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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전 10시 30분 A중학교 급식실을 방문했을 때 급식실 안의 온도는 3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11일 오전 10시 30분 A중학교 급식실을 방문했을 때 급식실 안의 온도는 3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 임경환
전산보조원, 급식사무보조원, 과학조교, 도서관 사서, 일용 영양사, 급식 조리원….

이들은 '일용직'이기 때문에 출근하지 않는 날은 일당을 받을 수 없다. 학교 행사로 인해 수업이 없는 날, 시험기간, 국경일 등은 그야말로 '공'치는 날이다. 이들은 또 방학기간인 한 달여 동안 '백수'로 지내야 한다.

방학을 앞둔 지난 11일 오전 10시30분,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A중학교 급식실을 방문했다.

기자가 급식실에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기운으로 얼굴이 금세 화끈거렸다. 급식실 안의 온도는 섭씨 3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얀 위생모자를 둘러쓰고 장화를 신은 조리원들은 온몸에서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미처 손으로 땀을 훔쳐내지 못해 입으로 불어내고 있었다.

10명의 조리원들은 1500여명의 학생들에게 줄 점심 식사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날의 메뉴는 갈비찜, 콩나물국, 오이지, 김치. 한쪽에서는 찜통에 담겨진 콩나물국을 작은 그릇에 나눠 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두 명의 조리원이 25kg이 넘는 밥솥을 마주잡고 어렵사리 운반하고 있었다.

한바탕 전쟁 치른 뒤 밀려오는 고민

 조리원들이 오늘 점심 메뉴인 갈비찜을 나눠 담고 있다. 점심 메뉴를 준비하는 조리원들은 앉아 있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다.
조리원들이 오늘 점심 메뉴인 갈비찜을 나눠 담고 있다. 점심 메뉴를 준비하는 조리원들은 앉아 있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다. ⓒ 임경환
이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 조리원들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비로소 휴식을 취했다. 이날 대화의 주 메뉴는 '수입없는 방학 기간'에 대한 고민들.

"작년에는 딸하고 같이 아파트에 스티커 붙이러 다녔는데, 올해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 친구는 방학 때 도시가스 검침하러 다닌다고 하는데 그거나 해볼까."


대부분의 조리원들은 방학기간 동안 '백수'로 지낸다. 방학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 달 동안만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한 달간의 경제적 '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적금을 붓고 있는 조리원 차아무개(39)씨는 방학이 낀 달은 적금을 연체시켰다가 다음달에 내곤 한다고 말한다.

방학이 괴로운 조리원들. 이들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부담은 단지 '무임금'때문만은 아니다. 올해부터 퇴직금 규정이 바뀌어 방학기간은 퇴직금 지급 계산에서 제외된다. 또 방학기간 때문에 연차휴가도 받을 수 없다. 방학 때 수입이 없지만 의료 보험료와 고용보험료, 국민연금은 어김없이 내야 한다.

일용 조리원의 하루 일당은 2만7800원. 한달 평균 20일 정도 근무해도 월급은 60만원 채 되지 않는다. 중간고사 시험기간(무급)이 있고 국경일(무급)이 많은 5월에는 50만원도 벌기 힘들다. 방학기간 동안 '소득'이 아예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리원의 한 달 평균 수입은 50만원 미만인 셈이다.

화상연고는 필수품, 남는 것은 물리치료 병원 영수증

 조리원들이 밥솥을 이동하고 있다. 밥솥의 무게는 25kg이 넘는다.
조리원들이 밥솥을 이동하고 있다. 밥솥의 무게는 25kg이 넘는다. ⓒ 임경환
1년 동안 조리원 생활 뒤 그들에게 남는 것은 600여 만원의 돈과 병원비 영수증.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고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조리원들의 몸이 성할 리가 없다. 조리원 생활이 연장될수록 오후 5시에 일을 마치고 물리치료하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갈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불을 다루는 일을 하다보니 조리원들에게 화상연고는 필수품이 돼 버렸다.

A중학교 조리원들은 식사를 하다말고 저마다의 '훈장'을 기자에게 드러내 보인다. 손톱에 멍이 들어 치료차 구멍을 뚫은 아주머니의 손, 화상을 입어 쪼그라들어 버린 살, 파란 멍이 든 종아리는 조리원 생활이 그들에게 준 '훈장'이었다.

건축업을 하던 남편이 IMF때 타격을 입어 조리원 생활에 뛰어들어 4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안아무개(43)씨는 "근무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아픈 곳이 많아진다"면서 "아무리 비정규직이지만 힘든 일 하니까, 정규직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받는 정기검진이라도 한 번 받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씨가 처음 조리원 생활을 시작할 당시 하루 일당은 2만4800원. 조리원 경력도 4년이 넘었지만 그 동안 변한 것은 일당이 3000원 오른 것이 전부다. '일용직'은 경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안씨와 갓 들어온 조리원은 일당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급식실 안에 있는 모든 조리원은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월급이 평등(?)했다.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도 급여에 전혀 반영이 안 된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루 일당 2만7800원이 전부다.

조리원들은 집안에 경조사가 생겨도 그리 기쁘지 않다. 집안에 경조사가 생겨도 대체 인력을 충원시켜주지 않으니 쉴 수 없는 형편이다. 한 명의 '공백'이 나머지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니 빠질 수도 없는 것이다.

월드컵 공휴일도 괴롭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성한 몸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성한 몸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 임경환
월드컵 4강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월드컵 공휴일'도 조리원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국가 기관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국경일과 임시 공휴일에는 일당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쉬는 날이 그리 즐겁지 않은 조리원들.

조리원 김아무개씨(36)는 "남들은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해 공휴일이 하루 늘었다고 좋아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저는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라간 것이 원망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들의 신분은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 작년 여름 방학기간을 이용해 암 수술을 했던 윤아무개 아주머니는 계속 일을 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조리원 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조리원 생활을 함께 한 차아무개(39)씨는 "전염성과 전혀 상관없는 병이었고, 학교에 피해주지 않으려고 고통을 참으며 방학기간을 이용해 수술을 했는데, 수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쫒겨날 수 없었다"고 그때 상황을 전했다.

방학을 일주일 앞둔 조리사들은 방학중에 최저생계비라도 지급됐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 조리원 김아무개(36)씨는 "평소에 고용보험료를 왜 걷어가는지 모르겠다"면서 "고용보험에서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지 않으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조리원들의 요구는 한결 같았다.

"방학중 최소한의 급여 제공, 정규직 채용전환, 휴가의 자유로운 사용, 정기적 건강검진…."

조리원 김아무개씨(36)는 "학생을 교육시키는 것만큼 학생들에게 깨끗한 음식을 제공해주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인데 직종에 따라 매우 차별이 심하다"면서 "우리가 학교 선생님들보다 배움이 짧아서 차별대우 당하는 것이겠지만 최소한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것들은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방학이 괴로운 학교 '일용 조리사'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은 비단 이들만이 겪고 있는 설움은 아니다. 여성노조에 의하면 전국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550만 전체 여성노동자의 70%인 350만명 정도. 이들은 대부분 '일용 조리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최상림 위원장은 "여성노동자들의 직업은 평생직장이 아니라는 관념과 여성노동자들은 조직률이 낮아 해고하기에 손쉬운 대상이라는 인식 때문에 남성노동자들에 비해 비정규직화되는 경향이 많다"면서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인건비절감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업무를 비정규직화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하고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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