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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보다 할아버지가 좋아." 나와 아버지가 함께 팔을 벌리면 곧장 할아버지에게 뛰어간다.
"아빠보다 할아버지가 좋아." 나와 아버지가 함께 팔을 벌리면 곧장 할아버지에게 뛰어간다. ⓒ 조경국
부모님께서 아이를 데려가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다행이 아이가 엄마 아빠를 애타게(?) 찾지 않는 털털한 성격이라 떼어놓고 오기 편하긴 하지만 아내는 할머니 품에 덥석 안긴 채 엄마 얼굴 한번 보지 않는 아이가 조금은 얄미운가 봅니다.

사실 부모 얼굴보다 처형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을 더 많이 보며 자라고 있으니 아이로선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 가리지 않고 아무 곳이나 가서 잘 노는 것이 대견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합니다.

이번엔 벌써 열흘째 부모님께선 손녀 재롱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아예 데려다주실 생각은 잊어버리신 모양입니다. 낮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던 처형은 뜻하지 않게 긴 휴가를 즐기게 됐고, 우리 부부는 일주일 동안 입고 먹을 옷가지와 우유를 챙겨준 것 외엔 아이에게 신경 쓸 일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꾸고 계신 파밭을 사정없이 짓밣고 있는 해목. 시골에선 모든 것이 놀잇감이 된다.
어머니께서 가꾸고 계신 파밭을 사정없이 짓밣고 있는 해목. 시골에선 모든 것이 놀잇감이 된다. ⓒ 조경국
아이가 부모님 댁에 가있으면 아주 큰 변화가 생깁니다. 일주일에 한번쯤 하던 안부 전화를 거의 매일 저녁 하게 됩니다. 불효자가 아이 덕분에 효자 노릇 하는 셈입니다. 아버지는 아내가 전화를 하면 "아이 때문에 전화했나, 아버지한테 전화했나" 물으시며 아픈 곳을 콕 찌르시곤 웃으십니다.

밖에만 나오면 들어가지 않으려는 떼쟁이 손녀가 아버지께선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모양입니다. 할머니가 애써 심어둔 마늘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이제 겨우 눈을 뜨고 바깥나들이를 시작한 강아지들을 괴롭혀도 말입니다.

태어난지 한달 된 강아지들. 해목이가 등장하면 슬금슬금 피하기 바쁘다.
태어난지 한달 된 강아지들. 해목이가 등장하면 슬금슬금 피하기 바쁘다. ⓒ 조경국
집에 있을 때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갑갑한 방 안에서만 놀아야 하는데 시골 부모님 댁에만 가면 아이도 기운이 펄펄합니다. 어깨를 한껏 치켜세우고 종종걸음으로 열심히 마당을 돌아다니고 요즘은 좀더 용기가 생겨 마을회관 앞마당까지 진출하곤 합니다. 가끔 엎어져서 울음을 터트리지만 아빠, 엄마를 능가하는 수호천사(아버지 표현입니다)인 할아버지가 있으니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이번에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배운 것은 "춥다 주머니에 손 넣고 있어라", "고맙습니다, 경례", "아이 귀여워(강아지들을 쓰다듬어 주는 것인데 강아지들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갑니다)" 등등입니다. 저희가 오면 아버지께선 그 동안 공부(?)한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저희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열심입니다.

"할아버지, 큰개 말고 강아지들 어딨어." 보일러실에 감춰둔 강아지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는 해목.
"할아버지, 큰개 말고 강아지들 어딨어." 보일러실에 감춰둔 강아지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는 해목. ⓒ 조경국
곧잘 말귀를 알아듣고 따라하는 아이가 귀엽기도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께서 손녀 재롱에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면 저와 아내까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이 덕분에 또 한번 효자노릇 하는 셈입니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 마음 안다'고 하지만 사실 아이가 없을 때는 그냥 철부지였고, 아이가 생기고 옛말처럼 부모가 되고 보니 부모님의 존재는 아이에게 묻혀버렸습니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 마음 안다는 것은 '자식을 낳으면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면 부모는 잊고 아이 귀한 줄만 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말일 뿐입니다.

"자! 추우니까 주머니에 손넣고 강아지 찾으러 가자." 아버지, 아내 그리고 강아지를 찾으러 가자는 말에 신이 난 해목.
"자! 추우니까 주머니에 손넣고 강아지 찾으러 가자." 아버지, 아내 그리고 강아지를 찾으러 가자는 말에 신이 난 해목. ⓒ 조경국
솔직히 주머니에 여유 돈이 생겨도 부모님께 드리기는 쉽지 않지만, 별 쓸모없어 보이는 아이 장난감 사는 데는 아깝지가 않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부모님 생각보다 아이 생각이 더 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부모 마음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은 또 다른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식 키울 때와 손자, 손녀를 볼 때는 그 마음이 사뭇 다른 가 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손자, 손녀에 대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한참 깊은 것이 아닐는지. 갈수록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그 마음은 나와 아내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알 수 있겠지요.

강아지를 보지도 못하고 길에서 넘어져 울고 있는 해목. 아빠, 엄마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찾고 있다.
강아지를 보지도 못하고 길에서 넘어져 울고 있는 해목. 아빠, 엄마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찾고 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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