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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가족은 어제 또 한번 외식을 했고, 이번 외식의 메뉴는 복철과 잘 어울리는 보신탕이었습니다. 보신탕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같은 거부감을 가지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때가 때이니만큼 보신탕 얘기도 자연스러운 감이 전혀 없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원래는 초복이었던 11일 저녁에 보신 외식을 할 예정이었으나, 목요일 저녁의 사정이 가족 모두가 부담 없이 행동 통일을 하며 여유를 가지고 저녁 식사를 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라 며칠 미루어 어제 주일 점심에 또 한번의 가족 외식을 실행한 거지요.

우리 가족은 오래 전부터, 그리고 종종 보신탕을 즐기며 산답니다. 내가 지금 말하는 '우리 가족'이란 한 지붕 밑에서 한 솥 밥을 먹고사는 우리 다섯 식구(어머니, 나, 아내, 딸, 아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연립주택 뒷동에서 살고 있는 동생네 네 식구도 함께 아우르는 표현이지요.

팔순 노인이신 어머니와 올해 다섯 살인 동생의 딸아이에 이르기까지 우리 형제 아홉 가족은 하나같이 가리는 음식이 없고, 보신탕도 아주 좋아들 한답니다. 그래서 일년에 적어도 대여섯 번은 보신탕 집으로 행차를 하곤 하지요.

나와 동생은 사나이들답게 어린 시절부터 개고기를 먹어왔지만, 어머니와 아내와 제수씨는 사정이 좀 다르답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식구들에게 개장국을 맛있게 만들어 주기는 해도 전혀 입에 대지를 않으셨지요. 성당에서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개장국 주관을 도맡아 할 정도로,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개장국 분야에서도 실력이 탁월했지요. 개장국을 입에도 대지 않는 분이,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처럼 썩 좋은 맛을 낼 수 있는지, 나는 의아스러운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지요.

그러던 어머니가 노년에 접어들면서, 더 정확히는 60대 중반 시절에 대수술을 받고 나서 의사의 권유에 따라 개고기를 입에 대신 후부터는 그게 금세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답니다. 온갖 고기들 중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개고기라고 하실 정도로….

아내와 제수씨는 처녀 시절에는 개고기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개고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신념이나 사고방식을 그들도 어느 정도는 고수했던 듯싶습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시집을 온 뒤로 보신탕을 아주 잘 먹게 된 것은, 거의 완벽하게 시집 귀신들이 되어가고 있음의 반증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부부 일심동체의 선결 조건인 부창부수가 우선 음식 분야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음이니….

형 부부와 동생 부부가 이렇게 개고기 부문에서도 화합을 잘 이루고 있으니, 2세들이야 자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올해 중3인 내 딸아이는 평소에는 체중을 의식하고 음식 절제에 부단히 신경을 쓰다가도 보신탕 앞에서는 그만 일단 맛있게 잘 먹고 보자는 주의이니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아내에게 생일 선물을 극진하게 해줄 요량으로 아내를 처음 보신탕 집으로 데리고 갈 때 (몇 년 후에 제수씨를 처음 데리고 갈 때도) 나는, "그게 절대적으로 먹지 못할 음식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한번 시험적으로 먹어보고 나서 따지자"고 설득을 했지요. 내 설득에 마지못해 개고기를 처음 입에 댄 여자들은 구미가 당기는 듯 다음부터는 못이기는 체하며 쉽사리 따라나서더니 급기야는 보신탕을 먹으러 갈 적마다 '희색이 만면'인 지경이 되고 말았지요.

대전에서 사는 막내 동생 부부는 얼마 전까지 개고기를 기피해 왔지요. 나는 동생의 그런 태도를 보면서 속으로, "그게 얼마나 가나 보자. 이 세상 다하도록 그런 태도를 올곧게 유지한다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생각까지 하며 곱다시 주시를 해왔지요.

그런데 동생의 개고기 기피는 내 예상보다 일찍 끝장이 났지 뭡니까. 지난해 가을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어머니의 검진 관계로 얼마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대전에 갔을 때 동생이 보신탕 전문 음식점으로 우리를 안내하더군요. 그 자리에는 막내 제수씨와 아이들도 합석을 했는데, 하나같이 잘 먹더군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동생의 큰아들녀석은 지난번까지는 오리고기인 줄로 속고 먹었다는데, 마침내 개고기라는 것을 안 상황에서도 전혀 외면을 하지 않더군요.

결국 우리 삼형제 가족은 모두 보신탕 애호 가족이 된 셈이었습니다. 훗날 삼형제 가족이 다 모여서 외식을 하게 되면 음식 선택 문제 때문에 불협화음이 생길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혐오하거나 기피하는 대중 음식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면 적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매번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에 덕을 보는 경우도 있답니다. 한번은 몽산포 근처의 한 이름난 보신탕 집에 갔더니, 주인집의 가족인 것도 같고 종업원인 것도 같은 할머니가 우리 가족에게 각별히 신경을 써주더군요. 그 할머니가 내 아내에게 "노인네를 뫼시고 다니니 참 보기 좋다"고 하더니, "시어머니냐, 친정어머니냐?"고 묻더군요.

아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왔다"고 대답하자 그 할머니는 한결 호의적인 웃음을 지으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손님이 그렇게 많어두 노인네를 뫼시구 오는 이들은 참 드물어유. 가뭄에 콩 나듯 허기두 어렵다니께유. 어쩌다 노인네를 뫼시구 오는 사람헌티 슬며시 물어보면 친정어머니래유. 친정어머니는 뫼시구 오너두, 시어머니를 뫼시구 오는 사람은 내 이때껏 한 번두 뭇 봤슈."

그리고 우리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까지 안 그 할머니는 고기도 더 갖다주고 음료수도 두 병이나 선심을 쓰더니,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떠날 때는 마당에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일은 대전에서도 있었습니다. 동생 가족과 함께 갔던 둔산동의 그 보신탕 집에서도 주인 할머니가 우리 가족에게 각별히 신경을 써주더군요. 손님이 그렇게 많아도 노인을 보는 것은 대낮 하늘에서 별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며 고기도 더 갖다주고 해서 우리 가족을 한결 흐뭇하게 해 주었지요.

우리 가족이 단골로 다니는 보신탕 집의 주인 아주머니는 조금은 요란스러울 정도로 우리 가족에게 호의를 베풀곤 한답니다. 우리 가족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곤 하지요. 우선 보기 좋은 것은 매번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것이고, 그 다음 보기 좋은 것은 한 번도 따로 오지 않고 두 형제 가족이 꼭꼭 함께 오는 것이라나요. 두 형제 가족이 한 집 식구들인 것처럼 매번 같이 오는 것은 다른 손님들에게서는 보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그런 주인 아주머니는 매번 꼬리와 족을 덤으로 갖다 줄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는 전골 값을 2천 원씩 싸게 받고 탕도 1천 원씩 싸게 받는답니다,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우리 가족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주어서 보다도, 늘 어머니와 두 형제 가족이 함께 하는 우리의 단란하고도 우애로운 모습을 항시 갸륵하게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그 마음이 우리는 더욱 고마운 거지요.

그런 수더분하고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있기에, 그리고 팔순 노모와 우리 형제 가족이 늘 함께 할 수 있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그 집을 다니며 보신탕을 즐길 생각입니다.

불현듯 십 수년 전의 일이 떠오르는군요. 지금은 미국 LA에서 살고 있는 누이동생 부부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옮겨가기 전 일시 귀국을 했을 때의 일이지요. 동생 부부에게 외식으로 점심 대접을 하기로 하고 슬그머니 보신탕 집으로 데리고 갔지요. 동생 부부가 개고기를 혐오하지는 않아도 기피한다는 것은 눈치로 알아챘기 때문에 보신탕 집 주인아주머니에게도 입 조심을 부탁했지요.

전골을 주문해서 밥까지 잘 먹고 집에 와서야 그게 개고기였음을 말해 주었지요. 그런데 동생 부부는 의외로 놀라지도, 노여워하지도 않더군요. 아니, 놀라기는 했습니다. 개고기가 그렇게 맛이 좋으냐고 하면서…. 그러더니 매제 왈,
"미국에서도 개고기를 먹을 수 있으면 먹어야겠는 걸. 워낙 맛이 좋아서…."
그의 얼굴에는 내게 고마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옛날 우리 성당에서 무슨 행사 끝에 잔치를 한 적이 있지요. 그 잔치의 주요 메뉴는 개고기였는데, 그 잔치 자리에는 프랑스 신부님도 두 분 계셨지요. 우리는 프랑스 신부님들 앞에서 일체 함구를 했고….

프랑스 신부님들이 전골을 맛있게 자시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그게 개고기였음을 알려 드렸지요. 그러자 신부님들은 놀란 표정을 짓더군요. 그러더니 우리 한국말로 왈,
"개고기가 그렇게 맛이 있어요?"
그 프랑스 신부님들의 그 뒤의 생활 모습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바가 없어 소개를 할 수가 없군요. 신부님들의 그 놀라시던 표정만이 내 눈에 선할 뿐….

오랜 세월 개고기를 먹어온 우리 민족의 음식 문화에 대해서는 왈가왈부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월드컵 전에 프랑스의 퇴물 여배우 브리짓드 바르도가 우리의 음식 문화에 대해 비난을 한 것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개고기와 관련하여 찬반 토론이 거세게 일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별의별 말이 다 많아도 결론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논쟁은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형국일 뿐이고, 우리 한국인들의 다수는 계속해서 개고기를 먹을 것이니….

나는 동물들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을 아끼고 살피기에 벌레 하나 죽이는 일에도 조심을 다합니다. 동물을 아끼는 것과 고기를 먹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고기를 먹는 것이 곧바로 무조건 동물학대로 연결되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거지요.

개고기 먹는 것을 혐오하고 야만으로 치부하면서, 개를 사랑한답시고 음식점에 안고 들어와서 타인과 함께 사용하는 식탁 위에 개를 올려놓고 밥을 떠 먹이기까지 하는 철없는 사람들을 나는 더 한심하게 보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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