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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현이 쓴 이 책은 우리나라의 도시 이곳 저곳을 꼼꼼히 살펴보고, 거기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 건축가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 등을 밝힌다.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가장 처음 대면하게 되는 저자의 서문은 조금 충격적이다.

"거짓말이다. 우리나라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그가 이처럼 매우 냉소적이고 직설적인 단정을 내리는 까닭은 도시 곳곳에 상업자본주의가 필요 이상의 힘을 휘두르며 존재하고 있는 우리 도시 문화를 안타깝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도시를 설계하고 시공하는 존재이지만, 사실 그 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다. 도시의 모습 속에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의식과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정책자들, 그리고 실제 건물과 도로, 도시 모습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들의 생각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한국 도시들의 모습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주변의 경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지어진 건물들, 주차장 시설이 부족하여 인도에 주차를 하는 강남의 도시 풍경들, 미적인 감각은 전혀 없이 자본가의 논리에 의해 층층이 쌓아 올려진 네모난 아파트들.

종로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교보 생명 사옥에 붙어 있던 한 시인의 시를 언급한다. "모여서 숲이 된다. 나무 하나 죽이지 않고 숲이 된다. 그 숲의 시대로 우리는 간다" 그러면서 "건물은 도시를 이루는 나무"인데, 아름다운 숲을 이루지 못하는 제각각의 나무들에 대한 서운함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나 하나의 건물들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숲을 이루고 서 있는 종로의 모습을 잘 조명해 주는 표현이다.

'수원 화성'은 전통적인 건물의 가치를 무시하고 함부로 파괴하는 현대 도시 개발의 난폭한 횡포를 극명히 드러내준다. 세상의 어떤 나라에서 고성을 함부로 부수고, 그 틈바구니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비집고 들어가는가?

화성행궁과 각 문들은 모두 절단되고 분해되어 곳곳으로 흩어져 있다. 정조의 야심과 노력이 깃들여진 이 옛성은 그 웅장한 모습 대신, 중간 중간에 간선도로가 들어서 있고, 현대적인 건물들과 주거 단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통을 고려한다는 것은 김포공항청사나 전주의 톨게이트 지붕을 기와집으로 흉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어설픈 흉내내기는 "초췌하고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이며, 의미 없는 민속촌의 무대 장식과 같은 엉터리"에 불과하다.

진정한 전통을 고려한다면 기존의 것을 제멋대로 부수고 없애는 행태부터 없애야 할 것이다. 저자는 또 다른 안타까움을 인사동 얘기를 통해 풀어간다. 옛것을 보존하고 전통을 살린다면서 옛집들을 없애고 들어선 것은 현대적인 건물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커피 전문점이다. 무엇이 전통이고 보존인지를 의심하게 하는 도시 정책들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한강의 다리들도 일관성 없는 도시 정책들을 보여 주는 좋은 대상이다. 한강에 놓여 있는 다리들의 모습을 보면, 짧은 기간 동안 '성장'에만 심혈을 기울여 온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어느 다리 하나 미적인 아름다움은 고려되지 못한 채, 서로 간의 통일성과 일관성은 무시된 채 한강을 지키고 서 있다. "다리는 강의 얼굴"이라는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한강을 바라볼 때에 다리와 함께 바라보는 데도 말이다.

우리 도시의 문제점들을 시원하게 지적해주고 개선점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진실한 건축가의 도시 곳곳을 바라보는 세심하고 애정 어린 시각에 감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진실한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정책자들과 시민들이 있다면, 우리 도시의 모습도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효형출판(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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