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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불꽃이 장엄하게 피어난 듯한 화화하이.
물 위에 불꽃이 장엄하게 피어난 듯한 화화하이. ⓒ 모종혁
처절하게 벌어진 두 용의 쟁투에서 백룡은 흑룡을 쫓아낼 수 있었지만, 지니고 있던 힘을 다 써버려 백룡강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지우자이꺼우 내 한 호수에 잠긴다. 물 속에 잠긴 백룡은 긴 세월에 걸쳐 황룡으로 모습으로 변했고, 지우자이꺼우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위해 싸운 백룡을 기려 그가 잠든 호수를 '와롱하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쑤앙롱하이 속의 암초석과 비슷한 돌출형태였지만, 용의 모습이 더욱 생동감 있고 선명한 와롱하이는 또 다른 절경으로 보는 이들의 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신묘한 자연의 조화에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반나절을 보낸 시점에서 필자는 마침내 여행객이 묵을 수 있는 숙소가 몰려있는 슈정자이(樹正寨) 티베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4시간여 동안을 무거운 배낭을 짊어매고 쉴새없이 산행했던 필자는 슈정자이의 한 초대소에서 방을 정한 뒤, 짐을 정리하고 허기에 찬 배를 채웠다. 지우자이꺼우 일대의 티베트인들이 숭배하는 해발 4200m 고산 따꺼난(達戈男)산을 배경으로 앞에는 슈정췬하이와 슈정폭포가 자리잡은 슈정자이는 오늘날에도 100여 가구의 티베트인 주민들이 실제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이다.

르자이꺼우 정상에 자리잡은 원시산림

물 속에서 용이 꿈틀대는 듯한 모습의 와롱하이.
물 속에서 용이 꿈틀대는 듯한 모습의 와롱하이. ⓒ 모종혁
지우자이꺼우는 크게 슈정꺼우, 르자이꺼우(日寨溝), 저차와꺼우(則査蛙溝)로 삼분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슈정꺼우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띠고 있으며, 펀징탄부터 시니우하이(犀牛海)까지 볼거리가 연이어 몰려 있다. 하지만 르자이꺼우와 저차와꺼우는 급경사에다 볼거리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 걸어 올라가면서 관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때문에 필자는 점심식사를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전체 일정을 늘려 잡아 계속 산을 탈 것인가, 아니면 차를 전세 내거나 황롱처럼 여행사 관광단과 함께 둘러볼 것인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필자는 남은 일정을 고려하여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이미 슈정자이 마을 입구부터 혼자 걸어 들어오는 필자를 따라붙으면서 끈질기게 차를 타고 관광을 할 것을 권한 택시 기사들이 많아 어려움은 없을 듯 했다.

이른바 '빵차'라는 불리는 미엔빠오(面包)차의 네∼다섯 기사들과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반 시간쯤 했을까. 덩리(鄧力)라고 자신을 소개한 기사와 반나절 차를 대절하는 조건으로 100위안에 가격 절충을 보았다. 덩 스푸(師傅·택시기사를 높여 부르는 호칭)가 모는 빵차를 타고 슈정자이에서 출발한 시각은 오후 1시경. 덩 스푸의 권유에 따라 내리 40분을 타고 올라간 곳은 전장 18㎞의 르자이꺼우에서도 가장 위쪽에 위치한 원시산림지대였다.

르자이꺼우의 정상 써모뉘(色模女)산 일대에는 수 백년은 족히 돼 보이는 나무들이 작은 햇빛의 침투도 거부하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고, 나무 곳곳에서는 새들이 필자의 방문을 환영하듯 노래를 지저귀었다. 산림 속에서 울려 퍼지는 새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거닐고 있노라니, 저 멀리 써모뉘산 정상에서는 한 무리 운무가 피어나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해발이 높은 고산지대인 탓인지 산 정상에서 떠오른 운무는 곧바로 하늘에 닿아 뭉게뭉게 덮여 있는 구름바다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판다를 보지 못해 아쉬웠던 시옹마오하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조화를 이룬 슈정췬하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조화를 이룬 슈정췬하이. ⓒ 모종혁
해발 2,900m인 원시산림에서 빵차를 타고 다시 밑으로 내달렸다. 때때로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가 무리를 지어 놀러온다는 티엔어하이(天鶴海)와 치열한 격전 끝에 지우자이꺼우의 주민들을 괴롭혔던 마귀를 죽인 티베트 영웅 거사이얼왕(格塞爾王)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잉꾸아동(鷹瓜洞)을 지나, 중국의 국보인 '판다'(panda)가 자연서식하고 있다는 시옹마오하이(熊猫海)에 도착했다.

판다는 대나무의 일종인 전죽(箭竹)의 잎을 즐겨 먹고산다. 줄기가 약 3m 높이로 자라며 짙은 자색을 띠는 전죽은 지우자이꺼우에서도 시옹마오하이 일대에 널려 자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우자이의 정화(精華)'라 불리는 시옹마오하이에서 우화하이(五花海)는 결코 스쳐 지나칠 수 없는 절경이다. 한 시간 반 뒤 우화하이 입구에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판다를 만나는 행운이 있길 바란다는 덩 스푸의 격려 속에 차에서 내린 시옹마오하이에서 내려 판다의 행적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필자가 재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판다가 운이 안 좋았는지 서로 만날 수 없었다.

판다를 보지 못한 아쉬움에 입맛을 다지며 높이 80m에 이르는 시옹마오하이 폭포를 끼고 내려갔다. 지우자이꺼우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 작은 폭포들이 널려 있지만 그 가운데도 낙차가 가장 큰 것이 바로 시옹마오하이 폭포이다. 천둥과 같이 주변을 울려 퍼지는 물소리를 끼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폭포 아래로 내려가 한 사람이 겨우 거닐 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밑으로 향했다. 혹시나 판다를 볼 수 있을까 다시 연신 주변을 살폈지만, 어찌된 일인지 간혹 눈에 띄는 관광객들 외에는 판다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판다가 있긴 뭐가 있어.' 30분쯤 혼자 산길을 내려오며 그 흔한 다람쥐도 보지 못해 조금은 실망감에 사로잡힌 필자를 위로하듯, 지우자이꺼우에서 아름답기로 이름높은 절경 중 하나인 우화하이가 눈에 가득 차 들어왔다.

호수 밑에 잠긴 갖가지 형태의 나무들

슈정췬하이 속을 관상할 수 있도록 설치된 나무다리.
슈정췬하이 속을 관상할 수 있도록 설치된 나무다리. ⓒ 모종혁
덩 스푸의 말에 따르면, 지우자이꺼우 곳곳에 산재해 있는 호수와 물웅덩이의 색깔이 다른 것은 물밑에 깔려있는 광물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에메랄드에서 초록빛까지 각양각색의 색깔을 뽐내는 호수의 물빛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르자이꺼우의 우화하이와 저차와꺼우의 우차이츠(五彩池)이다.

우차이츠가 물밑의 돌 성분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이 빛난다면, 우화하이는 호수 전체에 잠겨 있는 연륜을 짐작하긴 힘든 아름드리 나무들과 물 속을 이리저리 헤엄치는 천연의 물고기들이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둘레가 3㎞에 달하는 우화하이 호숫가를 거닐면서 살펴보니, 물가에는 녹색의 이끼가 갖가지 형태를 띠고 있기도 했다. 마치 신이 물 속에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린 듯한 이끼군과 나무군의 절묘한 배치, 수심이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물빛은 완벽한 조화가 되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여기에 때마침 연두빛에 푸르름을 자랑하는 우화하이 주변 산림에서 한 무리의 연무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필자를 환영하는 듯 했다.

반시간 넘게 우화하이의 절경에 빠진 필자를 일깨우듯 저 멀리 도로변에서 덩 스푸가 찾아와 출발을 재촉했다. 좀더 남아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함을 알리는 덩 스푸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빵차에 탈수밖에 없었다. 아쉬움 속에 우화하이를 떠나 4,5분쯤 내려온 지점에서 차가 멈추어 섰다.

이번에는 제발 약속을 지켜달라는 덩 스푸의 부탁을 뒤로하고 전주탄(珍珠灘)과 그 밑 폭포로 발길을 옮겼다. 전주탄은 검푸른 모래톱이 수만년 동안 충적되어 단단한 돌로 변한 비경이다. 전체 면적 200평방미터의 전주탄 위로는 높이 2m가 넘지 않은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꽃들이 만발하고 있고 발목 깊이의 물이 급경사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마치 검은 돌 위로 진주가 흘러가는 장관은 전주탄이라는 작명이 실로 절묘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호수에 아름드리 거목이 잠겨져 있는 우화하이. 무슨 조화로 수백년된 나무들이 물 속에 빠지게 되었을까?
호수에 아름드리 거목이 잠겨져 있는 우화하이. 무슨 조화로 수백년된 나무들이 물 속에 빠지게 되었을까? ⓒ 모종혁
검은 돌 위로 진주가 흘러가는 듯한 전주탄.
검은 돌 위로 진주가 흘러가는 듯한 전주탄.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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