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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중국읽기

중국은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황허(黃河)문명을 포함해 수많은 문명이 태동한 곳이다. 중국 학자들은 적게는 2500년에서 많게는 6000년 가량을 역사시대에 넣고 있다. 이미 상당 부분 모습을 드러낸 진(秦)대는 물론이고, 은허시대의 유적도 체계가 잡혀지고 있어 중국 역사는 은(殷)나라가 시작된 기원전 1600년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이 긴 시간동안 중국사의 가장 큰 흐름중에 하나는 한족(漢族)과 이민족들간의 권력 투쟁사라고 볼 수 있다. 또 삼국지연의나 초한지 등 고전소설에서 나타나듯이 무궁무진한 이야기거리를 담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요소는 서양의 세력이 중국에 밀려든 것이었다. 합리성이나 이성을 중시하는 철학이 부족했던 중국을 포함한 동양은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서구 제국주의에 호되게 당하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배웠다.

그리고 서서히 중국 역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기반에 적응하고 있다. 중국에는 열강으로 부터 맞는 것(打)을 마오쩌둥이 해결했고, 굶는 문제를 덩샤오핑이 해결했다는 말이 있다. 이 두 문제가 해결된 지금의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역사를 써나갈지 모른다. 역사로 중국 읽기는 중국인들의 내면에 있으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웠던 점들과 역사의 전환점에서 보여준 특성을 살펴 중국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중국인은 순박하다?

어릴적 기억에서 중국인에 대한 것은 거의 없다. 기자가 국가를 인식할 나이쯤에 박정희의 화교에 대한 배타적인 정책이 있어 시장의 노른자인 비단장사와 중국집을 장악하던 중국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을 떠났기 때문이다. 중국인에 대한 인상은 대부분 역사교육에서 얻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국의 인해전술 등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인해전술이 주는 이미지는 어린이들에게 거의 비슷했을 것이다. 무식하고, 용감하다는 것. 거기에 마오쩌둥이 도끼든 도적쯤으로 인식됐다.

이런 인식이 중국인은 용감하고, 호전적이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거기에 공산화 이후 티벳이나 신장에서 벌어진 소수민족과의 무력 충돌이 중국인들의 이런 인상을 강하게 했다.

하지만 중국에 건너온 후 시시때때로 중국인과 부딪히면서 내가 적잖은 편견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인식해야 했다. 그리고 역사를 다시한번 살피면서 중국인들에 대한 인상의 가장 중요한 것을 바꾸어야 했다. 중국인들이 생각보다 호전적이도 잔인하지도 않고 비교적 순박하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중국에 대해서 좀 아는 이들은 웃을 것이다. 어떻게 중국인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맞다. 기자가 말한 것은 대부분 한족에 대한 느낌이다. 중국은 한족을 포함해 56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민족이다.

하지만 현재 13억 중국인구에서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8%로 정도로 극히 소수다. 하지만 주로 변방에 거주하던 소수민족은 한족과 더불어 중원을 갈라서 통치했을 만큼 강하고 호전적인 민족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을 이끄는 한족은 결코 호전적이거나 잔인한 성격을 가진 민족은 아니다. 그런 특성은 중국 역사를 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서기 1000년 전후로 실크로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재미있게 풀어낸 수잔 휫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이산)를 보면 이런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살피면 티벳민족이나 투르크(돌궐) 등 강인한 소수민족에게 중국이 화번공주(화친을 위해 오랑캐의 왕에게 시집보내는 공주)를 보내고, 비판 한필의 말을 10필까지 주면서 사는 등 약한 한족문화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역사는 결코 한족 정권이 약할 때만이 아니다. 서한(西漢)시대에서 청나라 초기까지 중원 지배자의 인구는 적게는 2천만명에서 많게는 6천만명에서 움직였다. 주(周 bc1027~740)나라가 이민족에 멸망한 것은 물론이고, 춘추전국시대를 넘어서 처음 중원을 통일한 시황제의 진국(秦國)도 엄밀히 말하면 한족이라기보다는 실크로드 민족의 피를 받은 민족이다. 이후 역사는 한족과 변방 민족간의 주도권 쟁탈전이다.

사실 한족이 정권을 장악한 시기는 대부분 변방민족이 중원을 장악한 이후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서서히 내부갈등이 심해져 자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한족 스스로가 무력적으로 강성해져 오랑캐를 물리친 적은 거의 없다.

또 수(隨), 당(唐), 송(宋), 명(明) 등 한족이 주도권을 잡은 시대는 영토의 면적도 적고, 시간적으로 그다지 길지 못했다. 또 해외에 정복운동을 벌이기는커녕 이전 국가의 영토를 회복하는데도 급급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봤을 때도 이런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수 양제와 당 태종이 한반도를 침략했을 때, 쉽게 물리쳤지만 원이나 청나라가 우리를 위협했을 때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원 민족의 민족성을 반증한다.

실제로 몽고족의 세운 원(元)이나 만주족이 세운 청(淸)은 워낙에 강성해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쳐 지금 중국 영토의 대부분을 당시에 확립했다.

그럼 한족은 정말 순박한 민족이고, 왜 그런 민족성을 가졌을까. 중국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왕옌징(王燕京) 교수는 한족이 이런 민족성을 가진 것은 농업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은 황하를 젖줄로 해서 농업문화를 가졌다. 농업을 중심으로 한 민족은 유목민족 등에 비해 호전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항상 일정한 환경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숙명론에 빠져 있어 변화를 싫어한다.

중국은 유목민족에 비해 호전적이지 않은 농업민족이었고, 해양민족에 비해 호전적이지 않은 대륙민족이어서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기질은 더욱 작다. 중국인들은 화약, 종이, 나침반, 인쇄술을 발명해냈지만, 중국에서 화약은 춘지에(설날)이나 각종 경사 때 터뜨리는 것이 용도인 반면에 서양에서는 무기로 활용했고, 중국에서 나침반은 풍수를 보는 지관들이 쓰임에 비해 서양에서는 항해술의 기초자료로 사용한 것만 봐도 중국인 내부에 공격적인 기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중국인을 고용하는 외국기업인을 괴롭히는 변화를 싫어하는 중국인들의 성격이다. 우리는 좋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 베이징, 톈진인 등 현지인을 상하이, 광저우로 파견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많다. 심지어는 이 지역으로 출장을 보내려면 다음날 사표를 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한곳에서 정착해 농사를 짓는 문화의 영향이다. 거기에 공산화 이후 호적제도가 확립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 굳어졌다. 호적본(戶口本)은 물론이고 식량을 탈 수 있는 양식본(糧食本), 땔감을 탈 수 있는 매본(煤本), 담배 등을 탈 수 있는 부식본(副食本)이 일괄적으로 관리되어 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 만사가 순조롭고, 집밖에 나가면 만사가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한족의 민족성은 진시황제를 비롯해 한나라, 명나라로 이어진 만리장성의 축조에서도 알 수 있다. 순수히 방어용 성벽인 만리장성은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중국인의 민족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허세욱 교수도 중국인의 민족성을 분석하면서 공격적인 요소는 거의 넣지 않고, ‘평화성, 유약성, 인내성’을 넣은 것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민족성을 가진 중국의 미래도 여전히 과거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젊은 지식인을 바탕으로 과거 정태적(情態的)인 중국인의 민족성을 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동태적(動態的)인 자세로 바꾸어가야 한다는 논의도 많다. 실제로 그런 변화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한 나라의 민족성은 결코 짧은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계 헤게모니의 한 축에 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21세기에도 중국은 결코 호전적이거나 공격적인 민족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특성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른다.

다만 이런 중국인들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가 미래를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미래에 접근할 수 있는 몇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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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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