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속에서
책 속에서 ⓒ 이레
사진 속에서 아이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노인들이 활짝 웃고 있다. 때로 눈물과 슬픔이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웃음을 머금게 하며 기분이 좋아 따라 웃게 만드는 사진들이 모여 있다.

이 책은 M.I.L.K.(Moments of Intimacy, laughter and Kinship : 친밀감과 웃음, 그리고 가족애의 순간들) 사진집 시리즈의 한 권으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100여 장의 사진 속에서 자기들의 우정과 친밀감을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다.

벌거 벗었지만, 놀잇감이라고는 마분지로 만든 빈 상자 하나뿐이지만, 아이들은 서로 껴안고 혹은 같이 물에 뛰어들며 환호성을 지른다. 우산 하나에 머리 셋을 들이밀고 등과 발은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앉아 있어도 친구들이 있기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백인 아이, 까만 피부의 아이들은 신기함에 눈을 떼지 못한다. 얼음과 막대 사탕을 나눠먹는 아이들에게 시간은 그대로 멈추어 있고, 사람들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역시 소중한 친구로 옆에 머물러 있다.

어린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의 사진이 그 천진함과 순수함에 웃음짓게 만든다면, 주름살 가득한 노인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인생을 보여준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웃음을 터뜨리는 할머니들.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친구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아버지들.

주름살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고, 꼭 끌어 안거나 팔짱을 낀 그들의 손도 세월을 비껴가지는 못해서 역시 주름으로 손등이 자글자글하다. 인생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인 주름. 그 갈피에 담긴 삶의 그림자는 어느 만큼일까.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할머니와 그 친구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할머니의 사진에 이르면, 두려움은 오히려 보잘 것 없게 느껴진다. 오히려 삶이 보여주고 있는 분명한 마지막 길, 그 길의 엄숙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진 속 눈물 고인 노인의 눈. 그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지나온 삶일까, 아니면 새로 맞이할 또 하나의 삶인 죽음일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삶에 드나들 테지만, 참된 친구들만이 당신의 가슴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우정의 단맛 속에 웃음과 즐거움 나누기 있을진저", "진정한 친구는, 당신이 바보같은 짓을 해도, 결코 비웃지 않는다." 사진 사이 사이에 적혀 있는 잠언들을 읽는 맛도 각별하다.

사진 속 꼬마처럼 바지가 흘러 내려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동무한 친구들과 발걸음 맞추기에 여념이 없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주름 가득한 얼굴에 호물호물한 입으로 웃을 때가 우리에게도 분명 올 것이다.

책표지
책표지 ⓒ 이레
그 때 우리 옆에 누가 있을까. 우리 옆에 누가 남게 될까. 친밀감과 웃음 속에서 그들은 내게 그렇게 묻고 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제목 'FRIENDSHIP'에 담은 채 말이다.

사진을 한 번 죽 훑어보고 다 봤다며 치우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때때로 사는 게 이게 뭔가 싶을 때, 남루한 일상이 참으로 마음 무겁게 할 때 사진 속에 들어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눠보자. 거기 들어가면 우리들 어린 시절과 지금과 앞으로의 노년기가 고스란히 살아나 말을 걸어 올 것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들 우정과 사랑과 웃음으로 힘을 얻어보라고.

(FRIENDSHIP, 정현종 옮김, 이레, 200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