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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오후 5시30분]

▲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연설을 하기 전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바로 연설을 시작하는 것이 맞는지를 물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의 첫 국회 국정연설은 시작부터 탈권위적이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 중앙 출입문으로 입장하자, 일부 의원은 관행대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일부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으며, 일부는 일어서지도 앉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단상으로 올라온 노 대통령은 곧바로 "존경하는…"이라며 연설을 시작하려다가 뒤쪽 박 의장을 쳐다보며 "죄송합니다, 제가 시작해도 되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저는 의장이 따로 소개하는 순서가 있나 해서요"라고 웃으며 연설을 시작했다.

이번 연설은 대통령 당선 이후 처음이기도 하지만, 또한 '정치인 노무현'으로서 4년만의 본회의장 입장이었다. 수많은 낙선과 원외생활을 했던 노 대통령은 99년 말 정기국회 때 국회 본회의장 회색 바닥을 마지막으로 밟았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낙선한 후 당 회의나 정몽준 통합21 대표와의 단일화 담판 등 몇 차례 국회에는 들어왔지만 본회의장은 가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당초 국회 주변의 시위를 우려해 헬기를 이용할 예정이었으나 승용차를 타고 오전 9시44분 국회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본회의장으로 가기 전 2층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박 의장을 비롯해 3당 대표 등과 환담했다.

박 의장이 "노 대통령께서 이번 국정연설에서 언급을 하시면 파병안이 곧 통과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자, 노 대통령은 "처음에 (정당) 대표들을 만났을 때는 쉽게 될 줄 알았는데 쉽게 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거론하며 "최대한 성의를 표하겠다"면서 "요즈음은 대통령 값이 그 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에는 옛날식 기준이고, 하지 말라는 것에는 신식"이라며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데에는 신식 사고를 하고, 하는 일을 평가하는 데에는 구식 사고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 의장은 "오늘 국회에 온 것은 상당히 점수를 따는 것"이라고 답했고, 정대철 민주당 대표는 "이것이 신식"이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노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도 국회 앞에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그는 이라크 파병 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설득하면서 "대통령의 성의를 보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국민의 대표로서 당당하게 소신을 가지고 국민의 운명을 결정해 주셔야 한다"고 말하는 한편,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설득하며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충심으로 드리는, 저의 간곡한 제안이다.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대통령이 국회의원에게 지시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가 계속 돼서도 안된다"면서 "설사 힘없는 대통령이란 말을 듣더라도 국회를 장악하거나 지시하는 대통령은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동안 국회 본회의장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의원들은 정숙한 가운데 단상을 쳐다보거나 미리 배포한 연설문을 봤다. 또한 허바드 주한미국 대사를 비롯한 외국 인사들도 참관인 석에서 통역기를 착용한 채 노 대통령의 연설을 주의깊게 들었다.

맨 마지막, 노 대통령은 "여러분들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해나가기 어렵다"며 원고에 없는 발언으로 국회를 향해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연설을 끝맺었다.

"당을 뛰어넘어서 우리 함께 부닥쳐 있는 많은 문제들을 국민들을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나갑시다. 저도 항상 가슴도 열고 사무실도 개방해서 여러분들과 대화하고, 필요하면 국회에 찾아와서 여러분들과 대화하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본회의장에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연설은 채 40분이 안걸렸다.

"코에서 단내가 나네요"...대통령이 챙기고 또 고치고
첫 대통령 국정연설문, 어떻게 만들어졌나

▲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연설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약 40분. 배포된 연설문으로 35페이지.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국정연설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노 대통령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2일 오후 발행된 <청와대 브리핑>은 국회 국정연설문에 대해 "대통령의 본마음이 거의 그대로 담긴 순도 100%에 가까운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연설 바로 전날인 1일 밤늦게까지도 내용을 수정했다. 송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부터 연설문 팀과 같이 연설문을 준비했다"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3시간 내지 6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장시간 동안 연설문 팀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대통령께서는 모든 것을 메모를 준비해 와서 의중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늦게 청와대 홈페이지(www.
president.go.kr)에 연설담당 비서관이 올린 연설문 준비 후기는 연설문 준비에 쏟은 노 대통령의 관심과 노력이 좀더 생생하게 나타나있다. 후보시절부터 노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해온 윤태영 연설담당 비서관은 "3월 20일쯤 국정연설이 결정된 순간부터 대통령은 유달리 연설 준비에 신경을 썼다"면서 "후보나 당선자 시절에도 준비에는 철저했지만, 이번처럼 직접 나서서 미리 준비를 재촉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윤 비서관에 따르면, 지난 3월 30일(일) 장장 6시간에 걸친 문안 작성 작업에 이어 30일(월) 저녁 자정까지 마무리 작업을 하는 강행군에 노 대통령은 "코에서 단내가 나네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연설문이 마무리된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에도 노 대통령은 직접 전화를 걸어 몇군데 문구 삽입을 주문했다.

그렇게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연설문이었지만, 그대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읽혀지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은 즉석에서 몇몇 표현을 바꾸고 문장을 생략하면서 연설을 했다. 특히 맨 마지막 "오늘 원고에는 없지만"이라며 KBS 사장 선임 논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윤 비서관은 KBS 사장 관련 연설에 대해 "오늘 아침에 홍보수석이 관련 (조선일보) 보도를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면서 "그런 보고를 받고 대통령이 직접 (말해야겠다고)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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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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