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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언론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은 ‘북한의 변화’이다. 남북관계도 대북지원도 북한의 변화가 전제조건이면서 또한 목적이었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북한도 70년대가 다르고, 80년대가 다르며 90년대가 다르다.

보수언론들이 지적하는 ‘북한의 변화’라는 것은 대개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북한 사회주의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고, 북한 사회주의체제에 시장경제적 요소가 도입된다면 이는 변화의 시작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각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나에게 변화를 바라지 말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외부의 강요에 의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나에게 변화를 바라지 말라’는 김정일 위원장이 정작 변화의 길에 가장 앞장서고 있어 보인다. 작년에 상해를 방문해서 새로운 사고를 주창하고, 최근에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만나서 시베리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철도건설을 깊이 있게 협의하였다. 또 미국은 백년숙적(百年宿敵)이 아니고 일본이 백년숙적이라더니, 바로 그 백년숙적의 우두머리격인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남북 사이에서도 축구경기,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을 비롯해서 철도연결, 개성공단 등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이런 북한의 변화에 대해서 조선일보의 김대중 편집인은 ‘개방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개혁의 효과를 얻어 보자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북한 정권의 타협점일 것이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북한이 총 대신 돈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을 환영할 입장이다’고 덧붙였다.

김대중 편집인이 북한의 변화에 대해서 마지못해 소극적으로나마 ‘환영할 입장’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 필자로서도 환영할만한 입장이다. 그동안 북한에게 무엇을 요구했다가 북한이 그런 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 또다시 딴지를 거는 것이 보수언론들의 습성이었다.

남북의 철도연결은 이미 1991년에 합의한 기본합의서에서 명시하고 있는데도 2000년에 경의선 착공식을 하자 철도연결은 남침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시비를 걸었다. 바로 그 남침통로(?)인 철도연결이 주춤거리면 이젠 철도연결이 지지부진하다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을 연상하면 어찌되었건 김대중 편집인이 소극적으로나마 환영의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서 어찌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왕 환영할 바에는 화끈하게 환영해서 변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남북관계의 기초를 닦는 일에 앞장서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러나 이 정도 환영에 자족해야할 것 같다. ‘김정일의 도박’이라는 칼럼 제목을 곧이곧대로 따져보면 김대중 편집인은 북한의 도박을 환영하고 있다. 그래도 조선일보가 북한의 변화를 인정하고 환영한다니 솔직한 심정으로 그 정도에 대해서도 감지덕지(感之德之)할 뿐이다.

그런데 김대중 편집인이 “우리의 문제는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북한의 변화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편집인이 제기한 ‘우리의 문제’라는 그 책임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 희망네트워크
김대중 편집인은 북한의 변화와 이에 따른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두 차기정부에 넘기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도 한국에서 차기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에서 현정부에서 시작한 남북 사이의 여러 가지 사업들은 1차적으로 현정부에서 매듭짓고 그 성과를 차기 정부로 넘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은 김대중 편집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듯하다. 북한의 변화와 이에 따른 남북관계의 진전이 왜 가능했겠느냐는 물음을 김대중 편집인에게 하는 것도 하나마나한 질문일 수 있다.

다만 ‘한반도 평화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멈춰야 한다는 내용의 김 편집인의 결론이 현재의 남북관계와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에 대해서 김 편집인의 말과 같이 ‘적절히 대비’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김대중 편집인의 논리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27>은 9월 10일(화) 정도상씨의 글로 이어집니다.
* 9월 5일자 신문읽기 26-최민희씨의 글이 게재되지 못함에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창수씨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김근식 경남대 교수,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권오성 목사,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이용성 한서대 교수,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민언련 사무총장 최민희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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