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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품 없는 용두암
볼품 없는 용두암 ⓒ 홍성호
제주도에서 첫 코스는 용두암이었다.

안내 말씀을 해주시는 기사님이 '아무리 제주도 사람이라도 이곳만은 정말 볼 것 없다고 인정하는 곳'이라고 주의(?)부터 주셨다. 정말 도착해 보니 관광명소라고 하기엔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그 형상은 며칠째 밤을 새다가 쓰러져 잠이 든 셀러리맨 같았다.

컴퓨터 배경화면에 띄웠던, 거센 파도에 몸을 부비며 대가리를 치켜올리는 용두암이 아니었다. 모두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수학 여행의 첫 코스가 아닌가? 일찌감치 '약속의 날'을 준비해 온 아이들은 서둘러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다닥다닥 난간에 붙어 서서 앵글에 잡히려는 모습을 봤을 때, 차라리 눈꼽 낀 눈으로 자고 있는 용두암이 고마웠다. 배경(용두암) 나올 자리조차 살을 부닥치며 친구들과 추억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채꽃 밭에서 급우들과
유채꽃 밭에서 급우들과 ⓒ 홍성호
다음 코스로 가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살아 움직이는 유채 꽃밭은 장관이었다. 역시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보는 제한적인 모습은 별 감동이 없다. 이렇게 하나의 사회를 이루며 뿌리내리는 유채꽃이나 그걸 보는 우리들이나 별 반 다를게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매력적인 꽃이라도 홀로 있으면 저도 사는 재미없을 것이요, 보는 사람들도 한낱 잡초로만 생각할 것이다. 용두암에서도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천혜의 창조물과 함께일 때보다는 차라리 못나더라도 마음 맞는 벗끼리 있을 때가 가장 값있는 시간일 것이다.

차 시동소리가 멎고, 내린 곳은 여미지 식물원이었다.

기사님께서 이곳은 '일본이 탐내는 동양 최대의 식물원'이라고 하셨다. 너무도 확고한 장담이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혹시나 이번에도 실망하면 어쩌지?' 하지만 곧 그곳이 풍기는 기이한 향취에 취해버리고 말았다.

바나나나무, 고무나무, 파피루스, 메타세콰이아, 대추야자 등 이름이 친숙한 것에서부터 지리책에서나 슬깃 봤던 식물들. 특히 와싱톤 야자는 보는 이들 마다 탄성을 터뜨렸다. 아마도 드라마 '올인'에서 많이 봐왔던 나무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올라탈 수도 있다는 '빅토리아 수련'을 기대했지만 크기가 20센티도 안되는 작은 것들만 있어서 조금은 실망했다.

이곳은 얼핏보면 유채꽃 밭같은 어울 마당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과도 다르고, 원산지도 다른 모국에서 축출된 유랑민 겟토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시들어 있는 놈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 이 녀석들이나 우리들이나 부모의 품에서 떠나왔지만 한쪽은 나날이 시들고 한쪽은 여행일정 내내 싱싱해 진다.

'지금 우리들의 활기도 주로 이 녀석들의 모습을 따서 '싱싱하다'라고 표현하는데… 지금 우리와 함께 오지 못한 친구들이나, 이 녀석들, 모두 새파랗게 싱싱해질 방법은 없을까?'

아마도 이 생각은 여행 내내 나를 따라 다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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