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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에서 본 목포시 전경
유달산에서 본 목포시 전경 ⓒ 정거배
국내외 언론에서는 사상 처음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DJ 고향에서는 민주화 운동과 투옥 그리고 사형선고 등 험난한 인생을 달려온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사실에, 그동안 지역차별이라는 설움 속에서 살아온 전라도 사람들의 한을 풀어줬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일부 술집에서는 손님들에게 맥주가 공짜로 제공되기도 했다. 그 날 목포역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새로 출범하는 김대중 정부에 대해 그동안 정부에 요구할 수 없었던 것을 한꺼번에 쏟아내기 보다는 “이제 우리는 김대중 선생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때마침 불어 닥친 IMF한파를 걷어내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했다. 이제는 뭔가 희망을 가져도 될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기대했다.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

그로부터 5년 DJ퇴임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 매립사업으로 새로 조성된 목포 신도심 평화광장에 아침운동 차 나온 70대 김씨 부부를 만났다. 이 곳은 원래 미관광장으로 이름 붙여졌지만 지난 2000년 DJ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평화광장으로 명칭을 바꿨다. 이들 부부는 DJ 정부에 대해 “처음에는 기대가 컸지만 나중에 실망도 많이 했다”며 말을 꺼냈다. 이어 “ 그래도 잘한 것 아니냐“며 ”야당이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못한 것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낙후된 지역 발전을 위해 DJ가 큰 도움을 주지 못한 이유도 야당의 공세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다. 특히 이들 노부부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DJ 정부의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기대도 많았고 실망도 많았던 5년이었지만 대부분 목포사람들은 DJ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시장통에서 한 상인을 만났다. “임기 중반 아들들의 비리 등으로 욕도 많이 했다. 그러나 DJ만큼 뭔가 할려고 한 역대 대통령이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이 상인은 서민생활을 위해 경제 활성화도 기대 했지만 임기 동안 제대로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을 이었다.

'기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DJ 출생지 신안군 하의도로 갈 수 있는 목포 선창 여객선터미널에서 만난 김아무개(47)씨는 “평화상도 받고 북한 김정일 만나고 한 것은 그래도 평가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김씨는 DJ 정부의 사회전반에 개혁에 대해서도 “할려고 했지만 발목잡은 놈들이 하도 많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김대중’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일축한다.

“ 40년 가까이 저 쪽 사람들이 다 해먹었다. 40년 동안 뿌리내린 온갖 비정상적인 정치, 사회, 경제 구조를 어떻게 5년 만에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가 ”고 김씨는 역설했다. 그는 또 DJ를 냉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한 원인을 수그러들지 않는 지역감정과 그에 대한 편견, 그리고 임기 내내 있었던 야당의 끊임없는 공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목포사람들은 DJ정부가 개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첫 번째 원인을 야당이 임기 내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지난 12월 대통령 선거결과 목포에서는 노무현 95.9%의 전국 최고 득표율인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2.8%라는 전국 최저치가 나왔다. 목포사람들의 입장에서는 DJ정부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던 야당에 대한 반감의 표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목포시내에서 옷가게를 하는 송아무개(56·여)씨는 “사실 DJ가 당선되자 기대가 컸다”며 그러나 지켜보면서 실망만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DJ가 제대로 한 일이 뭐가 있냐고 말했다. “자식들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해 YS와 똑같은 취급 받은 게 가장 싫었다“고 말했다. 그는 ” 지역망신까지 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문제 큰 오점“

목포시 산정동에는 사는 박아무개(67)씨는 “그래도 할려고 했는데 밑에 놈들을 잘 못 뒀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누구보다도 잘해보려고 한 것 같다며 DJ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절하 할려는 움직임에 동의할 수 없다는 눈치다. 또 다른 60대 한 노인은 “5공 정권 등 지놈들은 도둑질도 더 많이 해 먹었는디”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들은 DJ가 나라가 잘 되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뜻대로 못한 것 같다고 말한다. DJ가 주변 사람을 잘못 뒀기 때문에 그의 실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커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DJ 하의도 생가에 화재가 발생했다. 대전의 40대 남자가 방화한 것이다. 당시 화재소식을 접한 지역주민들은 “아무리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현직 대통령 생가에 불 지른 나라도 있냐”며 임기말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춰지던 DJ에게 동정론까지 일었다.

국민의 정부 종영을 바라보는 지역 정치권의 시각은 지역 정서를 반영하듯 차분해 보였다.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면서 DJ와 이름이 같은 목포시의회 김대중 의장은 “ 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이라고 국민의 정부를 평가했다. 그는 "IMF라는 국가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켰지만 정당을 포함한 정치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점이 앞으로 과제로 남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김홍일 의원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김홍일 의원 ⓒ 정거배
장남 김홍일 의원 행보에 관심

목포에서는 DJ 퇴장과 함께 그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DJ 집권 초기 김홍일 의원이 지역구 활동 차 목포에 내려오면 눈도장을 찍기 위해 공항에서부터 마중 나온 인사들로 북적거렸고, 그의 아파트까지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인근 자치단체장들은 김 의원이 목포를 떠나는 날 이른 아침에도 공항까지 배웅하는 등 그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동생들 문제로 나라가 어수선해지던 1년 전부터 김 의원이 목포에 내려오는 횟수가 부쩍 많아졌다. 지금은 그를 따르는 수행원들이 몇몇에 불과할 정도로 줄었다. 권력의 무상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는 얼마 전 내년 총선 출마를 의사를 밝혔다.

그의 3선 도전에 대해 DJ 퇴장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던 주민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DJ에 대해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그의 행보는 당연히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지역주민들은 김 의원이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그동안 크고 작은 지역현안 사업을 꼼꼼하게 챙겨온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홍일 의원에 대해 “몸도 불편한데”하면서 용퇴를 바라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지역민들은 김 의원이 아버지인 DJ의 후광 때문에 목포에서 국회의원이 됐지만, 각종 권력형 비리연루 의혹을 받아 온 사실도 잊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주민들은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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