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 초에 우리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사건이라는 경악을 금치 못할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매스컴들은 예의 ‘안전 불감증’론을 열심히 반복했지만, 지금은 누구에게 안전 불감증을 탓할 것인지 모호한 상황이 되었다.

반복해서 떠드는 매스컴에서도 그 대상과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파악 못하고 그저 국민들을 불안하게만 만들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반 시민들은 ‘안전 불감증’을 갖고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길거리에 나서든 집안에 있든 항상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면, 오히려 그게 문제인 것이다.

전문 용어로 풀-푸르푸(fool-proof)라는 것이 있다. 장비를 만들 때 어떤 바보가 사용해도 이중 삼중의 안전 장치를 해서 고장이 나거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안전이 중요한 부분에는 이와 같은 풀-푸르푸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 장난감, 지하철, 그리고 비행기도 이와같이 바보가 써도 괜찮게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각 개인에게 잘못을 묻고 사고가 발생하면 개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영원히 사고왕국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결론은 '시스템'이고 그 중심에 '과학기술'이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모든 것이 시스템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사람 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노동집약적인 전근대 사회의 특징은 정치나 경제 논리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집약적인 현대과학문명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의 논리가 가장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지 않으면 엄청난 사고와 재난으로 이어지고, 안보와 경제도 뒤쳐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구 지하철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풀- 푸르푸는 커녕 최소한 상식선의 안전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나친 경제 논리의 횡포때문이다.

엘빈 토플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과학기술이 지배하고 있고 단 한시도 이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이젠 상식이다.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하여 선진국에서는 반과학(Anti-science)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이 '양면의 칼'이라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어 있지 않다. 과학기술을 잘 다루지 못하면 과거 소달구지를 타고 다니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끔찍한 사고를 연이어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구축하자는 국정과제를 내걸고 있는데, 과학기술은 우리가 구호로 외치기 전에 이미 우리사회의 중심을 점령해버렸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위정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 기술을 모르고 어떻게 산업과 경제를 논하고, 치안과 국방을 논하고, 안전과 복지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지금 이 시각 우리나라에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비전문가들이 전문가인 양하며, 국정의 모든 부분을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하게 이끌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추진위원회가 신설되지 못하고, 국가과학기술 자문회의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얘기다. 도대체 국정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국어수준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추진위’와 ‘자문위’는 완전히 그 역할과 기능이 다른 것이다. 더군다나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테스크 포스팀의 설치 여부 또한 불투명하다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럴 때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너희가 과학기술을 아느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