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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연예술학교의 수업거부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이 학교는 지난 4년 동안 이사장의 공금유용의혹과 탈법매매 등으로 심각한 학내분규가 지속돼왔다. 학교측은 지난달 분규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교수 1명과 조교 1명을 파면하고, 지난 9일 교수 두 명을 추가로 파면조치했다. 또 10일자로 실용음악과 등 3개과 100여명의 학생을 제적했다.

노동부 관리감독 모르쇠에 교육여건 황폐화

▲ 제적생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학교측에서 동원한 사설경호원과 학생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박지연
학생들에 따르면 분규에 이르게 된 사연들은 시간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연원이 깊다. 설립과정부터 최근까지 난마같이 얽혀 있는 사건들은 이 학교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돼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학교는 직업훈련법인으로는 국내 유일의 예술대로 지난 99년 설립되어 매년 실용음악과, 공연기획과 등 8개과 신입생을 모집했다. 애초 정상적인 설립허가 과정이 아닌 특수목적사업으로 분류되어 정부지원혜택은 물론 학점은행제 대상에서도 제외됐지만 등록금이나 교과과정, 강사진의 수준은 여느 전문대학에 못지않았다.

예컨대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은 230만원 선. 일반 4년제 대학 인문계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운영에 대한 감시나 감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점.

교육부 소관의 전문대학과 달리 노동부가 감독하는 직업학교는 경영상의 문제가 많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 특히 70여개나 산재돼 있는 직업훈련법인을 노동부가 일일이 관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학교도 설립 당시 비교적 잘 갖춰져 있던 교육시설이나 기자재가 설립자금과 관련해 하성호 전 학장과 투자자가 갈등을 빚는 사이에 낡게 됐다. 물론 커리큘럼 운영도 파행적으로 이뤄졌다. 교강사의 수당은 실제 보다 낮게 책정돼 지급되고, 학생들은 교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데에 불만이 커져갔다.

실제로 이 학교 주요시설의 현실은 참담하다. 도서관의 경우 신간서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학내에서 학생들이 유일하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 7대 중 3대는 고장이다. 특히 도서관 업무를 책임지는 한명의 아르바이트 학생이 개인사정으로 못나오거나 수업에 들어가면 그나마 사용을 못한다.

70명이 넘는 교수들이 쉴 곳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4평 남짓의 과실이 전부, 학생식당도 서너개의 테이블뿐이다. 고장난 교육기자재는 등록금 외로 학생들이 걷고 있는 실습비로 수리하는 현실이다.

자연히 학교측에 대한 개선요구가 뒤따랐다.

이러는 와중에 지난 6월, 학교는 지금의 장보고 이사장에게 갑작스레 팔렸다. 다소간의 의구심에도 교수와 학생들은 전 학장이 물러난 것에 대해 일단 환영의 뜻을 나타내며 새로운 체제에 대한 기대를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 이사장 겸 학장이 취임 후인 지난 7월 교수 및 학생들에게 △시간강사처우개선안 △학교발전을 위한 방안 △복지시설 확충방안이 담긴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학교정상화는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공연예술학교에 웬 요리과?

하지만 기대가 섣불렀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2학기 개강 직후에 장 이사장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과 등 3개과를 일방적으로 폐과했다. 학교측이 내세우는 이유는 이 학교가 “여느 학교와 달리 직업훈련 법인이기에 사회진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학생들은 “돈벌이가 되는 과로 바꾸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며 항의했다. 일단 폐과된 3개 과의 학생수가 타과에 비해 매우 적었다. 또 장 이사장이 ‘공연예술전문’을 표방함에도 설립취지에 맞지 않는 요리과, 비서과, 스튜디어스과를 신설하겠다며 이전부터 내비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엔 양상이 달라졌다. 9월 파면시킨 교수와 조교, 그리고 이달 10일 제적된 100명의 학생들의 경우 학교정상화를 주장하던 3 개 학과에 맞춰져 있다. 다시 말하면 학내의 비판이 거세지자 교수와 학생들을 솎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 학교에 진입하려는 학생과 몸싸움 중 목에 상해를 입은 학생
ⓒ 최윤수
문제의 핵심은 “이사장의 말이 법에 다름없는 현실”이라고 제적된 학생들은 주장한다. 예컨데 같은 이유로 제적을 시키는 데 적용된 학칙 조항이 틀릴 때도 있다고 한다. 또 “교내 구성원들이 성실히 지켜야 할 규약인 학칙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지도 모른다”며 이해가 되냐고 반문한다. 한마디로 학칙도 징계도 이사장 한마디로 결정된다는 얘기.

실제로 지난 9월 없어진 과의 경우 3학기 이상의 교육과정을 이미 마친 학생들을 포함한 수십명의 학생과 교수들이 이해할 수 없는 까닭으로 중도에 학교를 떠나야 했다. 특히 학과를 없애는 과정, 또 교수나 조교를 파면하는 과정에 어떠한 절차도 갖추지 않았다.

소명기회를 부여하거나 징계심의위원회를 여는 절차도 없었다고 한다. 특히 이달 10일 수업복귀 동의서 미제출로 1백여명을 제적하는 과정에서는 수업거부 참가 의도나 수준에 대한 실사나 면담과정을 생략했다.

학생들은 학내 문제를 여론화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 사당역과 동대문운동장역 등에서 선전전 및 공연을 열고 있다. 또 해임교수와 제적당한 학생들 역시 해임.제적무효와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준비중이다.

이 학교 제적명단에 포함된 실용음악과 박지연 학생은 “실업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차별 받거나 무시당하는 것 같아 더 서글프다”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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