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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보면 온갖 야심가들이 다 나온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도 정적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 간웅들의 전시장 같다. 어떤 이들은 <삼국지>가 인생처세훈이 모두 담겨 있는 필독서라고 권하지만 나는 반대다.

이기기 위해서는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식의 후안무치가 그대로 통용되는 서바이벌게임의 피튀기는 병법만이 난무한다. 아마도 우리 국민들은 '삼국지식처세술'에 길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인 이인제에 대한 무감각 또는 관용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다.

97년 대선 때 무수히 많은 말을 퍼부어댄 그를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그가 또 오늘 신문에 나와 큰소리를 하고 있고 조중동 주류신문들은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충실히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번 그때와 오늘의 이인제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전해보자.

▲ 8월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8월 14일 조선일보의 인터뷰 내용은 이렇다. "(반노세력의 핵심인 이인제 고문은) 신당 창당 이전에 국민경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이는 신당을 하지말자는 것"이라고 전하고 이어 그는 "곧 결심을 할 것이고 결심하면 움직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기득권'이란 국민경선에서 선출된 대통령후보직을 말하며 후보사퇴만이 백지신당창당의 조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인제는 97년 11월 16일자 조선일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퇴해야할 사람은 내가 아닌 이회창 후보"라는 제목하에 이회창 후보가 경선불복을 사과하면 포용하겠다는데 대해 어떤 생각이냐고 묻자 그는 "난 여러 차례 경선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고 겸허하게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 누가 원죄를 짓고 있는가. 멀쩡한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고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후보는 스스로 알아서 처신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인제 후보는 97년대선에서 패배했다. 그의 경선불복이유에 대해 국민들은 '노'하고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고 신문들은 이를 용납하고 있다. 초등학교 급장선거에서도 경선불복은 웃음거리로 비아냥되고 있는 비도덕적 행동이다.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수없이 말해도 다수결의 기본원리를 부정하는 이인제식궤변은 어떻게 용인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조선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이인제를 돕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국민경선고(國民競選考)'라고 이름붙인 글에서 국민경선제는 이미 물 건너갔고 대표성도 의심받고 있다고 한마디로 깔아 뭉갠 것이다. 그렇다면 2백만이나 되는 참여국민은 어떻게 되고 그때 들어간 비용, TV현장중계, 그 뜨거웠던 열기는 다 어떻게 되나. 이렇게 깡그리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까놓고 말해 노무현 후보는 안티조선인사니 다시 경선하라는 게 솔직한 말이다.

그리고 지난번 두 차례의 선거패배가 모두 노무현 개인의 책임인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는 것도 우습다. 만일 이인제가 나왔다면 지지율이 그대로 유지 또는 급상승했을까. DJ의 두아들 문제가 결정적인 패인이고 민주당의 지지율저하가 원인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인제 후보도 공동책임을 느껴야하지 않는가. 97년 대선 때 집요하던 이회창 후보의 병역비리 문제제기는 왜 잠자코 있는가. 조중동 주류언론은 이런 이인제가 아주 대견하다는 듯 그의 발언에 최대의 호의와 관심을 보이는 건 또 뭔가.

아무래도 이번 대선에서만은 권력창출의 달콤한 맛을 느껴보려는 것 같다. 97년 12월 17일 선거를 하루 앞두고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신당원들이 조선일보 발송장을 불태우며 '편파보도중지'를 외치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 당시 김대중 주필이 지나다가 "내일이면 모두 끝날 것들이"라고 내뱉어 옥신각신 싸움을 한 일은 또 뭔가.

▲ 방인철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 희망네트워크
한마디로 언론권력의 대권창출욕구는 끝이 없다. 아니 사활을 건 싸움 같다. 이런 와중에 어부지리를 즐겨온 이인제 후보 같은 "나오지 말아야할 후보"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은밀히 제공해주려는 흑심이 보인다. 이인제 후보가 내년에는 어느 여당의 우군이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97년 대선직전 정치부기자 109명이 특정언론(중앙일보)을 거명하며 공정보도를 다짐한 것은 이제 망각 밖의 일이 되었는가. 시대도 많이 바뀌었다. 네티즌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이들이 주도하는 쌍방향언론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오고 있다. 시간이 흘러갔다고 하여 나 몰라라 하고 뻔뻔스럽게 나타나는 삼국지형 정치인들은 이제 퇴출되어야한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18>은 8월 17일(토) 홍세화씨의 글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방인철씨를 비롯해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소설가 정도상씨, 김택수 변호사,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권오성 목사,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한서대 이용성 교수, 대학생 오승훈씨, 민언련 사무총장 최민희씨, 한홍구 교수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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