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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지리 정치'라고 자신을 비판한 신문과 기자를 고소한 박 시장(왼쪽)과 이와 관련한 법정심리에 증인으로 출석한 윤재걸 씨
'어부지리 정치'라고 자신을 비판한 신문과 기자를 고소한 박 시장(왼쪽)과 이와 관련한 법정심리에 증인으로 출석한 윤재걸 씨 ⓒ 오마이뉴스 이주빈
박 후보 측은 "6월 9일자 '주간 오마이뉴스 2002 지역호외' 와 6월 10일자 <시민의 소리> 기사 중 박 후보와 지구당 관련 내용이 '사실을 왜곡하고 허위의 내용을 보도했다"며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시민의 소리> 양근서 기자 등을 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한 것.

양근서 기자가 작성한 '문제의 기사'는 '박광태의 '어부지리 정치' 유전'. 양 기자는 이 기사에서 "경선참가 선수들을 감시하고 관리해야 될 심판이 광주시장후보 공천장을 새치기했다"며 "박 후보의 정치역정이 92년 14대 총선과정과 닮은꼴"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양 기자의 기사 중 다음 인용부분에 대해 박 후보 측은 "사실이 아니다"며 '고발'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나왔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평민당 선전국장으로 강진 완도에 공천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진 박광태 후보에게 광주북갑 공천장이 돌아가게 되자 그 배경과 관련, 여러가지 관측이 난무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공천헌금 배달 대가설'이다.

막강한 재력을 배경으로 14대 전국구의원을 지냈다가 타계한 김모 전의원의 공천헌금을 속칭 '배달사고' 없이 당에 잘 전달한 공로가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인사는 "정치권에는 이때 배달한 공천헌금 규모만 30억원으로 이 가운데 '배달료' 5억원이 박 후보의 공천헌금 몫으로 당에 기탁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윤재걸씨 증인으로 전격 출석

이때부터 양 기자는 '피고'의 신분으로 검찰조사와 재판심리에 임하고 있다. 양 기자는 따라서 이 사건의 핵심인 '공천헌금 배달 대가설'의 사실 여부와 기사가 '시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공익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1월 20일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 3차 심리는 고발인측은 물론 피고발인측 모두에게 중대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날 심리에서는 윤재걸(전 <신동아> 기자·전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씨가 피고인측 증인으로 전격 출석해 '문제의 정보'와 관련한 다양한 증언을 했다.

윤씨는 증언에서 "당시 민주당과 대변인실 기자들 사이에선 의외의 인물이 광주 북갑에 공천되자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았으며 이와 관련한 정보보고를 올린 언론사 정보문건을 본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또 "(14대 총선 당시 북구 갑에 공천신청을 한 자신에게) 10억 원의 공천헌금을 요구했지만 거절했다"면서 "한 인사로부터 5억은 현금으로 5억은 외상으로 하는 이른바 '일부현금 일부외상'을 제안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윤씨는 양 기자의 기사에 언급된 고 김옥천 의원의 공천헌금설과 관련, "그런 유형의 비슷한 소문이 돌았던 기억이 있다"며 "당시 전국구 공천헌금은 20억에서 40억이었으며 평균 30억을 내야 당선안정권 순위안의 전국구를 배정받을 수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특히 "언론계에서 30년을 지낸 사람으로서 양근서 기자의 기사는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익적 비판기사"라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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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계의 두 정치인. 정치자금 문제로 증언대에 오를지 주목된다.
동교동계의 두 정치인. 정치자금 문제로 증언대에 오를지 주목된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재판부는 이 사건과 관련 "(기사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면 피고인은 무죄"라면서 "사안의 성격상 명확한 증거를 댈 수 없는 것이므로 모든 정황을 보고 (유무죄를)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피고인측 변호사는 "권노갑씨와 박광태 시장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했으며 재판부는 "(정식으로 신청이 접수되면)받아들이겠다"고 밝혀 두 동교동계 정치거물이 '증인'자격으로 법정에 서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파장과 전망

피고측 변호사가 권노갑씨와 박광태 시장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번 사건은 지역 정가는 물론 중앙정가에 적잖은 파장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법정에 서게 되더라도 피고인이 아닌 증인 신분으로 설 전망이지만 이들이 증언을 해야 할 사안이 정치자금과 관련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20여 년 동안 호남정가를 지배해온 동교동계로서는 베일에 가려져 왔던 정치자금 유통 문제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고백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권노갑씨와 박광태 시장이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사건 자체가 사실관계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터라 어떤 식으로든지 '증언'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울러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사건이 6·13 지방선거 과정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광주전남에서의 '반동교동계' 정서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유력하다. 구태정치에 대한 지역민들의 거부감이 날로 증폭돼가고 있는 시점에서 '공천헌금'과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자체가 지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의 4차 심리는 오는 2월 10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호남의 정치구조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단초"
증인으로 나선 윤재걸씨

▲ 윤재걸씨
ⓒ오마이뉴스 이주빈
증언을 마친 윤재걸 씨의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증언 후 취재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그는 "기자가 기사를 써서 필화(筆禍)에 연루되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라며 "정도의 길이니까 이기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호남의 정치구조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단초"라고 규정하고 "동교동계 중심으로 이뤄진 호남정치의 과거청산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막대기 정치는 곧 밀실거래이고 밀실거래는 돈 공천 아니냐"고 반문한 뒤 "언론계 선배로서 10여년의 시차가 있는 두 사례에서 호남정치 병폐의 공통분모를 찾아낸 양근서 기자의 시각이 놀랍다"며 양 기자를 격려했다.

그는 또 "생산기반시설이 없는 호남에서 총선이 한 번 치러질 때마다 일백억 원씩 빠져 나갔다"고 주장하면서 "호남의 한을 정치상품 삼아 동교동계 배불리기에 이용당하느라 호남 사람들은 등뼈가 휜다"고 동교동계를 거세게 비난했다.

윤씨는 "재판부가 작은 시각, 기존 판례에서 벗어나 호남정치를 구조적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기대가 컸는데 고무적이다"는 말로 재판부에 대한 호감을 나타냈다.

한편 윤씨는 14대 총선 당시 공천에서 탈락하자 통일국민당으로 출마했던 것과 관련 "입후보등록금조차 없어서 통일국민당으로 출마했지만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고 해명했다.

윤씨는 "한번 잘못 판단해 7년으로 백수로 살았다"고 말하면서 "나는 '글쟁이'이라는 육화된 의식이 있다"는 표현으로 선거에 다시 나서지 않겠느냐는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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