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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은 저녁 식사 후에 산행을 합니다. 직장에 몸이 매여 다섯 시 이후에나 행동이 자유로운 아내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여름철의 무더위가 조금은 수그러드는 저녁 무렵의 산행이 한결 수월하기도 해서입니다. 여섯 시쯤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친 아내와 출발을 하면 7시가 좀 넘은 시각에는 해발 284미터의 백화산 정상에 설 수가 있지요.

거의 매일같이 보고 이미 수도 없이 보았건만 마냥 새롭고 아름답기만한 사면 팔방의 저녁 풍광에 한동안 취하다가 마애삼존불이 있는 태을암 근처 너럭바위로 내려와서 몇 가지 운동을 하고, 그리고 중턱의 낙조봉(落照峰)으로 내려오면 찬란한 놀빛을 한껏 피워내는 일몰의 장엄함 속에 흠뻑 빠져들 수가 있지요.

해가 긴 여름철 덕을 실컷 누리는 셈이니, 저녁 무렵의 산행은 결국 일몰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흠뻑 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할 터….

그런데 어제는 비 온 뒤의 안개구름이 가득한 산을 저녁 무렵에 오르자니 색다른 질감이 가슴 가득 안겨지더군요. 아무 풍경도 보이지 않고, 가까이에서 겨우 모습을 나타내는 수목과 바위들이 자못 이상한 형상으로 보이는 것도 같고…. 자욱한 가운데서도 하염없이 흐르며 떠도는 듯한 안개구름 떼의 그 움직임이 묘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것만 같고….

이윽고 태을암 뒷길을 밟고 정상을 향해 걸음을 뗄 때였습니다. 어딘지 모를 안개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해맑은 새소리에 감탄을 하고, 정상 부근에서도 실개천의 조잘거리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을 신기해하며 걷는데, 아내가 환성을 내질렀습니다.

"빨갛게 익은 저 산딸기 좀 봐요. 저 산딸기가 아직 남아 있네!"

아내는 걸음을 멈추고, 오른편 길 옆 작은 벼랑의 위턱쯤에 먹음직스럽게 열려 있는 산딸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산딸기는 대여섯 송이쯤 되어 보였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듯한 선홍빛이 너무도 곱고, 풀숲 속에서 오순도순 얌전해 보이기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딸기는 아내가 "아직 남아 있네!"라고 말했듯이 오늘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하루 전에 발견을 한 아내의 눈길이 그때 오래 머물렀음을 나는 잘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아유, 참 맛있겠네!"하는 아내의 말을 나는 못들은 척했던 거죠.

바로 길 옆인데도 잘 익은 산딸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그 자리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까닭이었습니다. 작은 벼랑이긴 하지만 4미터 정도는 좋이 되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벼랑의 위턱에는 아카시아 나무도 자라고 있고, 주위에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상황이 그런지라 아내는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 걸음을 이내 옮기려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내의 그런 모습을 못 본 척한다는 게 왠지 저어되었습니다. 아내에게 그 산딸기를 따주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들었고, 아내가 어쩌면 내게 "당신이 십 년만 젊어도 저 산딸기를 나한테 따줄 텐데…"라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아내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얼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고….

드디어 나는 아무 말 없이 작은 개울을 건너고, 물기 젖은 풀이 뒤덮여서 미끄러운 낮은 비탈을 올랐습니다. 눈여겨보아둔 산딸기가 있는 곳을 향해 어림짐작으로 가시덤불을 더듬고 나아갔습니다. 잠시 놀란 표정이었던 아내가 이번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내게 방향 수정을 지시해주었습니다.

잠시 후 나는 작은 아카시아 나무의 가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고, 우거진 수풀을 젖혔습니다. 산딸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손이 쉽게 닿지를 않았습니다. 자칫했다간 발이 미끄러져서 4미터의 벼랑 밑으로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못하는 운동이 없어 팔방미인 소리를 들으며 축구선수로 운동장을 누빈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만 풍성하면서도 아련한 추억일 뿐 이 판국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쳇, 옛날 신라 시대 어느 고귀한 부인에게 천길 벼랑의 무슨 꽃인가를 목숨 걸고 따주었다는 아무개 노인을 내가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젊지도 않은 여자에게, 내일 모레면 나이 50인 마누라에게 내가 꼭 이래야 되나.

그런 생각들이 내 뇌리에서 촐랑거렸지만, 그런 말들을 입밖에 낼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이야 늘 하면서도 잘 참고 사는 것이 현명한 방편일 수 있고, 말을 잘 아끼고 가리며 사는 것은 부부의 한 가지 도리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내 손이 산딸기에 닿게 되었습니다. 나는 산딸기들을 한 송이씩 따는 것을 피하고 가지를 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산딸기나무 가지는 의외로 질겼습니다. 맨손으로는, 한 손을 길게 뻗어 손가락 끝을 겨우 움직이는 힘으로는 쉽게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시에 찔려가며 한참 애를 쓴 끝에 가까스로 성공을 했지요.

아내는 환성을 내지르며 손뼉을 쳤습니다. 나이며 몸집과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처녀 시절에는 저런 모습이 괜찮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나는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무사히 일을 마치고 길로 내려가서 아내에게 산딸기 다섯 송이가 달린 가지를 건네주자 아내는 "아, 이 행복!"하고 감탄사를 발하며 산딸기들에 입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산딸기를 따서 내 입에 먼저 넣어주었습니다. 참 맛이 좋았습니다. 전혀 시지 않고 달착지근하기만 한 맛은 냉큼 내 어렸을 적 추억의 미감까지 재생을 시켜주는 것 같더군요. 나는 산딸기를 두 개나 얻어먹었고, 나 또한 뿌듯한 행복감을 누렸지요.

이윽고 우리는 백화산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 둘레의 허공에는 오로지 안개구름뿐이었습니다. 안개구름이 사면 팔방의 허공을 꽉 메우고 있는 형국이었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산정의 바위 위를 휘감아도는 안개구름 떼의 움직임이 자못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같았습니다. 유령의 출현을 예감시키는 분위기인 것도 같고….

우리는 한 곳 판판한 바위 위에 몸을 앉혔습니다. 서로 어깨와 어깨를 기대고 앉아서 심호흡을 하는데 아내는 괜한 무서움 때문인지 몸을 곱송그리는 것 같았습니다.

"완전히 절해 고도의 을씨년스런 산마루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인디…. 난파당한 심정으루다…. 내가 지금 이곳에 혼자 있다면, 나도 무서움을 느낄겨잉?"
내가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자 아내가 킥 웃으며 대꾸했습니다.
"당신이라구 별 수 있겠어요?"

"당신과 함께 있기 때문에 나헌티는 지금 아무런 무서움도 외로움도 읎다는 얘기여."
"그건 나도 그래요. 나 혼자서는 지금 시각에, 이런 날씨에 산에 올라올 생각은 아예 못했을 테구…."
"그러고 보니께 우리 부부만 달랑 백화산 정상의 이런 상황 속에 앉아 있어보는 것두 이번이 첨이네."
"그런가요?"

"우리 부부가 인생 항로에서 넘 좋은 일만 허다가 난파 지경에 처헤갖구 몹시도 허우적거린 눈물겨운 사연이야 다시 기억허기도 싫지먼…."
"그래도 사람의 헐 도리를 다 허려구 애쓰며 열심히 살어왔잖아요?"
"그렇다면 앞으루두 계속 그러야겄지?"

그리고 나는 슬며시 아내의 무릎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습니다. 손을 뒤집어 바닥을 보이니 아내가 살며시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덮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평생 동안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부부임이 또 한번 분명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위를 억세게 뒤덮고 있는, 자욱하다 못해 컴컴하기도 한 안개구름 속에서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15일에 썼습니다만, 사정이 있어 오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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