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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남의 중병보다 나의 감기가 현안이어서일까.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면서도 여전히 가슴 속은 내 이야기로 넘쳐 나고 있다. 나이 먹으면 좀 달라질까.

한때 나는 나이보다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경험의 영역이 제한적이고 새로운 것에 대해 열려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어려움에 대한 이해력이 뚝 떨어지게 마련이라고 여겼다. 반대로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경험이 풍부해 가슴 속이 넉넉하면 다른 사람을 품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중년이 된 지금은 어떨까. 나이가 갖는 깊이가 있고, 경험이 갖는 폭이 또 있다고 생각하며 나이와 경험 모두 다 중요하다고 느낀다. 소노 아야코는 이런 중년기의 변화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며 책 <중년 이후>를 시작하고 있다.

소노 아야코는 1931년에 태어난 71세의 일본 작가이다. 그런데 70대에 '중년 이후'를 쓴 것과 달리 아주 오래 전 40대에 노년의 이야기를 담은 '행복한 老年을 위하여(계로록, 戒老錄)'를 펴냈다. 작가이기에 자신의 이야기에 앞서 40대에는 노년을, 70대에는 중년을 들여다 본 모양이다. 예지력으로 본 것이 더 나을까, 아니면 직접 체험한 것이 더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삼십대 중반부터 오십대까지를 중년으로 생각하는 저자는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계산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면서 인생이 무르익어 간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중년기에 체력 지수는 하강하지만 정신 지수는 상승하기 때문에, 중년은 용서의 시기이며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한다. 또한 인생의 켜켜에 숨겨져 있는 사연을 중층적으로 보면서 중년 이후에는 물러설 때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갈 것과 남은 인생 동안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며 살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을 것을 조용한 목소리로 설득하고 있다.

한편 <행복한 老年을 위하여>에서는 제1장 엄격함 그리고 구원, 제2장 삶의 한가운데서, 제3장 죽음과 친숙해지기라는 제목 아래 노년기에 마음에 담아 실천해야 할 일들을 조목 조목 풀어놓고 있다.

특히 해달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지 말라, 노인이라는 것은 직함도 자격도 아니다, 자신의 생애가 극적이라고 생각지 말라, 새로운 기계를 쓰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노년을 특수하고 고립된 상황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등은 내가 노인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잘 인용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소노 아야코가 40대에 중년 이야기를 쓰고, 70대에 노년 이야기를 썼다면 좀 달랐을까. 그랬다면 오히려 재미없었을까. '중년 이후'든 '행복한 老年을 위하여'든 읽는 순서는 상관이 없겠다. 인생의 길에서 누구나 꼭 지나야 할 역(驛)들이라면 순서대로 가는 것도, 거꾸로 가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테니까.

얼마 전 친구의 승진 소식을 들었다. 기업의 꽃이라는 이사 승진 소식이었다.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일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과 함께 알찬 열매도 함께 맺기를 기원했다. 중년이란 이런 나이구나 싶다. 중년역(驛)을 지나면 노년과 죽음의 역(驛)이 곧 나타난다는 인생의 철길을 아는 시기, 그렇기 때문에 역시 '발전과 확장'에 덧붙여서 '철수와 수습'도 마음에 두어야 하리라.

살아온 시간만큼 통찰력도 저절로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소노 아야코의 맺음말처럼 인생의 완성이 뒤늦게 찾아오게 되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차분하게 음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길 위의 존재이다. 나는 그 길의 어디쯤 와 있을까.

(중년 이후, 소노 아야코, 오경순 옮김, 리수 2002 / 행복한 老年을 위하여, 소노 아야코, 정성호 옮김, 문학사상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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