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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 지가 지난 1,000년 간 최고의 업적을 남긴 인물을 선정하면서 최고의 저자로 추대한 영국의 문호 사무엘 존슨이 이렇게 말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 인간이 궁리해낸 것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을 만들어낸 것.”

정답은 술이다. J. 펌프레트는 술에 대해 “기지를 날카롭게 하고, 그 타고난 힘을 증진시켜 주며, 대화에 즐거운 향기를 풍기게 한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빅토르 위고는 꼬냑을 두고 신들의 음료라 불렀고, 급기야 술이 없는 지구는 산소 없는 지구라고까지 말한 사람도 있다.

물론 술에 대해 이런 찬사만 있는 건 아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험구는 플턴의 노작이고, 전쟁과 흉년과 전염병을 합친 것보다 술 한가지의 해악이 더 크다고 단죄한 자는 영국의 명재상 글래드스턴이다. 악마가 바쁠 때 자기 대리로 인간에게 보내는 것이 바로 술이란 무시무시한 저주도 있다.

한 가지를 두고 이렇게까지 평가가 양극단을 내닫는 존재도 많지 않을 텐데, 아무튼 술이란 물건이 묘한 것이긴 하다. 한의학적으로 살펴보자면 술의 본성은 참으로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물의 기운과(水氣)와 불의 기운(火氣)가 결합된 것이 술이다. 물의 기운이야 술이 물로 빚으니 당연하지만 불의 기운은 또 무엇인가?

알코올이다. 알코올이 처음 증류되었을 때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그 제조법이 아주 오랫동안 비밀로 전수되었다. 나중에 일반에게 알려질 때에도 불이 붙는 물로 유명했다고 한다. 물인데 불이 붙는다는 것은 결국 알코올의 본성이 불이란 사실을 뜻한다.

술을 단순하게 풀자면 알코올에 물 섞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과 불이 만나 이뤄진 것이 술인데, 물과 불을 한의학에서는 음과 양을 대표하는 속성으로 여긴다. 한의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물과 불 두 가지만으로 이뤄진 술은 가장 단순한 재료로 음양이 공존하는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술을 마시고 난 다음에 얼굴이 붉어지고, 말이 많아지며, 속이 화끈거리는 것을 보면 술이 뜨거운 성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알프스산과 같은 고산지역에서 조난자를 구하는 파트라슈와 같은 구조견의 목에 매달린 작은 나무통 안에는 반드시 브랜디와 같은 독한 술이 들어있다. 동사 직전의 등산객이 그 개의 목에 달린 술을 마시고 생명을 건졌다는 이야기도 더러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자랑인 동의보감에서도 술의 성질에 대해 크게 뜨겁고 독이 있다(大熱有毒)고 하였다. 술이 가진 성질 중 불의 기운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술에서 깨면 몸이 춥고 떨리며 무거워지는 것은 술의 반쪽인 물의 차가운 성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불의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날아가 사라진다. 그러면 물의 성질인 차갑고 무거운 기운이 우리 몸에 남는다. 이것이 바로 숙취를 유발시키는 주범이라고 봐도 좋다.

술을 크게 나누자면 막걸리나 청주와 같이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과 소주나 위스키 같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있다. 도수가 낮은 술은 물 기운이 불 기운보다 많다고 볼 수 있고, 도수가 높은 술은 화기가 강한 술이라 할 수 있다. 도수가 낮은 술을 마신 다음날 몸이 무겁고 머리가 띵한 숙취가 오래 가는 것을 경험하셨으리라. 그것은 바로 물 기운으로 인한 숙취이다. 불은 위로 날아가 버리지만 물은 아래로 고여 언다. 따라서 우리 몸에 들어와도 물 기운이 불 기운 보다 오래 남는 것이다.

좋은 물이 좋은 술을 만든다고 할 때는 술에서 물을 강조한 것이다. 오크통 속에서 몇 십 년을 숙성시켰다고 말할 때는 술에서 불을 강조한 것이다. 좋은 물로 오래 묵힌 술이 좋은 술이다. 벗과 술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하지 않는가?

술을 뜻하는 주(酒)자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 수(氵)와 닭 유(酉)가 결합하여 글자를 만들고 있는데, 원래 닭 유(酉)는 무당을 상징하는 글자다. 따라서 술(酒)이란 무당이 마시는 물이랄 수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고대 세계에서 무당은 바로 임금이었다. 고대인들은 모든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을 신봉했는데, 무당은 바로 이 정령들과 통하는 사람이었다. 의(醫)라는 한자는 무당(酉)이 얼굴에 투구나 깃 장식이 달린 관을 쓰고 화살 같은 것을 들고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고대의 의사는 바로 당골이었던 것이다.

신정일치시대에 임금이자 당골이고 의사이기도 한 자의 소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천지자연과 거기에 깃들어 있는 온갖 귀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당이 마시는 물, 즉 술은 바로 하늘과 귀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마시던 일종의 의식주(儀式酒)이었음을 주(酒)자는 알려준다.

따라서 고대에는 아무 때나 아무 사람이나 술을 마실 수 없었고 특별히 정해진 기간에 제한된 사람들만이 마실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술에 취한 상태는 마치 환각 상태와 유사하므로, 귀신과 교통해야 하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을 것이다. 또는 특별히 기념해야 할 어떤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음주가 허용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근자에 들어와 우리의 음주문화는 걱정스러운 구석이 많다. 폭탄주니 지그재그주니 하는 이상한 혼합주를 만들어 단시간에 몽땅 취하는 게 술을 마시는 목적이 돼버리기도 하고, 술을 잘 못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권하는 경우도 많고, 술을 잘 마시는 것이 마치 남자다운 것처럼 여기는 풍조도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이 종종 오해되곤 한다. 나는 술을 마셔도 멀쩡하다는 분들이 도처에 속출하고, 그러니 음주 운전이 횡행한다. 술을 마시면 대뇌의 피질이 억제 내지는 마비되므로 순간적인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반사신경도 둔해지므로 음주 운전 만큼은 절대로 피해야할 일이다.

빙허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이후로(일제 이후로) 우리 사회는 참으로 격동의 세월을 관통해 왔다. 전쟁과 독재정치, 아이엠에프 혼란 등은 개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잔 술로써 시름을 잊고자 하게 만들었다. 참으로 우리 사회의 지난 과거는 ‘술 권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이제는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지나친 음주로 인한 가정 파탄과 국가 경제의 손실을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상 만물이 다 그렇지만 술 또한 잘 쓰면 약이요, 잘 못 쓰면 독이 되느니 재삼재사 경계하고 조심할 일이다.

태음인들은 술이 강하다. 타고 나길 간장 기운이 왕성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두주불사 연일 통음하는 경우가 많다. 간장이 제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래서는 견뎌날 재간이 없다. 술이 세다고 자부하는 태음인 분들은 부디 하루 술을 마신 뒤에는 반드시 이틀 휴식해서 간장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반가운 벗을 만나면 소주 한 잔을 기울일 수가 있지 않겠는가.

태음인들은 천천히 끈질기게 마시는 타입이 많은데 부디 뿌리를 뽑으려 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귀하야 다음날에도 견딜만 하겠지만 술이 약한 사람들에겐 아주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소음인들도 의외로 술이 센 사람이 많다. 이것은 소음인들이 속이 차갑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뜨거운 성질을 가진 술이 어느 정도 받는 것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소음인들은 이목구비가 아름다운 분이 많은데, 이 중에 더러 팔자가 잘 못 풀려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분들이 있다. 가끔 이런 분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는데, 진맥을 해보면 몸이 아주 엉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덩치 큰 태음인들도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면 몸이 견뎌내질 못하는데, 원래 허약체질인 소음인들이 그렇게 매일 같이 술을 많이 마셔대면 몸이 정상일 리가 있겠는가.

소음인들은 모름지기 술을 멀리해야 한다. 어쩌다 마신다고 하면 성질이 차가운 술인 맥주 등은 피하고 청주나 소주와 같이 따뜻한 술을 단백질 안주와 같이 먹어야 한다. 맥주를 마신 뒤에는 언제나 설사를 한다면 당신은 소음인일 가능성이 높다. 맥주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맥주를 마실 때 과일 안주를 시키는 것은 과히 좋은 궁합이 아니다.

소양인들은 술자리에서 제일 먼저 화장실에 가거나 일찍 취하는 사람들이다. 신장 기운이 약하기 때문이다. 소양인들은 평소 성격이 급한 경우가 많은데, 술자리에서도 술잔을 원샷으로 비우고 잔을 돌리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소양인들은 모름지기 천천히 마시고 잔도 여러 번에 나누어 마시는 것이 좋다. 독한 술 보다는 도수가 낮은 술을 안주와 함께 천천히 마시면 매번 필름이 끊기거나 술로 인한 추태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양인들은 대개 성격이 강해서 필자의 서툰 충고를 잘 들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잘 마시면 약이 되기도 하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이 술이다. 필자도 술로 인한 숱한 죄과가 차고 넘치는데, 부디 삼가고 주의해서 즐거운 삶의 동반자가 되도록 노력할 일이다. 우리 나라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오늘은 아내와 함께 포도주나 한 잔 해야겠다.

*본 기사는 과거에 필자가 썼지만 타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내용을 일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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