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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나기 전에 일을 마칠 작정으로 아침 일찍 콩밭에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올해는 콩을 사다가 된장을 담갔는데, 내년부터는 직접 기른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장을 담가 먹을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지난 여름 잦은 태풍과 비바람으로 콩밭은 쑥대밭이 되었고,
태풍 '루사'는 그나마 성한 콩들마저 싹쓸이 해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밭에는 더 이상 거두어들일 콩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썩은 콩대들을 걷어내야 거기다 월동 배추와 무 등속을 심지요. 추수의 날에 거두어들일 것이 없어서인가, 다른 날보다 일찍 허기가 집니다.

밥솥에 밥은 남아 있고, 묵은지 한 접시와 마른 멸치, 풋고추 몇 개로 아침 겸 점심상을 차립니다. 밥을 먹고 일을 계속해야지요. 목이 많이 말랐던가, 막상 밥을 뜨려니 쉽게 넘어가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국이 있어야겠습니다. 몸은 고단하고, 일도 바쁘고, 재료도 마땅치 않을 때 번거롭지 않게 끓일 수 있는 국. 이런 때 가장 만만한 게 김국입니다.

나는 국이 없으면 밥을 잘 넘기지 못하는 식성이라 찌개든 국이든 뭔가 국물이 있어야 하는데, 끼니때마다 국을 끓여 먹는 것도 보통 시간과 정성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그렇다고 인스턴트 국은 먹기 싫으니 김국이 제격이지요.

도시 사람들은 김은 그저 기름 발라 구워먹는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더러 김국을 먹어본 사람도 물 김으로 끓인 국 정도나 먹어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다양합니다. 김 무침, 김 볶음, 김 회뿐만 아니라 김 냉국, 김국까지. 가장 일반적인 김 구이 또한 기름 발라구운 김만을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날 것 그대로 구워서 참기름 한 방울 떨어드린 간장에 찍어먹는 맛이 더욱 일품이지요. 간편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먹는 김은 거의 밥도둑입니다.

나는 찾아오는 길손들에게도 가끔씩 김국을 끓여주곤 하는데 다들 만족스러워합니다. 나야 가장 쉽게 끓이느라 끓인 국이지만 김국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요리였겠지요.

김국은 물 김으로 끓이는 방법과 마른 김으로 끓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물 김국을 끓일 때는 된장을 넣고 끓이는 것이 좋습니다.
된장의 단백질이 생김 특유의 물비린내를 빨아들여서 풋풋한 해초 맛을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고등어나 삼치 등 비린 생선으로 요리할 때 된장을 약간 넣어주면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마른 김으로 끓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끓인 물만 있으면 됩니다. 끓인 물에 살짝 구운 마른 김을 손으로 비벼 넣어주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식성에 따라 참기름을 한 방울 넣어도 좋고 그대로 먹어도 좋습니다. 한 사람 분의 국에는 김 두 장 정도가 적당합니다.

마른 김국을 좀더 시원하게 먹으려면 무를 채 썰어 넣고 끓이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 걸림은 감수해야겠지요. 구수한 김국 덕분에 아침 겸 점심을 달게 먹었습니다. 이제 나는 거둘 것 없는 밭으로 나가 땅을 일구고 다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혹시 김밥을 싸다 남은 김이나 냉동실에 오래 넣어둔 마른 김이 있다면 오늘 저녁에는 김국을 끓여보십시오. 거기다 기름 바르지 않고 살짝 구운 김과 참기름 간장만 준비한다면 김으로 차린 아주 풍성한 식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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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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