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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맞벌이를 하시며 힘든 생계를 꾸려가는 그런 가정이었다. 부모님의 두 얼굴을 보기엔 아직 잠이 많았던 당시 6살인 나와 5살인 내 동생은 항상 일어날 때마다 부모님의 얼굴대신 쌀통에 놓여진 200원을 제일 먼저 보곤했다.

쌀통위에 놓여진 200백원은 나와 내 동생의 하루 용돈이었던 셈이다.가끔씩 이런 우리 두 형제가 안쓰러워 아버지께선 쌀통위에 1000원짜리 지페를 놓고 일터에 나가실 때가 있으셨지만, 나와 내 동생이 눈을 뜰때 그 1000원은 온데간데 없고 항상 200백원만 놓여있었다.(어머니께서 항상 200백원으로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6살때 처음으로 어버이날이 무슨 날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날엔 부모님의 가슴에 사랑의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나는 그해 어버이날이 되기 몇일 전부터 홍역으로 인해 어머니 등에 업혀 병원을 다니게 되었던 지라 이번 어버이 날엔 꼭 어머니에 가슴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었다. 항상 쌀통위에 놓여졌던 그 100원으로 말이다.

나의 결심 때문이어서 그런지 어버이날 아침에 난 어머니가 회사에 출근하기 전보다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이런 나를 신기하게 여기셨던 모양이다.

"왜 더 안자고 일어났니?"
"그냥. 오늘은 어버이날이잖아."
"아이고, 우리 아들이 어버이날이 무슨 날인줄이나 아셔?"
"당연하지. 어버이날은 엄마, 아빠한테 꽃을 달아주는 날이지. 헤헤."
"와. 우리 아들 다 컸네. 어버이날도 다 알고."

어머니는 내 엉덩이를 두들겨 주셨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제 엄마가 회사에 출근하기 전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일만 남았구나'하고 으쓱한 기분으로 항상 그랬던 것처럼 쌀통위에 놓여있을 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어머니가 출근하기 바로 전에 돈을 쌀통에 올려놓으시기 때문에 아직 쌀통위엔 돈이 놓여있지 않았던 것이였다.

'후~ ~이를 어쩌지!! 그래 한번 능청스레 해보자'고 생각한 난
"엄마 ! 쌀통위에 돈이 왜 없지? 이상하다 그치? 정말 이상하네."

어린 아들의 능청스러움을 이미 눈치채신 어머니께서는

"자. 오늘은 우리 아들이 일찍일어났으니깐 엄마가 200백원씩 줄께"

정말 오늘 나와 내 동생은 땡잡은 거였다. 항상 100원이였던 하루 용돈이 오늘은 200원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출근하시기 전에 꼭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생각이었다.

"엄마 잠깐만 기달려. 나 문방구 갔다올께 알았지?"
"왜 문방구를 가는데? 엄마 지금 나가야 돼."
"금방 오니깐 꼭 기달려야돼 알았지? 꼭 기달려야돼. 꼭이야."
"그래, 알았어."

나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쏜살같이 문방구를 향했다. 문방구를 향할 때의 나의 기분은 어린 나이였지만 정말 뿌듯하면서도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줄 생각을 하니) 날아갈 것 만같았다.

"아줌마. 카네이션 얼마예요?"
"이건 100원이고 이건 200원이야"

200원짜리를 사면 오늘 나의 용돈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순간 나의 머리속에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해결방안이 떠올랐다. 아직 동생이 자고 있으니깐 여느 때처럼 동생에겐 100원만 주자는 생각이었다.

"200백짜리 주세요"

카네이션을 받아든 난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찾았지만 어머닌 벌써 출근을 하신 후였다.

내가 너무 늦게 와서 어머니가 가셨구나하는 생각과 한편으론 어머니가 너무나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항상 어버이 날이면 어머님께 이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어머니께서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하시며 넘어가시곤 하신다.

이렇게 나의 첫 어버이 날의 추억은 벌써 2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머니 그때는 제가 200백원짜리 카네이션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그 무엇으로 살 수 없을 정도로 효도해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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