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8일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정몽준 의원의 '폭탄 선언'을 알지 못했다. 19일 새벽 4시경에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연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라는 말만 내 뇌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여섯 시에 텔레비전을 켜자 어머니가 탄식을 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잠을 깬 아내도 놀란 얼굴로 거실로 나와서는 장탄식을 했다. 여느 날들과는 달리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녀석도 일찍 거실로 나와서는 텔레비전을 보며 "웃긴다"는 말을 거듭했다. 정몽준 의원이 초등학생인 내 아들녀석까지 모질게 웃겨준 것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먼길을 가게 된 아내가 먼저 아침 6시 30분경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했다. 투표를 하고 온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괜히 슬퍼진다고 했다. 나는 왜 지레 낙심을 하느냐고, 정몽준의 그 코미디가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는 말로 아내에게 위로도 하고 핀잔도 했다. 그러나 마음이 무겁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10시경 팔순 노모를 모시고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하고, 어머니를 성당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아예 집안에 앉아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집을 나와 천수만 들판으로 차를 몰았다. 아스라한 천수만 들판의 농로를 달리며 "하느님, 제발 제 딸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늘을 가리는 가창오리 떼를 보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질서정연하게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면서도, 논 가운데 한가롭게 앉아 먹이를 찾는 왜가리 부부를 보면서도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제 딸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점심때쯤 집에 돌아왔으나 점심을 먹을 수가 없었다. 점심상을 차려놓고 기다리시는 어머니께 오늘은 점심을 굶겠다고 말씀 드렸다. 역시 집안에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뒷동의 동생 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 데리고 천수만에 가서 바람도 쏘이고 철새 구경도 하자고 했다.

동생네 가족과 딸아이를 데리고 다시 천수만으로 갔다. 천수만 B지구 광활한 들판의 끝이 보이지 않는 농로를 달리고, 호수의 수면을 차고 나는 철새 구경을 실컷 하고는 부석면 시내로 갔다. 어묵과 붕어빵을 파는 작은 가게로 가서 동생과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제수씨가 있으니 운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지만, 당뇨와 통풍을 관리하며 콩팥 조심을 하고 살아야 할 내 건강 걱정을 하면서도, 이상한 비감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5시경 집에 돌아오자마자 텔레비전을 켜고 투표율을 알아보니, 더욱 실망되는 상황이었다. 저조한 투표율은 그대로 노무현 후보의 '패배'를 예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투표 마감 시간이자, 방송사들의 '예측 조사' 발표 시간인 6시를 맞았다. KBS 텔레비전 방송은 카운터 다운을 했다. 카운터 다운이 진행되는 그 시간의 긴장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KBS의 예측 조사 발표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예측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 2.3%라는 아주 근소한 비율이지만, 그 발표는 보는 순간 우리 가족은, 초등학생인 아들녀석과 팔순이 되신 어머니까지 환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MBC와 SBS의 출구조사 발표도 노무현 승리를 점치는 것을 보면서 기대와 함께 더욱 긴장이 엄습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

기대와 긴장을 안고 저녁을 뜨는 둥 마는 둥하고 성당에 갔다. 성탄절 성가 연습을 하고 9시경 집에 돌아오니 딸아이가 반색을 하며 "노무현 후보가 역전을 하고 리드를 하기 시작했어요"라는 말을 했다. 이회창 후보가 리드를 하는 동안 상심을 하고 방에 들어가 누워 계시던 어머니도 거실로 나와서 다시 텔레비전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노 후보의 승리가 확실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뒷동 동생네 집으로 갔다. 동생과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제수씨가 기쁜 얼굴로 맞아주고 술상을 차려주었다. 동생과 축배를 들며 대전의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거니 막내 동생도 축배를 드는 중이라고 했다. 뒤따라온 아내가 성당 사제관으로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다. 제수씨는 성당 사무장님 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부님 사무장님 모두 기쁜 음성이었다.

얼큰해진 기분을 안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신부님, 성당 사무장님, 대전의 막내 동생, 그 외 여러 사람과 통화한 얘기를 들려 드리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자니 중학교 3년 생인 딸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아저씨가 승리한 것은 제 기도 덕분이에요."
"그래, 맞아. 우리 딸의 기도 덕이야!"
나는 즉각적으로 찬동을 했다.

나는 딸아이의 기도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기도 내용을 할머니와 엄마께 공개를 해보라고 했다. 딸아이는 하느님께 자그마치 네 가지의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들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첫 번째 기도는 "하느님, 이번의 우리나라 선거에서 하느님께서 꼭 심판관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기도는 "하느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법과 원칙'을 말하는데, 그 법과 원칙이 오늘 지금 이 선거에서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 기도는 "하느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우리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를 오늘 지금 나라다운 나라가 되게 해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네 번째 기도는 "하느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하느님께 '이 길이 저의 길이 아니라면 저로 하여금 물러나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하느님, 그 분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하느님께서 내 딸아이의 기도를 모두 들어주셨음을 실감하면서 딸아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제 중학교 3년생인 녀석이 그런 생각, 그런 기도를 다하다니! 내 어린 딸아이가 한없이 기특하고 대견스럽게만 느껴졌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의 깨어 있는 의식과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했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와 관련하여 젊은이들에게 큰 희망을 걸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희망을 내 딸아이에게서도 본다.

한편으로는 어언 50대인 내 연령이 참 부끄럽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50대는 전반적으로 자랑스러운 연령이 아니다. 우리 50대들은 이제부터라도 수구적이고 퇴행적인 사고방식과 관습들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하고 반성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50대들은 젊은이들로부터 제대로 존경과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