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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서산대사 휴정의 선시(禪詩)다.

고진형 위원이 지난 9월 2일 제4대 전라남도교육위원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됐다.

교육위원으로 출발한 이후 약 7년만에 얻어낸 전교조 조직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큰 경사임에 분명하다. 고 의장은 전교조 1,2,4,6,7대 전남도지부장을 지냈다. 이같은 활동때문에 파면·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또 고 의장은 지난 2000년 치뤄진 전남도교육감 보궐선거에 전교조 조직후보로 출마했다.

1차 1위라는 기염을 토해봤지만 현실의 벽은 높아 결선투표에서 아쉽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또 그는 2, 3, 4대 전라남도교육위원으로 내리 3선을 하더니 급기야 전교조 출신으로는 전국 최초로 전라남도교육위원회 의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넓은 방과 비서관, 그의 결재를 기다리는 수많은 공무원들과 관용차까지 생겼다.

평교육위원 시절 기자가 그를 인터뷰하며 '고 위원이라는 존재는 제도권에 끊임없이 개혁을 요구하는 하나의 좌표구실을 해왔으며 그가 역사, 시대, 개혁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주어진 조건에 안주하며 일상의 안위와 진급, 영전만을 바라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또 인터뷰 당시 고 위원은 오랜세월 교육위원을 지내다 보면 제도권에 자연스럽게 순응, 순화되어 버리는 것 아니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예의 '커튼론'을 예로들며 일부분 수긍하기도 했다. 그가 말한 '커튼론'이란 커튼 바깥 쪽에서 제도권을 바라보는 것 하고 제도권에 들어와 커튼안쪽을 들여다 보는 것하고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그 요지.

그런 그가 제4대 전라남도교육위원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됐다. 과거 커튼안으로 성큼 발을 내딛지 못한채 주변만 기웃거리던 아웃사이더가 이젠 아예 커튼 깊숙히 들어와 커튼 내부 사람들과 비판적 '동반자'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던 것.

과거에도 물론 그랬지만 이젠 각계 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을것이다. 아니 사람들은 그가 앉아 있는 자리를 찾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 '고진형'을 찾는 사람과 고진형 '의장'을 찾는 사람을 판별하는 것은 이제 고진형 '선생' 자신에게 달렸다. 특히 고 의장은 기존 교육위원회에 덧씌워져 있는 부정적인 인식, 곧 비판만을 위한 비판, 막무가내식 말꼬리 잡기, 말도 안되는 떼쓰기등 좋지 못했던 교육위원회상을 깨끗히 씻어내야 할 막중한 책무도 짊어지고 있다.

또 의장단 선거에서 기권한 4명의 교육위원들도 껴안아야 한다. 고 의장은 "교육위원 한분 한분이 도민의 선택을 받은 기관"이라며 "전남도교육위원회가 화합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 의장이 걸어왔던 길, 걷고 있는 길, 걸어 가야 할 길을 그의 후배· 동료· 제자들이 따를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내딛는 한 걸음, 한걸음은 훗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길잡이이자 이정표 역할을하게 될 것이다. 제4대 전남도교육위원회가 피폐한 전남교육현실에 알맞는 대안제시와 건전한 비판적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수 있길 우리 '기대'나 한번 해보자.

고 의장을 잘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제자들에게 그는 '남을 위한 공부를 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10년도 지나 그 주문이 그대로 고 의장을 향해 부메랑이 되어 날아가고 있다.

"오로지 전남교육만을 위한 새로운 교육위원회상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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