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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선일보에 최근 생기고 있는 서포터스 팬클럽을 13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소년십자군 운동에 비유하는 칼럼이 실린 적이 있다.(8월 30일자 김광일 칼럼, 하단 참조) 그 칼럼은 당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을 도용하다시피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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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소년 십자군 사건'은 13세기 십자군 운동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소년들이 비이성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을 탈환하러 가겠다며 소년 십자군을 조직했지만, 결국 사기를 당해 노예로 팔려가게 된 일을 가리킨다.

칼럼에서 김광일씨는 무모한 열정이 사리분별이 약한 이들의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켜 일어난 비극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보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이 설치는 것이 기분 나빠서였을까? 이렇게 시민들의 '순정한 가슴'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회의의 눈초리를 보내는 조선일보가 수십 년 동안 아홉 살 어린이의 '순정한 가슴'을 기리고 찬양해 왔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기 그지없다.

아직 첫 번째 재판이 끝난 것뿐이고 항소가 진행중이지만, 열 보 양보해서 법원의 판결이 사실이라 해도 이승복의 행동을 영웅적인 것으로 찬양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미 진중권씨가 지적했다시피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와 세뇌가 아홉 살 어린이의 입에서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튀어나오게 했다는 사실은 분단의 비극과 반공의 맹목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소년 십자군의 열정을 신앙으로 찬양하고 영웅시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승복의 발언을 투철한 안보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착각하고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다시피 열 살도 안된 초등학생이 공산당에 대해, 반공 정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겠는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학교에서 배운 대로 말했을 뿐인 소년을 죽인 공산당의 만행은 비난할 만 하지만, 그 소년의 동상을 전국에 세워 어린이들의 머리에 정답을 입력시키고 죽음을 미화시킨 세력 또한 칭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판단은 상급법원으로 넘어갔다. 만약 원심이 파기되고 피고측이 승소한다면 '이승복 사건'은 언론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기사를 쓰고 파렴치하게 둘러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원심대로 피고측이 패소한다면 이는 판단력이 약한 어린이에게 가해진 국가의 세뇌가 불러온 비극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이 흐른 뒤에는 '소년 십자군 사건'처럼 어른들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어린이의 단순한 열정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 가에 대한 본보기로 인용될 것이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소년의 죽음을 특정 이데올로기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편리하게 사용해왔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8월30일자 [트렌드&아젠다] 현대판 ‘소년十字軍’

소년들이 주축이 된 최초의 십자군 원정은 1212년에 있었다. 소년들의 명분은 단순했다. “어른들과 귀족들은 예루살렘을 해방시키는 데 실패했다. 정신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리고, 그래서 순수하다….” 그들은 곧바로 규합했다. 대개는 할일없이 빈둥거리던 젊은이들이 십자군 원정을 조직하겠다고 나섰다.

그 충동적 움직임은 주로 신성 로마제국에서 일어났다. 일군의 소년들이 신성 로마제국을 떠나 성지(聖地)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그들은 변변한 지도(地圖) 하나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남쪽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동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리는 수천을 헤아릴 만큼 점점 불어났다. 도중에 마을이 나타나면 농부들의 식량을 약탈했다.

‘용기’는 깃발처럼 펄럭였고, ‘정의’는 강물처럼 흘렀다. 그 순진한 피는 80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동서양 할 것 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주로 포퓰리즘(populism·대중영합주의)에 결탁해야 하는 스크린계, 스포츠계, 그리고 정계 주변에 스스로 순수하다고 믿는 ‘순정한 가슴’들이 조직되고 있다. 연령은 10대부터 노령까지 다양하지만 마음만은 소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은 그들을 묶는 아교풀이자, 소식을 주고받는 비둘기(傳書鳩)가 되고 있다. 서포터스 팬클럽은 우후죽순처럼 도처에 피어나고 있다.

그들은 웃고 있다. 누가 뭐래도 평화주의자들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800년 전 소년십자군 때부터 잠복한 ‘약탈충동’이 표면에 부상한다. ‘순정한 가슴’들은 도덕적 고지를 선점했다고 믿기에 그들과 패션이나 패러다임이 다른 부류를 ‘부도덕한 자’로 단죄하고 침탈하기도 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나라를 위로 끌든 밑으로 밀치든 그들이 “항상 옳다”고 믿는 데 있다. 그들은 다양화된 사회의 산물이면서도 상대방의 다양성을 쉽게 인정 못하는 이중 잣대에 갇혀 있다. 본인들은 어디까지나 ‘~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순정 덩어리인 것이다.

1212년 당시 소년십자군들이 어느 마을에서 주민에게 길을 물었더니 곧 바다에 당도하게 될 거라고 했다. 소년들은 바다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았다. 모세에게 기적이 일어났듯이, 자기들이 예루살렘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바다가 길을 열어주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들이 다다른 항구는 마르세유였다. 바다는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며칠을 항구에서 기다렸지만 헛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시칠리아 사람 둘이 나타나 예루살렘까지 배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소년들은 기적이 일어난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두 시칠리아 사람들은 해적단과 짜고 소년들을 예루살렘이 아니라 튀니지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소년들은 모두 헐값에 노예로 팔려갔다.

이처럼 헛되이 모세를 기다리는 전통도 80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가짜 모세’도 아직껏 죽지 않았다. 해적단들도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소속된 현대판 소년십자군들은 정치에 속고 스포츠에 팔려갈지도 모른다. 발등에 입이라도 맞출 듯이 마음을 바치고 있겠지만 정치스타 뒤에 도사린 거대 정파들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권욕이, 그리고 스포츠스타 뒤에 빨판을 뻗치고 있는 거대 자본의 냉혹한 상업주의가 소년십자군을 울릴지 모른다.

이들은 기적의 예루살렘이 멀지 않았다고, 그래서 곧 ‘우리들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서로에게 최면을 걸겠지만 ‘가짜 모세’가 지팡이로 내려치는 바다는 결코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차라리 이런 중국속담을 믿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누가 너에게 해를 끼치거든 앙갚음을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강가에 앉아 기다려라. 머지않아 그 사람의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 될지니.’( 김광일/논설위원 kikim@chosun.com )

덧붙이는 글 | 그리고 하나 더. '콩사탕이 싫어요'는 4일차 조선일보의 사설에서 주장한 것처럼 1998년 '오보전시회' 당시에 생겨난 '반인륜적 유머'가 아니다. 이는 오랜 반공주의의 도그마에 질린 민중들 사이에서 예전부터 있었던, 조작된 사건의 이면을 꿰뚫는 오래된 농담이다. 2탄, 3탄도 있으니 궁금하면 연락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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