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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이 모일까? 2만 아니 3만? 15일 오후 1시(네덜란드 현지 시간) 뚜껑을 열어보니 숫자를 가늠해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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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부터 손에 손에 피켓을 들고 "Not in my name(내 이름으로 전쟁을 하지 마라)"는 스티커를 가슴에 팔뚝에 달고 발걸음도 가볍게 수많은 인파가 물결을 지어 집회장인 담 광장으로 향했다.

▲ 담 광장으로 향하는 시민들, 노부부가 '다른 미국을 위하여'라는 푯말을 들고 걷고 있다.
ⓒ 인디미디어

볼거리가 워낙 많다 보니 눈이 두 개 밖에 없는 게 아쉬웠다. 가장 눈에 띈 사진은 부시 엽기 시리즈였다.

▲ 텍사스 카우보이 벗은 사진 등
ⓒ 인디미디어

예술가 뺨치는 수준 높은 작품도 있었다.

▲ "3차 이라크 전쟁은 안된다."
ⓒ 인디미디어

전쟁을 선동하는 부시의 목소리가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 그래서일까? 담 광장에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숨을 멈춰서 인공호흡을 실시하며 회생시키려는 두 사람의 행위 예술이 그저 웃음거리로 여겨지지 않았다.

▲ 인공호흡 받는 비둘기
ⓒ 인디미디어

담 광장은 더이상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광장에 진입하기 위해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길은 완전히 점령되었다.

▲ 물 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담 광장
ⓒ 인디미디어

이윽고 집회가 시작되고, 지난 1월 22일 선거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를 외치고 공공 부문 민영화를 실랄하게 비판하며 눈길을 모았던 사회주의당 당수 얀 마라이네스가 단상에 올라 반전의 메시지를 전했다. 시위 전날 그는 라디오 광고에서 나와 시위에 참가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었다.

▲ 연설 중인 얀 마라이네스 사회주의당 당수
ⓒ SP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연령층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생각 밖으로 나이 50~60대 장년층이 집회의 주력군이었다. 이들은 멀게는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 68혁명을 이끌었던 노장들이고 80년대 반핵운동의 선두에 섰던 세대다.

그 다음은 젊은 학생과 청년층이었지만, 장년층에 뒤섞여 있었다. 가족들이 단체로 온 경우도 많은 듯했다. 아이들도 빠질 수 없다. 특히 달려오는 탱크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들에게 동정심을 더 느껴서인지 아랍 출신의 소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장난감 소총을 손에 든 그들의 시위는 이라크 전쟁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시와 블레어는 전쟁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후세인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전쟁이 아랍세계 전체를 겨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 머리가 흰 노인들이 참가자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 인디미디어

▲ "우리도 한몫 한다" 활동파 꼬마들
ⓒ 인디미디어

▲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연대하고 싶어요"
ⓒ 인디미디어

집회가 끝나자 곧바로 행진이 시작되었다. 마치 끝 흘러내려오는 계곡의 물줄기처럼 사람들이 밀려왔다.

▲ 끝이 없는 시위대열
ⓒ 인디미디어

나는 그 물줄기 옆에 서서 그들에게 작은 목소리를 전했다. "Don't attack North Korea(북한을 공격하지 마라)"는 제목의 A4용지 크기의 신문을 들고 길가에 서 있는 나를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 마디씩 건넸다.

"맞아요. 다음 번에는 그거 때문에 또 데모하러 와야죠."
"북한은 안 칠 테니까 걱정말아요."

-"당신은 안 치겠지만 미국은 안달인데요?"
"그것도 맞는 말이네."

지나가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는 사람들의 손길에서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북한을 공격하지 마라" 유인물을 들고 있는 노인. 그는 가슴에 버튼으로 반핵 평화의 상징을 만들었다.
ⓒ 장광열

가장 기억에 남는 시위대는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시위였다. 미국을 상징하는 별 모양의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그들은 2백명 정도였지만, 수천의 원군처럼 느껴졌다.

▲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회원들이 행진하고 있다.
ⓒ 장광열

암스테르담은 별난 도시다. 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청량리 같은 창녀촌이 시내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고, 라이브 쑈에 섹스박물관도 있고, 마리화나도 대놓고 피울 수 있는 공간이다. 그것 뿐 아니다. "크락"이라고 불리는 빈집 점거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되어 아직도 명맥을 잇고 있다. 빈집 점거운동은 방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이 대도시에서 청년들이 떼를 지어 빈 집을 점거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처럼 예쁜 집 사이에 요란한 그림과 글자로 도배된 벽을 한 건물을 본다면 그게 바로 점거된 집이다. 반전 시위날에 맞취서 한 집에서 커다란 천막을 내걸었다.

ⓒ 인디미디어

천막에는 "리라로키오는 세계의 정상들의 워르가즘에 반대한다"고 씌어 있었다. 워르가즘, 그것은 영어 사전에 아직 등록이 안된 신조어다. 전쟁의 War와 오르가즘의 gasm을 합성한 이 기막힌 신조어를 보고 크라커(빈집 점거운동가)들의 익살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행진이 끝나고 쌀쌀한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우리는 광장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대절버스 5호차에서 우리는 라디오뉴스를 들었다. 로마와 런던에서 백만명, 베를린 75만, 파리 50만, 뉴욕에서도 수십만이 시위에 나섰다는 소식이 터져 나왔다. 버스 안의 시위대는 와 함성을 질렀다. 고대하던 천만 시위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네덜란드는 몇 만이었을까? 칠팔 만이라고 했다. 역시 코딱지 만한 나라라 어쩔 수 없군. 하지만 실망스러운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사는 북부의 흐로닝언에서는 암스테르담 시위에 많아야 세 대의 버스가 대절되었었지만, 이번에는 무려 열한 대가 대절되었다. 500명이 북쪽 끝에서 내려간 것이다.

'다음에는 더 많이 가야지. 한반도에도 부시의 전쟁 선동이 이어진다면 더 많은 버스가 가야지'하고 다짐했다.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이자 모두 박수를 치며 2월 15일 시위의 감격의 여운을 삭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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