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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혼자서 노래를 배운다. 아니 홀로 노래를 익힌다. '흑인 영가 모음집'을 펴놓고, 그 음보를 허밍(humming)하다가 절망하게 되면 피아노 앞에서 젓가락 손으로 건반을 눌러가며 그 음을 익힌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노래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노래에 닿아 있음이어라. 오늘 노래의 제목은 "Hear Me(나의 소리 들어라)"인데, 그 노랫말은 아래와 같다.

"Hear me, I am calling. Oh! my brothers.
Hear me, I am calling. Oh! my sisters.
Where is the street we can walk down together?
Where can we meet we greet one another?
Where is the love that can make men free?
Where is the heart that is open to me?
Here is our land, where our brothers were freed,
Here we can hope, we can plant our seed.
Hear me, I am calling. Oh! my brothers.
Hear me, I am calling. Oh! my sisters."

흑인 영가를 영어권에서는 'Negro Spirituals'라고 하는데 이름 그대로 흑인들의 영혼이 담긴 노래라 할 것이다. 그 리듬의 음색은 현재의 고난의 삶을 표현할 때에는 소울(soul)풍으로, 대체로 무겁고도 어둡게 드러나고, 미래의 갈망의 삶을 표현할 때에는 비트(beat)풍으로, 대체로 경쾌하고 밝게 드러나고, 고통스런 삶의 비애와 희망찬 미래에의 갈망을 담고 있는데 현대음악의 재즈(jazz)와 블루스(blues)는 이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먹을 양식과 의지할 가정, 돈과 섹스, 사랑과 일자리를 갈망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박탈자들의 노래이지만, 패배에 맞선 용기, 절망에 맞선 희망, 고난에 맞선 낙관의 정신이 구체화된 것이라 하겠다.

흑인 영가는 원래 미국의 흑인들이 노예시대 때 만들어 부른 그리스도적인 종교의 복음성가였다가 이제는 보다 보편화되어 포크송의 한 장르가 되었다. 19세기 초엽 신교도인 영국계 백인 농장에서 일한 흑인들이 부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사 내용은 구약성서 중의 이야기에서 취택한 것이 많으며 고통스러운 현실에서의 도피, 그리스도가 약속한 신앙에 의한 천국에서의 자유와 행복에의 희망을 노래한 것이 많다.

"켄터키 옛 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로 시작되는 민요적인 작곡가 포스터(Foster)의 노래 "켄터키 옛 집"을 따라 부르며, 그리고 J. 덴버(?)인가 하는 가수가 "너와 내가 만난 그 곳도 목화밭이라네..."하고 부른 '목화밭'이란 노래를 기타로 배우면서 니그로의 삶을 머리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시간과 공간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음악은 세계인의 공통언어이다'란 말처럼 니그로와 같이 호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더욱이 양악들 중에서도 흑인 영가풍은 어쩌면 동양적 숙명론의 한(恨)이 삶을 휩싸고 있는 우리에게는 한층 자연스럽게 다가들 수 있었다.

그 어느 날인가, 흑백 TV로 흑인의 삶을 다룬 6부작 기획드라마인 외화 <뿌리>(Roots)를 시청한 바 있었다. 지금은 성공하여 미국의 상류사회인으로 살아가며 문필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인 흑인 A. 헤일리가 헤일리 가문의 자전적인 가족사 형식의 소설로 쓴 것을 각색하여 방영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 헤일리는 19세기경 아프리카의 고향땅로부터 이역의 미국땅에 노예로 팔려온 할아버지 시대와 노예란 굴종과 모멸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 시대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t)처럼 존재하는 흑백의 차별을 경험한 자신의 삶을 마치 시간상의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며 자신과 동시대 형제들의 영혼의 뿌리를 더듬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 헤일리에게 있어서의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과거는 실로 고통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성공한 인물로 미국의 현대문화에 익숙하게 된 자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과거란 아픈 추억으로 향수를 일으킬 정도라고 할까나?

당시 <뿌리>에 대한 감동이 어린 나를 휩싸고 있을 때, 베스트셀러 북인 말콤 X의 <말콤 X>란 소설을 구해 읽게 되었다(Malcom X: 1925-1965 미국 흑인 해방운동의 급진파 지도자. 네브라스카주에서 출생. 학교를 중퇴하고, 21세에 강도죄로 투옥되어 모슬렘 신앙을 받아들임. 석방 후 모슬렘의 헌신적인 활동가로 차별받고 억압받는 흑인의 분노를 대담하게 표명한 그의 언사와 웅변은 흑인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줌. 65년 2월 뉴욕에서 암살됨).

현재 미국의 흑인 슬럼 거리에서 자조와 모멸 속에서 흐득이는 흑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자유인의 혼과 넋을 자신에게 심고 형제들에게 넣고 담기 위한 해방운동가로서의 그의 삶을 담고 있었다. 굳이 앞서의 <뿌리>와 비교한다면 보다 더 치열한 인간정신이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때 현대의 흑인운동가인 M.L. 킹 목사의 글 <왜 우리는 기다릴 수가 없는가?>(Why not wait for?)을 읽게 되었다. 아니 그의 절규에 찬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지면에 인쇄된 활자로부터 그의 절규하는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가 꿈틀거리며 튀어나왔다.

미국사에서 남북전쟁(1861-65) 이후의 '노예해방령'에 의해 흑인들은 제도적으로는 노예신분에서 해방된 자유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엄청난 차별로 이한 흑인들의 부자유가 실제로 강제되는 이 때에 흑인들이 진정한 자유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회상의 실현을 요구하다 결국은 암살되고 만 그의 삶을 돌이켜 본다면 그의 글은 한스러움의 눈물과 열망의 피맺힘이 범벅된 그의 삶과 영혼이며, 나아가 흑인의 모든 것이다 하겠다.

이러한 경험은 나를 금요일 오후 자연스럽게 흑인 영가 배우는 시간으로 이끌게 하였고 나는 그 노래들을 다소 서툴게라도 정성을 다해 온몸으로 익힌다. 하여 그 노래들은 입으로 머리로 불리워지지 않고 가슴으로, 영혼으로 불리워진다고 할 것이다.

욕심이 있다면 그 서툰 노래를 좀더 세련되게 부르고 싶다고 할까나! 그래서 가까운 장래에 그 옛날 숨어서 읽던 책 <자기의 땅으로부터 유배당한 사람들>(F,파농. 도서출판 청사. 1978)을 다시금 읽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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