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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는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 가운데에서도 당대의 사회상을 가장 민감하게 그려 내는 것으로 꼽힌다. 1930년대에는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들이 있었고, 1940년대에는 광복의 기쁨과 분단의 슬픔을 담은 노래들이 있었으며, 1950년대에는 전쟁의 비극과 빈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노래들이 있었으니, 확실히 노래가 세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지나친 말은 아니다.

각 시대마다 유행하거나 문제작으로 꼽힌 노래들을 한번 훑어보면 그대로 우리나라 현대사의 큰 줄기를 파악할 수 있다. 1960년대의 첫머리를 연 일대 사건인 4ㆍ19 혁명 역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지금은 대부분 단편적인 흔적조차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잊혀졌지만 4ㆍ19 에서 5ㆍ16에 이르는 1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각도에서 4ㆍ19 혁명을 묘사한 유행가들이 발표되었다.

<광명의 4ㆍ19 >(정종원 노래ㆍ대도 레코드 발매)나 <못 잊을 4ㆍ19>(남성봉 노래ㆍ아세아 레코드 발매) 같은 작품은 제목에서 이미 4ㆍ19 혁명을 소재로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혁명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남원땅에 잠들었네>(차경철 작사ㆍ한복남 작곡ㆍ손인호 노래ㆍ도미도 레코드 발매)는 4ㆍ19 혁명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김주열을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혁명의 와중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을 묘사한 노래로는 <어머니는 울지 않으리>(월견초 작사ㆍ남백송 작곡ㆍ박애경 노래ㆍ아세아 레코드 발매)와 <어머니는 안 울련다>(반야월 작사ㆍ박시춘 작곡ㆍ황금심 노래ㆍ미도파 레코드 발매)가 대표적인데, 지금도 은방울자매의 일원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 박애경이 부른 <어머니는 울지 않으리>는 애처로운 모정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대사) 장하다 내 아들아 남아답게 싸워서 남아답게 떠났구나 이 어미는 울지 않고 웃으며 살아간단다 영춘아
영춘아 잘 가거라 이 어미는 울지 않으리/ 마산 길은 우리의 길 정의의 길이 아니냐/ 남원에 봄은 와도 너는 다시 못 오련만/ 빛나는 이름 석 자 삼천리 강산 길이길이 남으리라
(대사) 어머니 어머니 불효의 이 자식을 용서하소서 늙으신 어머님을 모시지 못하고 먼저 가는 이 몸은 어머님의 만수무강을 비옵나이다 어머니
영춘아 장하도다 이 어미는 명복을 빌리/ 한번 나서 한번 가는 장부의 길이 아니냐/ 마산에 몸은 지고 너의 혼은 남원 와도/ 강산에 이름 석 자 겨레와 같이 길이길이 남으리라


혁명을 그리고 있다고는 해도 대부분 애상적인 곡조로 지어진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어머니는 안 울련다>와 같은 유성기 음반에 수록된 <사월의 깃발>(반야월 작사ㆍ박시춘 작곡ㆍ남인수 노래ㆍ미도파 레코드 발매)은 혁명의 격정적인 분위기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어 4ㆍ19 관련 유행가 가운데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사월의 깃발이여, 잊지 못할 그 날이여/ 하늘이 무너져라 외치던 민주주권/ 그 주권 찾은 날에 그대들은 가셨나니/ 임자 없는 책가방을 가슴에 고이 안고/ 흘리는 눈물 속에 어린 넋을 잠재우리

사월의 불길이여 피에 젖은 꽃송이여/ 빈 주먹 빈 손으로 쏟아져 나온 교문/ 어른이 못한 일을 그대들은 하였나니/ 민주대한 새 터전에 초석된 어린 영웅/ 조국의 품안에서 고이고이 잠드소서

사월의 태양이여 뭉쳐진 대열이여/ 양처럼 순한 마음 진리는 명령 되어/ 거룩한 더운 피를 그대들은 흘렸나니/ 역사 위에 수를 놓은 찬란한 어린 선열/ 조국의 별이 되어 길이길이 빛나소서


우리나라 가요사에 가장 큰 자취를 남긴 작가인 반야월, 박시춘 짝이 지은 <사월의 깃발>은 4ㆍ19 혁명의 주역인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가수 남인수와 함께 노래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 또한 '가요황제'라 불리며 30년 가까이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남인수(1962년 타계)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 곡이다.

4ㆍ19 혁명을 그린 이러한 유행가들은 대부분 유성기 음반으로 제작되었고 일부는 10 인치 LP 음반에 수록되기도 했으나, 옛 음반이 거의 희귀한 골동품이 되어 버리면서 노래를 직접 들어 보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그나마 12인치 LP음반에도 수록된 <남원땅에 잠들었네>는 종종 들을 수 있지만, 원곡을 많이 수정한 것이어서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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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몇몇 노래들은 근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사월의 깃발>은 지난 2001년에 남인수 팬클럽에서 제작한 <남인수전집>에 유성기 음반에서 뽑은 원곡이 수록되어 있어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되었다.

4ㆍ19 혁명이 5ㆍ16 쿠데타 이후 의거로 규정되어 평가절하됨에 따라 혁명을 그린 노래들 또한 빛을 보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잊혀져 버렸다. 비록 미완이라는 꼬리를 떨구지는 못했지만 4ㆍ19가 다시금 혁명으로 복원되었으니, 이젠 오랜 망각에 싸여있던 당대의 그 노래에도 귀를 한번 기울여 볼 때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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