조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란 질문에 "우리는 품질에 자신 있다"며 "오히려 이번 기회에 세계 쌀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야무지게 답했다.

옥천농협에 남겨진 과제

하지만 옥천농협의 앞길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재 옥천농협 3100여 명의 조합원 중 70% 이상이 70대 이상의 고령자이며 그 중 32%가 여성농민들이다. 이는 옥천농협의 생산성 향상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 규모가 커질수록 수매가는 낮아져 실질적인 농가소득의 상승률도 둔해지고 있다. 옥천농협 조합원 윤모(40)씨는 "옥천농협의 성과와 노력은 충분히 인정한다"며 "다른 농협보다 수매가가 높지만 점점 계약가격이 낮아져 이러다가 수매가가 생산비를 조금 웃도는 수준까지 떨어지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걱정스럽게 얘기했다.

또 다른 윤모(42)씨도 "다른 농협의 경우 쌀을 생산해도 판로가 없어 쩔쩔매는 것을 보면 우리는 훨씬 낫다"면서도 "그래도 농민들에게 혜택을 더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존폐위기에 처한 농업문제를 일개 단위 농협이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농협 개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지금 옥천농협의 성공사례는 질타받는 다른 농협들이 면밀히 살펴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농협이 진정으로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난다면 칼끝에 서있는 우리나라 농업의 숨이 조금은 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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