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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태껸교실 태껸아동들이 남접과 북접으로 나뉘어 왜병을 물리치기 위한 무술연습을 재현하고 있다. 익~!  엇~! 하는 기합소리 우렁차다.
보은 태껸교실 태껸아동들이 남접과 북접으로 나뉘어 왜병을 물리치기 위한 무술연습을 재현하고 있다. 익~! 엇~! 하는 기합소리 우렁차다. ⓒ 전희식
= 그 재미라는 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다고 보는가?
우리가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하는데서 재미가 생긴 것 같다.

= 스스로 정했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이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엔 생각들이 다 달랐다. 그러면 우리는 더 오래 이야기한다.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생각을 바꾼다. 그래도 생각이 다르면 팀을 나눠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식으로 했다.

= 어떤 경우들이 있었나?
금요일 오후에 군청에 가는 팀. 산성에 가는 팀. 이렇게 나누었고 목요일에도 태껸 배우러 가는 팀. 비디오 보는 팀으로 나누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집 안에서 빈둥거리는 팀'으로 만든 적이 있다.

= 회의를 매일 했다고 하는데 회의 때 무슨 이야기를 하나?
정준이형이 진행을 맡는다. 매일 아침에 했다. 주로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당번 정하고 그 날 할 일 정하고 다음날 아침 당번을 정하는 것까지다.

= 그때그때 하루 일과에 대해 차분히 평가나 소감들을 나누었나?
아니다. 전혀 그렇지 못했다.

= 다들 개구쟁이들처럼 장난이 좀 심한 것 같던데?
그랬던 편이다. **이가 부엌에 있는 홍삼가루 엎었고, 아줌마 시계 깨뜨렸고, ## 이가 울은 적이 있고, 표를 살 때 덜렁대다가 어른 표를 사서 돈을 더 낸 적이 있다.

= 울은 경우는 어떤 경우들인가?
피구하다가 공이 얼굴에 맞아 울었던 사람이 둘 있었다. 나도 두 번 울었다.

= 왜 울었나?
한번은 태껸 하다가 발뒤꿈치에 종아리를 얻어맞아서 너무 아파 울었고 또 한번은 친구랑 운동장에서 놀이 할 때 내가 넘어진 채 끌려가다가 배가 긁혀 상처 입어 울었다.

= 그렇게 울게 된 것이라면 다들 오래 울진 않았겠다.
그렇다. 다들 바로 사과하고 또 금세 울음을 그쳤다.

= 어른들도 참여했는데 주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
특별한 거 없다. 아...있다. 국 끓일 때하고 속리산 갈 때 표 사 주신 거하고, 산성 갈 때도 표 사 주신 것들이다.

울산에서 온 16세 솔잎양이 그린 그림이다. 솔잎양은 학교 내내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냈다. 염주를 든 스님과 십자가를 든 목사님이  '6일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모든 신에게 비나이다~' 라고 기원하고 있다.
울산에서 온 16세 솔잎양이 그린 그림이다. 솔잎양은 학교 내내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냈다. 염주를 든 스님과 십자가를 든 목사님이 '6일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모든 신에게 비나이다~' 라고 기원하고 있다. ⓒ 전희식
= 주로 어른들은 너희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 같은데 더 없나?
속리산하고 법주사 가는 것을 제안 해 주신 것도 어른들이 해 준 일이다.

= 평화엽서 쓰기도 도와준 것 같던데?
맞다. 소정이 누나가 도와 주었다.

= 새들이는 평화엽서를 어떻게 썼나?
집으로 엽서를 보냈다. 보면 다 안다.

= 지금 얘기 해 주면 좋겠다.
나는 두 가지 만화를 그렸다. 하나는 엽서를 반으로 나눠서 한쪽은 이라크가 석유가 있는 나라일 때 미국이 공격을 하면서 "우리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 싸운다"라고 말하는 그림과 다른 한 쪽은 이라크가 석유가 없는 나라일 때 미국이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그런 그림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평화라고 그려진 곳으로 안 가고 험하고 먼 길로 돌아다니는 그림인데 '평화는 가까이 있다'고 써넣었다. 부시가 "온 세상을 다 좋은 나라로 만들 거야" 하면서 휘젓는 그런 그림이다.


= 다른 아이들은 평화엽서를 어떻게 만들던가?
정준이형은 "챙길 것 다 챙기면서 반전 얘기 말아라. 평화는 양보에 있다"는 엽서를 만들었다.

= 어른들이 못하게 한 것은?
침대 위에서 뛰거나 자는 시간에 떠들면 그러지 못하게 했다.

= 야단 맞은 적은 없나?
없다. 늦게 잔다고 야단 한 적도 없고 떠든다고 야단 맞은 적도 없다. 다들 자고 있는데 떠들었을 때만 떠들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우리가 싸울 때는 그냥 말리기만 했다.

= 싸울 때도 야단을 안 쳤다는 말인가?
그렇다. "싸우면 안 돼" 라고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는 싸움을 말려 주셨다.

= 어떨 때 싸웠나?
크게 싸운 것도 아니다. 나는 @@이가 오목을 두다가 욕을 해서 싸웠다.

= 자세히 말 해 봐라
오목을 두면서 한 판씩만 두고 지는 사람이 물러나고 교대로 두기로 했는데 @@이는 지고서도 안 물러났다. 내가 왜 안 물러 나냐고 했더니 나보고 '개새끼'라고 했다.

= 그래서 싸웠나?
싸운 것도 아니다. 내가 그냥 "니 소개를 넌 그런 식으로 하냐"라고 했다.

= 그게 무슨 말이냐.
@@이가 개새끼라는 말이다. 걔가 "개새끼"라고 한 것은 자기 소개 한 것이라고 비꼰 것이다.

= @@이는 엄마도 왔지 않는가?
엄마 없을 때 욕 한 것 같다. 욕을 너무 잘 한다.

= 다음에 또 보따리학교 한다면 갈 것인가?
정말 꼭 가고 싶다.

= 왜 그런가? 처음 보따리학교 내가 가자고 할 때는 많이 망설이지 않았는가?
우선 재미있다는 것이다. 여러 친구들이랑 함께 놀면서 생활하는 게 너무 유익한 것 같다.

= 만약에 이번처럼 6일간이 아니고 너희끼리 살라고 하면 그때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자신 있다. 그런데 반찬도 사야 하고 쌀도 사야 하고 돈이 필요할 텐데 우리가 돈을 벌 수 없어서 좀 그렇다.

= 만약에 그런 비용은 부모들이 대 준다면?
그러면 살 수 있겠다.

= 며칠이 아니고 오래 같이 지내도 재미있게 생활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러면. 지식을 익히는 공부나 체력단련이나 그런 것은 어떻게 하려고?
내가 6학년인데 6학년이면 생활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다 배웠다고 본다. 이제 책보고 또 물어보고 하면서 공부하면 다 할 수 있다. 사실 지금 내가 아는 중요한 것들은 다 엄마 아빠 따라다니고 돌아다니고 하면서 배운 것들이다. 친구들이랑 놀면서 배운 것들도 많다.
그리고 책에서 보고 배운 게 훨씬 더 많다. 수학귀신도 읽고 우주가 울렁울렁도 읽고 아빠가 다 알지 않은가. 체력 단련이나 건강은 태껸도 하고 등산도 하고 또 밭에서 일을 하면 된다고 본다.


= 너희들이 회의 때 정한 당번이나 하루 계획이 잘 진행 된 셈인가?
그렇다. 거의 정한대로 다 잘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자기가 할 말을 다 하고서 정한 거라서 잘 지켜진 것 같다.

= 정준이 형한테 너희들이 너무한 것 아닌가? 썩었다고 놀리고 꼬집고 때리고 그랬잖은가?
정준이 형이 좋아서 그랬다. 고등학교2학년 나이 아닌가? 세수도 안 해서 '썩었다'고 놀렸다.

= 이번 보따리학교에서 네가 좋아하게 된 여자친구들도 생겼나?
생겼다. &&이 하고 %%이 하고.

보은읍내 배뜰공원에서 열린 행사장에 아이들은 즉석에서 풍물패를 구성하여 출연했다. 이 아이들은 김창환선생의 지도로 보은군청 항의 방문을 소재로 창작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보은읍내 배뜰공원에서 열린 행사장에 아이들은 즉석에서 풍물패를 구성하여 출연했다. 이 아이들은 김창환선생의 지도로 보은군청 항의 방문을 소재로 창작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 전희식
보따리학교는 '길동무'에서 최초로 구상 한 길거리 대안학교다. 이번이 두 번째다. 충북 보은에 간 것은 보은에서 동학농민혁명 보은집회 110주년 기념 행사가 3일간 열리게 되어 행사의 준비와 진행, 마무리까지 아이들이 함께 하기 위한 취지였다.
전국에서 아이들이 왔다. 강원도와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충청도 서울 등 그러고 보니 제주도 이외의 각 지역에서 다 왔다. 초미라는 아이는 강원도 삼척 원덕읍에서 혼자서 왔다. 이제 10살인 그 어린 소녀가 네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보은까지 혼자서 왔다.

창원에서 대안 초등학교인 '하늘땅학교'를 운영하는 김창환 선생은 아이들을 여러 명 데리고 오기도 했다. 다섯 살바기 취학 전 어린이 한 명을 포함하여 초등생, 중학생, 고등학생 등 열 여섯 명이 참석했다. 모두 홈스쿨 하는 아이인 것은 아니다. 우리 새들이처럼 학교를 빠지고 온 아이들도 많다.

학교에 보내지 않고 아이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 김재형 길동무 대표는 갓 열 살인 딸을 사흘 먼저 보내 놓고 중간에 참석했다. 모든 진행은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것이다. 보따리 학교를 6일 동안 연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모든 일정은 모여 든 아이들이 정한다. 그들이 처음 느끼게 되는 당혹감과 막막함도 아주 중요한 생활정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6일 동안 아이들은 결코 작지 않은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자는 것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어른들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내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작년 12월. 길동무라는 이름으로 조직 전환을 결의했던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의 종합 평가회 자리에서 지금의 대표 김재형씨가 보따리학교를 제창했었다. 따라서 보따리학교의 주요 학생들은 작년 우리쌀 100일 걷기의 주역들이고 우리는 그 아이들을 동몽접장이라 불렀다. 전봉준장군의 고부봉기 때 사발통문에 서명한 20분 중에 14 살짜리 동학접주를 이르는 말이다.

폭우와 불볕더위를 뒤집어쓰고 100일을 길거리에서 살았던 이 아이들은 여전히 전국을 교사(校舍)로 삼고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들을 선생님으로 삼아 아주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 볼 때마다 놀랍다.
새들이와의 대화에서도 나오지만 이들은 하루 일정을 짤 때 아주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처음에 오징어놀이, 피구, 축구, 땅따먹기, 배드민턴, 잠자기 등 무수한 의견이 나왔었다. 이때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집에서 빈둥대는 팀'으로 공식 '팀'의 칭호(?)를 주었던 것이다. 이들은 대열에서 빠지는 것을 게으른 낙오자로 낙인찍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마저 삶의 한 요소라는 것을 공감한 것이다.

얼굴에 색 그림 그리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이다. 손이 딸려 난생 처음으로 나도 붓을 잡아 봤더니 내 앞에도 아이들이 길게 줄을 늘어 섰다. 거울이 없는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열심히 그렸는데 태극기인지 해바라기 꽃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
얼굴에 색 그림 그리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이다. 손이 딸려 난생 처음으로 나도 붓을 잡아 봤더니 내 앞에도 아이들이 길게 줄을 늘어 섰다. 거울이 없는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열심히 그렸는데 태극기인지 해바라기 꽃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 ⓒ 전희식
'군청 방문팀'을 만든 것은 더 놀랍다. 보은군에서 갑자기 이 행사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 것이다. 6년 전부터 매년 이 행사를 개최하면서 보은에서 동학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문화단체 '아사달'의 노력을 인정 해 재작년부터 2년 연속 재정 지원을 하던 보은군이 군의회 예산 편성에도 포함되었던 올해의 행사를 며칠 앞두고 갑자기 지원철회를 결정한데 대해 아이들이 군청으로 가서 담당 과장을 만나 해명도 듣고 집단항의를 한 것이다.

보따리학교는 동학2대 교주이신 해월 최시형 선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사꾼이자 동학교도이자 군사이기도 한 농민들에게 해월선생은 보따리 개념을 도입했다는 게 김재형 대표의 설명이다. 호미나 주먹밥을 싸면 농사 보따리요. 칼이나 창을 싸면 개인 군장이요 베고 자면 베개요 덮고 자면 이불이다. 이 보따리 개념은 농사철에는 농사짓고, 봉기하면 싸우던 당시 농민군들에게 인내천도 가르치고 요즘말로 민족자주인 척양척왜도 가르치는 동학의 지도자로서 아주 잘 착안 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들판과 거리와 공장이 다 학교이고 모든 친구나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다 선생님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학교이고 제일 훌륭한 선생님이다. 보따리학교의 생각이다. 자율적인 식의주를 학습의 기본으로 삼는 것도 동학농민군들의 정신이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온 아이들이 나름대로 반찬과 쌀과 침낭을 준비해 왔는데 이제 이런 준비가 아주 익숙하다.

모두가 선생이고 모두가 학생이었다. 정준이는 팝송의 계보와 음악장르에 대해 강의했고 10살 평화는 민요에 대해 발표했다. 보은의 태껸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태껸을 무료로 가르쳤고 엄마들은 국 끓이기 시범을 보였다. 보은 장날에는 장에 있는 모든 가게와 행인들이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회비도 없이 보따리학교를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모든 비용은 자발적 성금으로 충당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커리큘럼이 없거나 정해진 참가비가 없으면 왠지 불안해지고 성금은 얼마정도 내야 체통도 살리고 손해도 안보고 할지 안절부절못하는 타율이 몸 구석구석 밴 학부모들은 아이에게서 배울 일이다. 자식 닥달을 일과로 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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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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