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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5.18 장모님을 모시고. 처남이 5.18묘역에 묻혀있다.
2001.5.18 장모님을 모시고. 처남이 5.18묘역에 묻혀있다. ⓒ 박철
이른 아침
아내가 밥 짓는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군불을 지핀 아랫목은 따뜻하다
나는 시 한편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베개를 깔고 엎드려 있다
창 밖에는 참새가 시끄러울 정도로 짹짹거린다
이따금 바람소리도 지나간다
밥이 다 되어가나 보다
상 차리는 소리
수저 놓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아침은
이렇듯 평화롭기만 하다

(박철 詩. 아침평화)


야구에 3, 4, 5번 타자를 크린업 트리오, 중심타자라고 한다. 크린업 트리오가 결정적인 찬스에서 안타를 치거나 점수를 내 주어야 한다. 텍사스의 최희섭 선수가 마이너리그를 청산하고 명실상부 메이저리거로 그것도 5번 타자로 등극했다. 동양선수로 크린업 트리오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미국 야구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팀 내 5번 타자는 보통 큰 걸 한방 날릴 수 있는 선수다. 최희섭 선수는 이미 마이너리그에 실력을 인정받았고, 수비에서도 1루수로 민첩한 동작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다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다.

나는 TV에서 박찬호 야구중계를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본다. 거기다 요즘은 김병현에 최희섭까지 나왔으니,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그런데 요즘 박찬호가 죽을 쒀서 보는 재미가 좀 줄어들었다. 앞으로 기대해 볼 수밖에.

내가 한번 해보고 싶은 운동이 야구다. 야구방망이로 쏜살같이 날아오는 공을 맞춘다는 게 대단히 흥미롭고 재밌다. 청년시절 간이 야구장 펜스를 만들어놓고 기계에서 튀어나오는 야구공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다 돈 받고 하는 곳이다. 나는 심심하면 거길 드나들었다. 10개 치면 3분의 1은 정통으로 때렸다. 정통으로 맞았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떨림이 묵직한 게 내가 홈런타자라도 된 기분이다.

2003.2  넝쿨이의 지석초등학교 졸업식 교정 앞.
2003.2 넝쿨이의 지석초등학교 졸업식 교정 앞. ⓒ 박철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오늘은 애리조나 김병현이 나와 6회까지 잘 던졌는데 그 다음 중간 계투가 나와 3실점을 해 또 패전을 기록할 모양이다. 우리 집 애들도 크린업 트리오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초등학교 1학년 은빈이는 1학년 전체 6명 중, 번호가 3번이다. 중학교 1학년 넝쿨이는 32명 중 4번이고, 중학교 3학년 아딧줄은 38명중 번호가 5번이란다. 3, 4, 5번 그러니까 자동으로 크린업 트리오다. 우연치고는 신기하게 들어맞는다.

이 녀석들이 정말 크린업 트리오가 되어서 안타를 날릴 것인지, 장쾌한 홈런을 칠 것인지 셋 다 죽을 쑬 것인지 두고 볼일이다. 나는 이 세 녀석들의 아비로서 내가 생각해도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권위를 앞세우는 구닥다리(?) 애비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좀 신세대 감각을 발휘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동생이 40살 중반이 되어 ‘아버지 학교’인가 하는 델 다니고 모든 과정을 수료했다고 하던데 나는 섬에 살아서 그런데도 다닐 수 없다.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긴 해야겠는데 내 나이 50이 다 되어가면서도 서툴기 짝이 없다.

우리 집 크린업 트리오를 지휘하는 건 내가 아니라 집사람이다. 애들이 내 말을 더 잘 듣지만 그건 아빠를 존경해서라기보다 아빠가 무서워서 일 게다. 엄마는 그래도 애들 마음속에 들어가 보려고 애쓴다.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높이를 낮춰 애들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엄마가 코치라면 나는 감독인데, 나는 전근대적인 감독이니 문제다. 나도 그걸 잘 안다. 애들이 지금은 내가 무서워 내 말에 고분고분 하지만 다 커서도 그럴 것인가? 장담 못한다. 큰 아들 아딧줄은 발 사이즈가 280mm로 나와 똑같다. 속옷은 같이 입는다. 몸무게도 5kg밖에 차이가 안 난다. 덩치는 다 커서 턱에 수염도 까칠까칠 났고, 목소리도 걸죽하고 어른이 되었는데 하는 짓을 보면 아직 어린애다.

2002.8 가평에서. 여름가족휴가중.
2002.8 가평에서. 여름가족휴가중. ⓒ 박철
이 녀석이 나에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부모자식 지간에 깊은 대화가 없다. 이놈들을 잘 감독해야 되는데. 마누라가 코치이니 코치를 족칠까? 그 방법이 간단하겠지만 마누라도 만만치 않다. 우리 집에서 나한테 반항을 제일 잘한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덤빈다. 마누라가 근본적으로 정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내가 사는 강화에는 모내기 직전부터 밴댕이가 많이 난다. 옛부터 속이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소갈딱지만하다’ 고 했다. 내가 밴댕이 속 이 얼마나 작길래 그런 말이 생겼을까 해서 밴댕이 속을 갈라 보았더니 거의 속이 없더라. 그럼 내가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농담이 아니라 그런 회한이 든다.

우리 집 크린업 트리오, 거기다 호랑이 같은 코치 마누라 이걸 다 품고 살아야 하는데, 내 그릇이 너무 작다. 망치로 두들겨서라도 좀 더 그릇을 늘려야겠다. 어떤 놈이 안타를 칠는지, 어떤 놈이 헛 방망이질을 할는지 그걸 잘 지켜보아야겠지만, 감독 자리에서 퇴짜나 당하지는 않을지 조심하고 볼 일이다.

다 사랑하는 내 피붙이들이고 반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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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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