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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샌더스의 별명은 '미스터 베스트셀러'이다. 과학잡지사의 편집장으로 근무하다가 소설을 쓰게되었는데 그의 처녀작은 50세가 되어서 쓰여졌다. 20대나 30대에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 상당히 늦깎이인 편이다.

하지만 이런 늦은 데뷔를 보상이라도 하듯이 그는 약 30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모두 비평과 상업적인 면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서 그에게 '미스터 베스트셀러'라는 별명을 가져다 주게되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크게 '대죄' 시리즈와 '계명' 시리즈 그리고 '맥널리' 시리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중에서 에드워드 델러니가 형사로 등장하는 대죄 시리즈가 정통 추리소설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계명 시리즈는 각기 다른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는 미스터리와 모험이 융합된 모습이고, 맥널리 시리즈에는 마치 앨러리 퀸을 연상케 하는 젊고 재기넘치는 주인공 아치볼드 맥널리가 등장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백미라면 역시 <제1의 대죄>를 꼽고싶다. 이 작품에는 독특한 트릭이나 반전이 전혀 없다. 범인이 누구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로렌스 샌더스는 초반에 범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어떻게 끔찍한 연쇄살인을 행하는가, 그를 쫓는 형사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범인을 추적하는가 등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델러니 형사가 범인을 쫓는 방법은 뛰어난 추리나 육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범행현장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용의자들을 심문하고 다그친다. 그 과정을 위해서 수백 명의 형사들을 동원하고 수많은 날들 동안 확보된 정보를 분석하고 통계하고 정리하는 '노가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범인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교묘한 심리전을 통해서 범인을 궁지로 몰아 넣는다. 완벽한 증거를 확보해서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심리적으로 자극하며 그의 약점을 공격한다. 결과는 범인의 자멸이다. 공황에 빠진 범인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파산상태에 이르게 되고 결국 델러니의 표현대로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델러니가 보이는 모습이 잔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는다. '증거가 없어서 기소할 수 없어도 그런 놈은 죄값을 치르게 해야돼' 라며 강렬한 인상으로 시종일관한다.

심리를 다룬 추리물이라는 점에서 파일로 반스가 연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델러니는 파일로 반스처럼 장광설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등장인물들 간에 심각하고 어두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작품의 주안점은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 다인은 설명을 하는 반면에 로렌스 샌더스는 단지 묘사할 뿐이다.

이런 그의 작품 경향은 후반으로 가면서 조금씩 밝고 가벼워진다. 로렌스 샌더스의 후반기 대표작 맥널리 시리즈에서 그런 모습들이 보여지는데 우선 작품의 무대부터가 그렇다. 대죄 시리즈의 무대가 어두운 모노톤의 대도시인 반면에 맥널리 시리즈의 무대는 낭만적인 팜 피치 해변이다. 델러니가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형사인데 반해서 맥널리는 젊고 유쾌하며 심각한 것을 싫어하는 유형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경력이 쌓이면서 로렌스 샌더스도 관조와 여유를 갖게된 것일까.

하지만 후반기 작품들에서도 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묘사는 여전하다. 계명 시리즈에서도 맥널리 시리즈에서도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의 관계와 삶, 일상을 묘사하는 그의 솜씨는 여전히 그의 작품들을 독보적인 위치에 머물게 하고 있다. 흔히 추리소설로 분류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그의 소설들은 추리소설이면서도 추리소설이 아닌 그 무엇이다. 그는 작품들에서 범죄자와 형사의 내면과 심리, 당시 미국의 사회상과 흔들리기 쉬운 현대인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제6계명>. 꽤 오래 전에 읽었지만 지금도 이 작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 회색톤의 낡은 건물들이 서있는 인적 없는 거리, 바람이 불 때마다 날리는 낙엽과 옷깃을 세운 채 홀로 걷는 사람들. 그 스산한 풍경. 로렌스 샌더스는 그의 작품들에서 바로 이런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듯 살아가는 사람들. 로렌스 샌더스는 바로 그 황량한 내면을 응시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래의 목록은 로렌스 샌더스의 작품들 중에서 국내에 번역출판된 작품들 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The Anderson Tapes (1969) : 앤더슨의 테이프(고려원)
The First Deadly Sin (1973) : 블랙 로맨스(장원), 연인들(한길사)
The Second Deadly Sin (1977) : 화가와 소녀(한길사)
The Sixth Commandment (1979) : 제6계명(고려원)
Caper (1980) : 케이퍼(서지원)
The Third Deadly Sin (1981) : 사랑의 종말(한길사)
The Case of Lucy Bending (1982) : 루시의 고백(산하)
The Seduction of Peter S. (1983) : 베드로의 유혹(선일)
The Fourth Deadly Sin (1985) : 제4의 대죄(태성)
The Eighth Commandment (1986): 은빛 동전(태성)
McNally's Secret (1992) : 맥널리의 비밀(고려원)
McNally's Luck (1992) : 맥널리의 행운(고려원)
McNally's Risk (1993) : 맥널리의 모험(고려원)
McNally's Caper (1994) : 맥널리의 덫(고려원)


제1의 대죄 1

로렌스 샌더스 지음, 최인석 옮김, 황금가지(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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