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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 삼향동 대박산 마을 전경
전남 목포시 삼향동 대박산 마을 전경 ⓒ 정거배
방송직후 안부 전화 빗발쳐

그러나 전국에 방송이 나간 직후 한 밤중에 300여세대에 달하는 이 시골 마을은 전화벨소리로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객지에 나가 있는 가족들이 부모의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상황은 여기서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동사무소에는 전국에서 수맥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들의 전화에 이어 마을 현장 방문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주민들이 먹는 식수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며 정수기 회사 관계자들까지 찾아올 정도가 됐다. 쓰레기 매립장 유치를 추진하던 인근 자치단체 주민들도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암 환자가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하룻밤 사이에 공포의 마을로 변한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 김종문(71)씨는 “방송 직후 사위까지 전화연락을 했다”며 “그동안 평온했던 동네가 난리가 날 정도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마을 사람들의 화살은 먼저 방송사와 인터뷰했던 같은 마을 주민들을 원망했다. 더구나 “마을 어른들과 사전 협의없이 방송사에 제보를 했다”며 몇몇 주민들을 향한 분노로 확대됐다.

조용했던 한 시골 동네가 방송이 나간 뒤 주민간 반목과 불신으로 비화된 것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로 전국에 망신을 당했다며 낙담해했다. 주민들은 이제 부동산 매매 등 땅값을 걱정해야 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져 버린 것이다.

마을 전입자도 한산

주민 정성언씨에 따르면 “외부인들이 찾아오면 물도 마시기를 기피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정씨는‘암 동네’로 인식되자 지금까지도 땅이나 집을 팔려고 해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등 피해가 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당시 방송사의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서 암 환자가 많은 이유에 관해 속시원하게 규명하지 않은 채 의혹만 부풀려 버린 것을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최근 몇 년 사이 암으로 사망한 주민 이름을 들어가며, 다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평소에 술을 많이 마셨거나 마을출신이지만 주로 타지에 살다가 돌아온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 주장의 골자는 산 넘어 쓰레기 매립장이나 고압송전탑 때문에 암 환자가 많은 것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우연의 일치라는 것이다.

수맥연구가들도 줄이어

방송이 나간지 3개월이 넘고 있지만 마을주민들은 언론이나 외부인사들과 이와 관련된 말을 하는 것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주민은“다 죽을 때가 돼서 병들어 죽었지”하며 말끝을 흐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평온을 되찾고 있지만 그래도 주민들은 걱정스러워했다. 방송 직후 몇몇 주민들 중심으로 송전탑 이설 등을 당국에 요구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목포시 당국에 송전탑 이설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시나 한국전력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방송에서 사람이 살지 못하는 동네처럼 인식됐는데도 당국에서는 현재까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 이 마을과 이웃한 석현 공단이 아파트단지로 변모하면서 쓸모없게 된 대형 송전탑을 철거해야 하는데도 당국이 뒷짐만 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행정구역상 목포시에 해당되지만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이 곳은 나이든 노인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주민들은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얕보는 것 아니냐”며 당국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 대박산 마을과 관련 목포에서 발행되는 몇몇 지역신문에서는 이색적인 기사가 실렸다. 암 환자가 많은 이유는 마을 밑에 지전류 때문이라며 수맥을 안다는 목포시 만호동 권아무개(75)씨의 주장을 소개했다.

지전류는 인공적으로 생산되는 전류가 아닌 지하나 바닷물에서 흐르는 자연 발생적인 전류를 말한다. 수맥과는 다른 지전류 역시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관계전문가들에 따르면 지전류는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독일의 구스타프가 펴 낸 책에도 암을 앓고 있는 환자가 사용했던 방은 대부분 지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신문지상을 통해 지전류를 차단한다는 침대 등을 소개하는 업체광고가 나오기도 한다.

암 발생은 우연의 일치

그러나 대박마을 주민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지전류가 흐른다는 주장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미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이웃한 쓰레기 매립장과 송전탑 그리고 암 환자 발생 건수가 우연의 일치로 맞아 떨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조상 때부터 이 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결같이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 명예회복을 위해 그들은 우선 송전탑 이설 문제를 들고 있다. 이 마을을 U자형으로 둘러싼 산등성이에는 6곳에 대형 송전탑이 세워져있다.

이와함께 인근에 설치된 쓰레기 매립장에 대해서도 거론할 때가 됐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대박산 마을 뒤에 지난 95년부터 운영해 온 쓰레기 매립장은 오는 2004년이면 시당국과 약속했던 사용기간이 만료된다고 주장했다. 매립면적은 180,000㎡로 현재까지 쓰레기 매립율은 45%에 불과하다. 하지만 ‘방송공포’를 경험한 주민들은 쓰레기 매립장을 내년 말 이후부터는 사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쓰레기 매립장 사용 연장 움직임

그러나 목포시 위생매립장 관계자는 내년 말에 쓰레기 반입기간이 만료된다는 대박산마을 주민들의 말은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쓰레기 매립장 사용기간은 주민들로부터 승인 받아야 할 사안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는 지난 95년 매립장 조성 당시 쓰레기 반입량을 계산해 2004년까지 사용 할 수 있다고 전망했으나, 그 이후 산업폐기물 반입이 관련법규에 따라 금지되는 등 전반적으로 매립량이 크게 줄어 앞으로 몇 년간은 더 사용 할 수 있다는 눈치다.

매립장 관계자는 이어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건강검진과 주민지원금, 환경위생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한 여름철에 악취나 강한 바람이 부는 날에 먼지피해만 있을 뿐이라고 매립장 관계자는 애써 강조했다.

순진한 마을 주민들이 지난 겨울 한 밤중부터 겪어야 했던 ‘공포’는 산 능선을 사이에 둔 매립장 관계자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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