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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지 못한 형편에서도 가족 공동체 속에서 되도록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많이 만들며 살려고 노력한다. 한 가정의 가장이며, 각기 가정을 이룬 삼형제 중의 맏이라는 위치로서는 더더욱 당연한 일이기도 할 터이다.

내년이면 팔순이 되시는, 지난해 가을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한 번이라도 더 가고 싶으신 곳, 잡숫고 싶은 것들을 찾아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일을 하려고 한다. 어머니는 퇴원을 하신 후부터 가족 나들이와 외식을 더욱 즐겨 하신다.

결혼을 너무 늦게 (나이 마흔에) 한 탓에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딸아이는 올해 중3이고, 아들녀석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아이들 덕에 내가 젊게 살고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동창 모임 같은 데 가서 보면, 실제로 내가 제일 젊은 것 같다. 그건 친구들도 한결같이 인정해 주고 있는 사항이다.

바다든 산이든 가족 나들이를 한다는 것은 번거롭고 힘든 일이기도 하다. 준비를 하는 일에서부터 돌아와서 뒷정리를 하는 것까지 귀찮은 일이 많다. 그럼에도 젊은 아빠도 아닌 내가 가족 나들이에 시간과 경비를 쓰며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자라서 둥지를 떠나기 전에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좀더 많이 갖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좀더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조카녀석들에게 아빠가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것을 큰아버지로서 대신 해주려는 뜻이기도 하다. 조카녀석들에게 큰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가슴에 새겨 주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고 사는 이 시절에는 사촌들이 친형제처럼 서로 친밀하고 의좋게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며, 그것의 기초를 아버지들이, 특히 나같이 맏이인 사람이 앞장서서 잘 닦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중복날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또 두 형제 가족이 저녁 외식을 했다. 대전에서 살고 있는 막내 동생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면서, 삼계탕으로 중복 치레를 한 것이다.

어머니부터 올해 다섯 살인 조카딸까지 다 합해 봐야 아홉 식구이니 내 12인 승 승합차 한 대로 이동을 하기도 아주 간편하다. 그리고 음식점에 가서 4인용 식탁 두 개를 붙여놓고 둘러앉으면 정말로 오붓하다. 우리 한 집 가족만이 아니고, 두 형제 가족이 함께 한 자리이니 그만큼 즐거움도 배가될 것이다.

며칠 전 말복날(10일)에도 가족 외식을 했다. 말복 치레는 어머니의 뜻대로 '영양탕' 집에 가서 했다. 그런데 이번의 가족 외식 행사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음식상 앞에 앉아서 모두 함께 '식사 전 기도'를 한 다음 나는 음식이 오기 전에 그 사연을 가족들에게 공개했다.

나는 최근에 월간 <레지오 마리애>라는 천주교의 간행물에 잡문 하나를 썼다. 14매를 써달라는 청탁이었는데, 쓰고 보니 한 장이 더 늘어난 상태였다. 그 글이 실린 8월 호를 받고 나서 은행에 가서 통장을 넣어보니 고료가 와 있는데, 15만원이나 되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여러 교회 매체들에 꽤 많은 글을 써왔지만, 장당 1만원의 고액 고료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편집장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고액 고료에 대해 슬쩍 의문을 표하는 메일을 보냈더니,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내게는 특별히 등급(?)을 높였노라는 내용의 답신이 왔다.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나의 작가로서의 위상이나 비중은 일천하니 그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테고, 내 나이를 많이 고려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슬며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작가로서의 업적이나 비중과는 상관없이 내 나이가 벌써…. 후유!

나는 그 잡지에 쓴 '내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이라는 글의 내용을 잠시 소개했다. 그 글에는 대전 막내 동생의 큰아들녀석과, 같은 연립주택의 바로 뒷동에 사는 가운데 제수씨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전반부는 조카녀석에 관한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가운데 제수씨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께 이번 글의 소재를 승목이와 제수씨가 제공을 헤준 거여. 다시 말해 이번 고료 15만원은 승목이와 제수씨가 벌게 헤주었다는 얘기여. 그런디 그 돈을 내가 슬그머니 '인 마이 포켓' 헐 수가 있겄냐? 그건 내 양심을 거스르는 짓이지. 그려, 안 그려? 그래서 그 돈의 일부를 우선 오늘의 가족 외식 비용으루다 지출을 허기루 헌 거여. 워띠어, 현명허구두 올바른 처사지?"

그 사실을 처음 듣는 가족들은 한결 기쁜 표정이었고, 아내와 제수씨와 아이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나는 몸의 건강 문제 때문에 소주를 딱 한잔 받아놓고 병아리 눈물 만큼씩 혀 끝을 적시는 식으로 마셨지만, 그래도 더없이 즐거운 기분이었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고 행복한 자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게, 우리 가족에게 이런 시간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무한정 즐거움과 행복감 속에만 파묻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즐거운 마음 한 구석으로 죄스러운 마음 한 가닥이 스미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이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불행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겠지…. 치유될 길 없는 고통과 절망의 질곡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

내가 결코 부유를 즐기고 쾌락을 탐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 소박한 즐거움 속에서도, 오로지 즐거움만을 의식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로서 죄악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돈을 아껴서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조금이라도 더 자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내 가족의 화목과 즐거움을 살피고 챙기는 일에도 태만할 수 없는 것은, 내 삶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실 즐거움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죄스러움이 스미는 것은 내게 늘 있는 일이었다. 어쩌다 값비싼 옷을 입게 될 때도, 비행기 여행을 하게 될 때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눈을 늘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그만큼 불편한 일이기도 하고 행복한 일이기도 할 터였다. 지금 가족과 함께 누리고 있는 즐거움과 행복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줄거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감시의 눈을 의식할 수 있다는 사실―내 영혼의 감각에 대해서도 감사를 해야 할 것이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남들이 보는 것을 개의치 않고 기도를 했다. 다같이 성호를 긋고, 통상적인 '식사 후 기도'를 한 다음, 나는 잠깐 동안 '화살기도'를 했다.

"주님, 저희 가족에게 또 한번 이런 즐거운 시간을 베풀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런 소박한 기쁨과 화목 속에서 저희 가족 모두가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사람의 올바른 길을 잘 배우고 밟아 살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가족의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음을 저희가 늘 기억하며 살도록 해 주십시오. 온갖 불행 속에서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빛을 주시옵고, 저희 가족이 평생 동안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을 돕고 고통을 나누며 살아 가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 모든 기도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딸아이가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 동안 <꽃동네>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기로 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말했다.

"꽃동네에 막상 가보면 주저되는 일두, 슬쩍 피허구 싶은 일두 있을 겨. 그때마다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라구 생각허구 용감허게 허야 혀."

그러자 딸아이가 힘준 소리로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그럴려구 꽃동네에 가는 거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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