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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술의 시대다.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물론이고 대화의 기술, 사랑의 기술, 설득과 거절의 기술, 고부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해나가는 기술 등등, 기술이라는 단어가 우리 주위에 넘쳐난다.

요즘 여성부 지원으로 서울의 강남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실버 시터(Silver-Sitter)' 양성 교육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데, 내가 맡은 몇 개의 강의 중에도 '의사소통과 자기 표현 기술'이라는 제목이 들어 있다.

자녀가 없거나 혹은 자녀가 있어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부모님을 돌봐드릴 수 없을 때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터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므로 어쩜 의사소통과 자기 표현 기술이야말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훈련을 통해 익힐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모으는 중에, 우리의 나이듦에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문필가인 앙드레 모루아의 책 <나의 생활 기술> 중에서 제5장 '나이 드는 기술'만을 따로 떼어내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인데, 누구나 부담없이 쉽게 펼쳐 읽을 수 있는 100쪽 정도 되는 얇은 책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늙어가는 불행, 능숙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능한가, 능숙하게 나이를 먹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죽는 기술 등을 거쳐 몇 사람의 청년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를 하는데, "짧은 동안 맡은 역할이나 관객 역시 자네들과 마찬가지로 머지않아 죽어야 할 인간이 아닌가"로 끝마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능숙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장담하는 부분이다. 일단 시작된 노화는 저지할 수 없으므로 늙음이 우리들의 육체를 파고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육체와 마찬가지로 마음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노화에 따르는 제일 나쁜 일은 육체가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기에 우리 스스로 살아야 할 이유를 계속 지니고 있을 것을 저자는 특별히 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앙드레 모루아는 과연 능숙하게 나이를 먹기 위한 방법, 즉 나이 드는 기술을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을까. 첫번째는 '나이를 먹지 않는 일'을 꼽는다. 이것은 당연히 적극적인 활동으로 노화를 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또 한 가지는 '늙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자기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을 악착같이 붙들려고 하는 서투르게 나이 먹는 방법에서 벗어나, 남겨진 즐거움을 한껏 맛보며 안정된 시기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나이를 먹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 상대가 아니라 상담 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

마지막 부분인 '몇 사람의 청년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시 54세의 앙드레 모루아가 노년을 앞두고 정리한 나름의 나이 드는 기술을 뒤따라 오는 세대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세상의 잔인함에 대해 마음 속에 하나의 피난 장소를 만들어두고 바위산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50세 혹은 60세를 맞으라는 권고는, 40대 초반의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유효하다.

또한 겸손하면서도 대담해주었으면 하는 마지막 당부에 이르러서는 앞서 인생길을 걸어간 사람만이 담아낼 수 있는 진정성으로 인해 내 가슴에 그 의미가 깊이 새겨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살아가기 위한 기술과 마찬가지로 나이드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나이들어감과 늙어감을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모습이 확연히 달라지기에, 지금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고 무조건 고개를 내저을 일이 아니다. 나이 드는 기술에 귀를 기울이고 그 방법을 익힐 때 우리 삶의 방향이 좀더 분명해지리라는 것,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나이 드는 기술> Un Art de Vivre, 앙드레 모루아 지음, 정소성 옮김, 나무생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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