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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소록도 주민 이 · 미용봉사를 마치고
제5차 소록도 주민 이 · 미용봉사를 마치고 ⓒ 고달령
미용봉사 일정이 정해지면 소록도병원측과 주민자치회에 주민들께 공지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내고, 지난번에 참여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언제나처럼 봉사 일정도 알릴 겸, 안부편지를 보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편지를 보내지 못해 약간은 심적인 부담을 갖고 출발을 하게 되었다.

2002년 11월 11일. 차창을 통해 스며들어오는 고흥의 유자향기를 맡는 사이 어느새 소록도 주민후생복지관에 도착했다. 주민자치회 직원은 주민들은 아침 6시부터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주민들이 오신 순서대로 접수를 했다고 하면서 일흔아홉번째의 표를 건네주었다.

짐을 풀면서 주민들과 봉사자들은 서로 반가워 인사를 나누었다. 주민들이 먼저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안부를 물을 때마다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네, 네"하면서 "저희가 여쭈어야 될 말씀을 하시네요" 하면서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어떤 분은 우리를 보시더니, 소사모(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http://cafe.daum.net/ilovesosamo)에서 미용봉사 온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나왔지만 편지를 기다렸다고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기도 하셨다.

이번 봉사도 광주중앙교회 성도들이 팀을 이뤘다. 주민들이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도록 해드리기 위해 퍼머와 커트팀이 충원이 되어 23명의 봉사자가 참여했다.

작업은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질서 있게 역할분담이 되어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주민들은 기다리시는 동안 살아왔던 얘기를 꺼내시기도 하시고 소사모에서 하는 '고향찾기' 행사에 꼭 한번 따라가려고 했는데 왜 올해는 안했느냐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우리는 금년에 여러가지 사정으로 '고향방문' 행사를 주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봉사자들은 힘든 걸음으로 나오신 주민들과 말 벗이 되고, 예쁘게 머리도 해드리고, 감겨드리면서 허리 펼 틈도 없이 어찌나 열심히 일을 했던지 분위기가 엄숙하기까지 했다.

주민들께 전해달라고 지남철 운영위원이 특별히 제작해서 보낸 메조소프라노 강양은 성가테이프는 금방 다 떨어졌다.

오후 2시가 되자 커트팀 일부가 예정대로 마을방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한 봉사자가 공원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이발을 해 드려야겠다고 얘기를 해 우리는 중앙공원으로 달려가 근무중인 주민들의 머리를 손질해 드렸다. 그러자 그 분들은 너무나 좋아하셨다.

이곳에는 공원을 관리하는 주민들의 사무소가 있다. 조금 전에 우리 모임에서 자치회장님께 공원관리사무소용 난로 1대 사시라고 후원금을 전해드리고 온 터였다. 경관이 빼어난 이곳 공원은 수십년 전, 장비도 없던 시절, 자신의 몸도 지탱하기 힘든 상처받은 환자들이 지게와 곡괭이, 삽으로 땀을 흘리며 한과 피눈물을 묻으며 조성을 했다. 그런 중앙공원의 슬픈역사를 알고 있기에 공원의 조경을 관리하는 그분들의 수고가 더 없이 귀하게 여겨졌고 관심있게 다가왔다.

커트팀이 다시 새마을 회관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신생리와 새마을부락이 인접해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 기다리셨는지 회관에 모이신 주민들은 우리를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한센병은 전염병도 아니고 유전도 되지 않으며, 지금은 치료약이 개발되어 이젠 완전히 치료가 되었건만 과거의 상흔으로 인해 육신의 불편함을 겪고 계신 분들이 많이 사신 곳이어서인지 머리손질 끝나고 모셔다 드리기 위해 몇 분의 집을 방문했을 때 사시는 곳이 준 병실 같다는 느낌이 들어 참 마음이 아팠다.

어느 할머니는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수고해 주니 정말 고맙소"하시면서 우시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흐르지 않는 눈물을 보고 울먹이면서 '할머니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지금도 그 모습이 떠올라 다음 번에 뵙게 되면 조금이라도 길게 깊은 손을 잡아드리고 싶다.

먼저 커트를 하신 한 주민은 '소록도 주민 하모니카 연주'테이프를 봉사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면서 지속적으로 찾아와서 미용봉사해주니 고맙다는 얘기를 거듭 하셨다.

이곳에서 40여 주민들의 커트가 끝나갈 무렵, 지금까지 소사모 미용봉사팀을 이끌어온 강숙희 회원이 "하루 종일 기계를 사용해서인지 면도기만 잡으면 내 오른손이 전기가 찌르르 흘러 마비된 것 같다"고 하면서도 마지막 오신 분들까지 가위를 움직였다.

5시가 넘어 우리는 동생리 마을에 가게 되었는데, 퍼머를 끝낸 남생리 사시는 한 주민이 집에 호박을 꼭 주고 싶다는 연락을 남기고 가셔서 가는 길에 들렀다. 그 곳에서도 연로하신 분들의 머리를 손질해드리기 시작했을 때 해가 지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금송화, 국화가 예쁘게 피어 있었고 텃밭에는 호박이나 채소를 심을 수 있는 평화로운 바닷가 기슭이었다.

지난 겨울에도 주셨는데 이번에 또 금년 내내 가꾼 곱게 익은 호박을 많이 주시면서 언제 또 오느냐고 눈물을 감추시며 물으셨다. "보고 싶을 때 사진을 보겠습니다. 내년 설 열흘 전 쯤 올께요." 작별 인사를 하고 서둘러 출발을 했지만 하마터면 막배를 놓칠 뻔했다.

이번에 180여명의 주민들에게 커트와 퍼머를 해 드렸다. 녹동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봉사자 전원이 티내지 않고 숨은 봉사를 하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하고 참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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