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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꽃다지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꽃다지의 모습
지난 9월 꽃다지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꽃다지의 모습 ⓒ 꽃다지
현재 꽃다지는 이태수, 조성일, 송귀옥, 정혜윤, 김태은씨로 구성된 가수팀과 정인섭 매니저, 민정연 기획실장이 꾸려나가고 있다. 한 때 25명이 넘는 거대 조직이었던 것에 비하면 단촐해진 셈이다. 98년 밴드를 해체하고 기획실을 축소한 이후 7명이 한 팀이 되었다.

구로역 근처 꽃다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꽃다지 생활 5년 째에 접어든다는 이태수씨는 분주해 보였다. 개인 연습실에 방음 장치를 하느라 방음벽지를 자르고 나르고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10월 이사해 아직 사무실 정비가 끝나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 덕에 둘러본 꽃다지의 연습실은 꼼꼼하게 방음벽이 설치된 합동 연습실과 두 개의 개인연습실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합동연습실 한 켠에는 일명 '창작의 방'이라 불리는 작곡실도 있었다.

이제 꽃다지에 들어온지 3개월 된 수습이라는 김태은씨는 보수공사를 하느라 손에 붙은 본드를 뜯어내며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오디션과 인터뷰를 통해 1차 선발되고 한 달간 꽃다지 연습실에서 2차 오디션을 준비한 뒤 합격한 수습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꽃다지는 새 남자 가수를 뽑고 있었다.

정인섭 매니저는 “신문광고를 내도 오디션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미리 뽑아 연습도 하고, 준비도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노래운동을 하겠다고 찾아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꽃다지의 연령대도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으로 예전에 비해 차츰 ‘고령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형편에 한 달 활동비 30만 원을 받고 노래운동을 하겠다고 뛰어들 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꽃다지에 함께 하고 있는 현 멤버들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김태은씨는 “재수할 때 ‘전화카드 한 장’을 듣고는 반해 버렸다"며 "친구 생일 때 노래 불러주면서 전화카드 한 장 선물하는 게 유행했던 때였으니까요”라며 그 기억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궁금했어요. 누가 노래로 감동을 줄까, 하고. 그래서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합류했죠.”

꽃다지는 그녀에게 노래로 감동을 주는 사람들로 각인되어 있던 것이다.

노래만큼 좋은 세상

10년간 100여명이 거쳐갈 만큼 부침도 많았을 꽃다지가 지금까지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다.

“각자 하고 싶은 음악은 다르죠. 음악적으로 음반마다 차이점도 많고. 그래도 ‘노동자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노래가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같아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한 목소리로 내는 이야기다.

“문화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거창하게 운동을 말하기 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을 노래를 통해서 바꾸고 싶어요. 노래는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바꾸니까요.”

두살배기 한결이의 엄마인 정혜윤씨는 보채는 아이를 어르며 이야기했다. 임신 6개월까지 현장에 나가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믿음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2-3일은 한결이와 함께 연습실에 나오는 정혜윤씨는, 꽃다지 식구들과 이른바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 한결이는 꽃다지 멤버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고 있었다. 어느새 '바위처럼'을 자장가로 듣고 자란 한결이가 노래연습 중에는 안무까지 해준다고 옆에 있던 김태은씨가 귀뜸한다.

공연이 없을 때는 하루 3시간 이상 합창 연습을 하는데, 틈틈이 개인연습에 곡해석, 창작까지 해낸다. 매주 한번씩 창작 워크샵을 하고 한 달에 한두 곡씩을 선곡해 반주까지하며 홈페이지에 선보일 연습도 한다.

무대 위에 서는 게 쉬운 일이 아닌 탓이다. 한참 바쁜 5월이면 하루 2-3군데 공연에, 한 공연에서 3-5곡을 부르는데, 하루에 15곡 씩 부르다 보면 목이 못 견뎌낼 때도 있다. 연습을 혹독하게 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이 뿐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하는 연대 발언도 중요한 일이다.

“사실 공연을 가도 현장 상황을 다 알고 가지는 못 해요. 노래 마치고 노동자들과 밥 먹으면서 자세한 얘기 듣게 되면, 가슴이 뜨끔해져서 반성하기도 해요.”

정혜윤씨는 파업을 오래했던 방지거 병원 공연을 기억하며 “힘든 현장을 다녀오면, 다음 번에 다시 찾아야지”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고 전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지난 9월 꽃다지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꽃다지의 모습
지난 9월 꽃다지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꽃다지의 모습 ⓒ 꽃다지
“노동자 노래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결의를 다지고 때로는 삶을 위무받았던 노래들이었습니다. 그 10년의 역사를 한눈에 집적해내는 작업에 참여하고 싶군요.”
- 노동가요 15년 꽃다지 10년 책자에서


꽃다지가 10년 간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꽃다지를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름하여 ‘꽃사람’은 꽃다지를 있게 한 장본인들이다. 이태수씨는 꽃사람에게 노래를 가르치다 당시 회장과 눈이 맞아 결혼까지 했으니 꽃다지와 꽃사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듯 하다.

매달 회비를 내고 콘서트를 할 때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꽃사람들은 현재 1백명 남짓이다. 정인섭 매니저는 꽃사람을 “단순히 꽃다지의 팬이 아니라, 노동문화를 사랑하고 노동문화를 지켜나가는 자율적인 모임”이라고 소개한다.

꽃다지의 음악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번 10주년을 맞아서는 1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는데, 꽃다지들의 참여가 이어지기도 했다.

“민중가요는 민중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리기만 하면 안 되죠. 주체적으로 나서서 알려지지 않은 노동가수들 음반도 사주고, 직접 공연도 가보고 해야 합니다.”

꽃다지와 함께 하는 꽃사람이 있었듯, 민중가요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노래처럼 좋은 세상도 일찍 올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1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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