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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예랑
여중생 살인사건에 대한 미국정부의 해결을 촉구하는 여중생범대위 투쟁단의 방미 시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단식기도회, 광화문 대로에서 벌이는 자동차 경적 시위, 민주노총의 미국 부시 대통령에 대한 항의서한 전달, 방송·문화·예술인 기자회견, 토요일 밤의 광화문 촛불시위 등 지난 한 주 동안 반미 열풍은 순풍에 돛단배처럼 번져갔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사회적인 문제에는 좀처럼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유명 연예인들까지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보인다.

여중생 장갑차 살인사건 무죄 평결이라는 주한미군의 자충수가 월드컵 이후 다시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지만, 이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한 의견일치가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불평등한 SOFA 개정이 과연 가능한가’와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의견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 … 글쎄

“우리는 살인 범죄를 처벌할 수 없게 되어있는 법의 개정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 ‘반미’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난 6일(금) 광화문 한국통신 앞에서 열린 방송·문화·예술인 기자회견에 참석한 영화인회의 이춘연 이사장은 광화문에서 열리는 많은 여중생 장갑차 살인사건에 항의하는 행사들에도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주한미군이 철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불평등한 SOFA 개정이 참석한 사람들의 최대공약수인 셈이지요.”

변영주 영화감독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미군 문제와 관련한 범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쉽게 꺼낼 수 없는 게 진보진영의 고민이다.

바로 하루 전에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민주노총의 항의서한 전달을 위한 기자회견에서도 부시 대통령에게 요구된 바는 ‘미군 장갑차 사건 재판 무효 인정’,‘불평등한 SOFA 개정’ 등이었다.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의 김윤근씨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SOFA 개정 요구를 주한미군 철수투쟁과 별개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 무죄평결로 국민들 사이에 주한미군 철수투쟁에 대한 반감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표면화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국민들의 정서가 김윤근씨와 같은 것일지는 미지수다.

한양대 4학년 신정석씨는 “주한미군 철수에 동의하나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말한다.

건국대 3학년 조광훈씨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주 국방이 실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으로 빚어진 범국민적 시위가 주한미군 철수투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SOFA 개정은 가능한가

ⓒ 황예랑
주한미군 철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들과 주한미군의 철수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바탕에는 미국의 국력이 한국보다 훨씬 강하다는 현실주의적인 이해가 깔려있다. 때문에 ‘SOFA 개정은 가능한가’에 있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인하대 3학년 임지환씨는 “최근에 일어난 주일미군의 강간미수 사건에서도 미군이 가해자의 신병인도를 거절했다”며 “미국이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SOFA 개정 가능성에 반신반의하고, 또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욱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낮에는 기자회견과 항의방문이 밤에는 촛불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경희대 3학년 김홍창씨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전면에 내걸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한계이지만, 그래도 지금이 예전보다 더 희망적인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과거에 일부 운동권들만 주한미군 철수를 이야기할 때는 잘 다가오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함께 동의할 수 있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간단하고 쉽고 즐거운 것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 7일(토) 사회당 게시판에는 “인간의 보편적 생명권을 유린하는 미국의 법을 강요하는 미군의 철수를 주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주한미군 철수를 전면에 내걸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는 지금의 반미감정이 어디로 튀게 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광화문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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