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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외곽에서 한 이라크인이 담요로 덮힌 시신 옆을 지나가고 있다.
ⓒ 로이터 뉴시스
이라크 전쟁은 끝났다. 무너지는 후세인 동상 위에 성조기가 휘날리는 것으로 미국의 승리는 절정에 달했다.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능가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감격적인' 연설을 했다.

바그다드와 모술이 함락된 직후 이라크 전역은 무정부 상태와 약탈, 방화라는 처참함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박물관과 중앙은행, 대통령궁을 파괴하고 약탈해가도록 방치하는 미국의 의도적인 전략은 거의 문명범죄 수준이다.

환희에 찬 미국의 매스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장면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복해서 방영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후세인 정권에서 이라크 국민들이 얼마나 억압받고 굶주렸으면 저런 약탈과 분노가 표출되겠는가?', '치안과 민주주의의 기본의식이 부재한 이런 민족에게 어떻게 스스로 자기 정부를 선택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ADTOP3@
이라크 국민들을 위한 해방이라는 이번 전쟁의 공식구호가 옳았음을 입증하고 향후 이라크를 직접 군정으로 통치하고 싶은 미국의 속셈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전쟁은 두 가지 명분으로 출발했다. 하나는 사담 후세인이라는 독재자로부터 고통받는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킨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유엔 결의안을 어기고 몰래 숨겨놓은 생화학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명분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이 전쟁을 지지한 나라는 당사자인 미국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 한 나라뿐이었다.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전쟁을 강행한 미국이 명분찾기에서 다급해졌다. 이라크가 생화학 공격을 사용할 것이라는 미국의 거듭된 위험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할 가공할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부득이 이라크 해방에 초점을 맞추어야했다.

이라크 시민들의 환호는 미국을 환영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배고픔과 두려움,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의 환희일 것이다. 화면을 유심히 관찰하면 반후세인 구호를 외치는 주민 대부분은 그 동안 압박을 많이 받았던 시아파나 쿠르드족 주민들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조국이 침략당하고 종교적 신성함이 훼손당한 굴욕감에 침통해하는 침묵하는 다수 이라크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비춰지지 않았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왜 이라크군 최정예라 불리는 공화국수비대나 사담의 충성부대 페다인 등이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는가?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미국의 선전전에 불과했다. 이라크의 생화학무기 사용가능성이나 군사력 위협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부당한 침공의 명분축적에 이용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ADTOP5@
이미 이번 전쟁 직전까지도 미.영군이 이라크 상공에 일방적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놓고, 주요한 군사시설과 방공망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왔고. 지난 10여년에 걸친 경제제재로 생필품 수입이 제한되어 100만 이상의 주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라크가 미국을 위협할 군사력과 대응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주장은 처음부터 완전한 허구였기 때문이다.

▲ 5일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미 육군 제70기갑부대 2대대 소속 병사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초상화를 망치로 부수고 있다.
ⓒ 로이터 뉴시스
한 제국의 위력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남을 침공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전쟁 이후를 다루는 것에서 그 제국의 진정한 힘과 품격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적장에 대한 정중한 예의, 상대방 문화유산과 정신문명에 대한 존중, 패배한 주민들에 대한 보살핌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인류 최대의 오랜 제국 로마가 그러했고, 이미 500여 년 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기본정책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부상당한 병사들은 직접 위문하고, 전쟁에 참여한 멕시코와 필리핀 출신 장병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물과 기초 의약품이 없어 이라크 병원에서 죽어가는 어린 생명과 선량한 시민들의 처참한 상황에는 침묵하고 있다.

후세인의 초상화를 탱크로 깔아뭉개고, 그의 조각을 칼로 쪼는 장면을 수없이 반복하고, 기존의 기반시설과 문화유산을 되도록이면 철저히 붕괴시킨 다음, 미국 주도로 근본부터 뜯어고쳐 새 판을 짜겠다는 오만한 발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라크 석유생산을 두 배로 늘려 매년 200억불 이상을 전후 복구에 쏟아붓겠다는 딕 체니 부통령의 발언이 이런 의도를 뒷받침해준다. 세계 제국으로서의 기본적인 인식과 품격이 결여된 안타까운 모습이다.

미국은 해방전쟁을 강조했지만, 이라크 국민들이나 주변 아랍국들에게는 명백한 침략전쟁이었다. 이라크 민중의 해방이 왜 미국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지 수긍하지 않는다. 독재자로부터 국민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전쟁이 합리화된다면, 이 지구상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따라서 이번 전쟁으로 중동 왕정국가의 민주화는 가속도를 받게 되겠지만, 동시에 극단적인 이슬람 집단에 의한 반미 테러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미국인들이 자국 영토 바깥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날지도 모른다.

21세기 미국이 세계 초강국으로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게 될지 앞으로 인류는 지켜볼 것이다. 이라크 국민들에게 국가를 되돌려주고,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무너진 인류문명의 보고를 복원하고 와해된 이라크의 복구도 국제사회의 협력으로 이루어질 때, 그나마 전쟁의 아픔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가공할 첨단무기를 내세워 전쟁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미국이 진정한 제국으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오만과 일방주의로 급격한 패망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 이 전쟁 이후 미국의 정책방향과 세계인식이 결정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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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문화 전문가로서 최근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글을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에서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의욕으로 기자회원으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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