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홍세화에 대한 '한겨레'의 직무정지 사태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최소한 한겨레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애정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홍세화'와 '한겨레'라는 상징의 충돌이 왠지 어색하고 낯선 탓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길래?

이 낯선 광경 앞에서 어떤 이는 절독, 기고거부를 선언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한겨레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으며, 항의 방문까지 간다는 이도 있다. 흔히 국가기관 앞에서나 불법한 1인 시위가 한겨레 앞에서 이뤄지고 있다면, 홍세화에 대한 '한겨레'의 조치가 꽤나 많은 이들을 상심하게 한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무엇이 현재 독자들로 하여금 그 유사 상징의 두 이름에 거리를 두게 한 것일까?

관련
기사
진중권의 초점 어긋난 ' 안티 한겨레 '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오마이뉴스 12월 11일에 게재된 '진중권의 초점 벗어난 안티 한겨레'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진중권을 향한 날카로운 문체와는 달리 홍세화를 언급하는 내용에서는 무딘 양비론으로 이번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그 스스로 이미 행간에 홍세화에 대한 치명적인 비판을 하고 있음에도 한겨레-홍세화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 두 가지 점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한겨레-홍세화' 모두 잘못 했다, 양비론의 맹점

첫째, 배성록의 주장에 따르면, "한겨레는 징계를 내리며 지나치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 홍세화 선생은 내규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방송에 출연한 것이 잘못"이다.

그런데, 이는 이번 한겨레 사태를 바라보는 외양상 그럴 듯한 사태 진단은 될 수 있을지언정, 실은 이번 사태를 촉발한 '한겨레'의 논리를 그대로 닮은 고압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가령 위의 논지에 따른 자연스런 논리적 귀결은 곧 '한겨레는 고압적인 자세에 대해서 사과하고, 홍세화 선생은 내규에 따라서 미묘한 선거 시기에는 방송출연을 삼가해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배성록도 말하고 있다. "잘못된 내규는 따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궤변일 뿐이다"라고!

이쯤 되면 배성록의 기사는 형식상 진중권의 모욕적 언사에 대한 한풀이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현재 한겨레-홍세화 양 당사자간 문제의 중심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즉, 그의 입장대로라면 한겨레의 고압적인 자세 같은 형식적인 문제가 있지만 한겨레의 사규는 '특정후보 지지 선언을 할 여건도 성숙되지 않은 국가에서 언론인의 정당 홍보 행위는 시기 상조'이므로, 정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가?

배성록에게 우선 묻고 싶다. 홍세화가 대한매일에 한 기고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역시 사규에 어긋나는 행동이므로 자제되어야 할 대상인가? 홍세화 스스로 밝히듯, 문제의 <100분 토론>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지지를 보낸 대한매일의 기사에 대해서는 그 어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신문과 방송의 대중적 파급력의 차이로 이번 문제는 달리 취급할 문제인가?

나아가 눈을 돌려 보자. 오마이뉴스가 최근 열을 올려 취재하고 있는 조갑제의 동정은 또 어떤가. 연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한나라당에 훈수 두듯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는 것은 문제될 바 아닌가? 이미 인터넷 매체의 공적 기능에 동의하며 오마이뉴스란 매체에 기대고 있는 여기 독자들과 배성록씨라면, 조갑제의 최근 동정은 마땅히 비판해야 할 것 아닌가?

기자는 정당의 홍보활동을 삼가해야 한다는 그 '정당한 사규'란 잣대로 보면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매체의 형식적 차이에 따라 그 '정당한 사규'를 달리 해석하며, 내심 용인하는 편의적인 잣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규' 자체의 현실성과 정당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배성록에 따르면, "한겨레는 홍세화 선생이 홍보한 정당이 민노당이건 한나라당이건 하나로국민연합이건 똑같은 처분을 내렸을 것"이다. 우선 배성록이 제시한 '민노당이건 한나라당이건'이란 그 순수 가정이, 한겨레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상징적 위치와 역할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비현실적인 가정인지 여부는 차치해 두자. 그러나, 일견 형식적인 합리성을 갖고 있는 이 말은 곧 홍세화가 지적하고 싶었던 핵심적인 논점에 정면으로 반한다.

그 '정당한 사규'의 규정 의도가 무엇인가. 홍세화가 지적하듯, 한겨레의 사규가 의도하고 있는 바는 권언유착과 정치지향의 발판으로 생각하는 사이비 언론인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현실과 언론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사규가 보수정당-출세주의적 언론인의 커넥션에 대해서는 사실상 견제하지 못하면서 이번 사태처럼 한겨레에서 진보정당의 공개당원임을 천명한 언론인에 대해서는 족쇄로 작용한다면, 이는 안타까운 대비가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허울 좋은 객관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기자 개인의 정당 가입의 길을 보장하여 철저한 자기 검증의 계기를 열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이미 우리 언론계에는 비밀당원들이 많지 않은가.

한겨레가 민족주의 우파 신문?

둘째, 배성록은 기사에서 한겨레를 '민족주의 우파 신문일 뿐'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배성록 자신만의 이런 임의 규정은 거둬들여져야 옳다. 상식에 어긋난 이 규정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한겨레에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이 배성록과 같이 한겨레가 '민족주의 우파 신문'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이번 직무정지 사태에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낄 것이다. 나아가 배성록의 규정대로라면, 아마도 홍세화는 애초부터 한겨레에 참여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며, 한겨레 역시 홍세화란 필자와 조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한겨레는 엄연히 '진보적 대중지'이다. 다만, 한겨레를 둘러싼 진보의 성격과 내용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바뀔 수 있을 뿐이다. 즉, 한겨레는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팩트'를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과 주장을 게시할 수 있는, 이용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동아일보를 떠나면서 "이제 언론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보다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할 것"이란 김중배씨의 일갈 성토에 많은 사람들이 향해 있던 시선은 어떤 언론이었나. 바로 한겨레 아니었는가? 모두 언론이 외면하는 소외된 사회적 문제를 알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우리 사회 언론이 어디인가? 아직 한겨레 아닌가?

한겨레는 보다 편파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중권의 한겨레 기고 거부 글 이후 고태진씨 등이 제기한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더욱 편파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단, 그 편파성이 노무현과 민주당만을 위한 편파성이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 그렇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이 강화해야 될 편파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당파성이어야 하며, 그것은 정치적으로 개혁과 진보를 주창하는 정당과 세력에 대한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심의 표현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겨레는 스스로를 '노무현 찌라시'라 평하는 세간의 풍자에 대해서 경청해야만 한다. 이런 풍자가 비단 우리 사회 수구세력만의 지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홍세화와 진중권이 공히 문제삼은 최상천의 시평은 그 동안 '한겨레= 친 DJ, 친 노무현'이란 세간의 인식에 결정타를 날린 글이다. 단지 그 시평만을 문제 삼은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한겨레가 개혁과 진보를 위해 보다 편파적인 길을 걷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이들이 한겨레의 정체성에 의문과 심지어는 회의까지 가지던 차에 이번 사태가 불거졌기에 더욱 그렇다. 만약 한겨레가 이런 상황 인식에 대한 해명 없이 끝까지 이미 존재하는 사규를 근거로 홍세화에 대한 직무정지 행위를 합리화한다면, 진보적 대중지로서의 한겨레가 가져야 할 '견제권력'에 대한 개방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홍세화가 던진 논점의 중심에서 한겨레를..

이번 사태는 비록 직무정지 사태가 형식적인 절차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결국 문제는 한겨레의 정체성과 한겨레의 정당 활동 관련 사규와 관련짓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과연 한겨레의 진보성은 무엇인가? 과연 정당홍보활동을 금지한 한겨레의 사규는 정당한가?

한겨레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의, 한겨레 홈페이지에 절독 선언을 하는 이들의 문제제기가 편집위원장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방식의 문제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홍세화의 저 질문들에 직접 답해야 한다. '한겨레는 홍세화에 사과하고 홍세화는 민감한 선거 기간 동안 진보정당의 대 언론 홍보활동을 자제하라'는 양비론의 결론은 너무 허전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배성록씨를 비롯한 여기 필자들에게 제안 드리고 싶다. 홍세화가 던진 논점에 직접 마주치고 응답하라고 말이다. 절대 진중권의 선정적인 징검다리로 인해 진흙탕 같은 결론으로 스스로를 내몰지 말 것을. 나아가 진중권씨에게도 한마디 싶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쓸 데 없는 사족을 달지 말 것을 말이다. 진중권의 욕설 담긴 사족이 일종의 레토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수구 냉전세력의 엄숙함에 정면으로 도전할 때, 여기 독자들이 느낀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두운 엄숙함을 주제로 말하고 있지 않다.

모두 홍세화가 던진 논점에 직접 부딪히자. 이 시대 우리에게 소중한 한 언론의 방향을 위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