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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부산출신의 노무현 후보의 1위 득표는 정말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지역주의가 타파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일 대전의 이인제 후보에 대한 몰표는 역시 지연에 의한 표는 무시할 수 없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하였다. 우리나라 국민의 성향은 특히 혈연, 학연, 지연 등에 대단히 민감하다. 여태까지 그런 연분에 의한 혜택이 개인과 지역에 특별한 기여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인제 후보의 몰표가 당연한 첫째 이유가 바로 그 지연 등의 연고 때문이라고 본 기자는 생각한다. 이 지연에 의한 투표의 영향은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세계 어느 나라도 연고는 정치에 영향을 줄 것이다.

본 기자는 대전에 산다. 이번 민주당 국민경선에 직접 신청도 하여 당첨되어 참여도 했다. 경선에 참여하기전에 주위의 친구나 친지 등에게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 물어보니 거의 모두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였다. 왜 지지를 하느냐고 물어보니 무슨 특별한 이유는 없고, 특별히 지지하는 후보가 없으니 아무래도 출신지역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경선전부터 이인제 후보의 압승은 미리부터 예상하였다.

그런데 경선에 참여하기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국민선거인단에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며 경선에 대해 설명할 것이 있다며 지난 15일 금요일 저녁 7시에 민주당 지구당사에 나와달라는 요청전화를 받았다.

15일 7시에 지구당사에 가보니 위원장은 민주당의 정통성을 호소하며 이번 경선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에 차지하는 의미를 강변하였다. 당사에 가기전에 특정후보의 지지를 요청할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는 다르게 특정후보는 거론하지 않고, 가장 정통성 있고, 본선에서 경쟁력 있고,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을 뽑아달라고 호소하였다. 본 기자는 이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가 하며 정말 기뻤다.

그런데 그 뒤에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나와 이인제 후보를 지지발언을 하고, 이인제 후보의 처제가 나와 역시 이 후보에게 한 표를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거기에 경선투표방법을 알려준다며 A4용지크기의 알림판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컴퓨터 투표화면을 보여준 것인데 이인제 후보만 사진을 드러내고 나머지 후보는 물음표(?)로만 표시한 것이었다. 그는 이인제 후보는 꼭 1번에 올려주고, 나머지칸은 마음대로 선택하라며 이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였다.

그 모임을 마치고 가까운 식당에서 그 지구당에서 준비한 저녁을 먹으면서 꼭 누구를 선택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이인제 후보를 선택하겠구나 라고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이미 유권자에게는 선호하는 후보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지구당의 노력이 유권자의 선택권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17일 경선장에서 민주당이 준비한 도시락을 먹은 후에 선진국에서도 보기 힘든 컴퓨터로 직접 투표를 하였다. 투표하기 전에는 설명서를 보고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쉽고 간편하였다. 초보자라도 투표방법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투표방법이 국회의원선거나 대선에서도 했으면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텐데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가는 시점에서 전근대적인 투개표방법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표후 한참동안을 투표진행과정을 보고 들으며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역시 경선결과는 이인제 후보에 대한 몰표로 끝났다. 경선회장에서 투표결과를 보고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진정한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 정치가 실현되려면 멀었는가 하는 아쉬움뿐이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차분히 생각해보니 그런 이인제 후보에 대한 몰표는 당연한 순리인 것 같이 여겨졌다. 국민이 대선후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그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낀 대다수의 국민은 어느 누가 나와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현재의 TV토론에서도 후보간에 서로를 깎아내리려는 토론이 대부분이고, 후보들이 발표하는 정책도 거의 비슷하다. 이런 현실에서는 아무래도 인간인 이상 자기와 좀 더 관계가 있는 연고를 찾게 될 수밖에 없다.

지연에 의한 유권자들의 선택은 정치가들이 당선후에 연고지역에 각별한 혜택을 주지 않는한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연고에 매달리는 정치인은 타지역에서 외면을 받게 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타지역에서 표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또 그런 지연에 의해 몰표를 받은 후보는 경쟁후보의 지역에서 당연히 표를 얻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후보와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는 후보들간에 정당한 평가를 한다.

수십 년동안 쌓인 지역감정이 한 순간에 없어지기는 어렵다.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깨이고,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보다 천천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차분히 지켜보자. 미국같은 선진국에서도 연고에 의한 후보밀어주기는 있다. 그런 혈연, 지연, 학연 등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지기는 어려우나 옛날같이 정치의 정당한 평가를 방해하지는 않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언론은 각 후보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하고, 특정후보를 편들면서 유권자들이 후보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할 수 없게 하였다. 하지만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경선은 시작에 불과하다. 옛날같이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결과가 나오는 경선이 아니라 국민과 정당원들이 직접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고 있다. 이변이 속출하며 각본없는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지 못하고, 다양한 언론의 출현으로 특정언론이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는 이번 경선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의 장이 되고 있다. 경선이 진행됨에 따라 각 후보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진면목이 드러나고, 각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 유권자들에게 평가될 것이다.

당을 장악하였다고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과 국민에게 도덕성과 자질 등을 검증을 받은 후에야 겨우 후보로 나설 수 있다. 어느 후보가 선출되든 국민에 대한 무서움과 고마움을 뼛속깊이 새기며 대선후보로 나서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번 경선에서 선출된 대선후보라도 당권장악은 어려울 것이다. 정당이 국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여당이라도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고, 야당이라도 국익을 위해서 정부를 지원하는 그런 정치가 이 땅에서 실현이 될 것인가 정말 궁금해진다.

어쨌든 이런 경선이 우리나라에 정착되면 예전같이 당과 정부를 장악하여 국민을 무시하고, 독재하는 정치인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대세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흘러가고 있다. 본 기자는 경선에 참여한 후에 대전의 지역주의 표출에 대해 한탄하지 않고, 도도히 민주주의로 가는 국가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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