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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29일치 아침신문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요.

"내년 새 학기부터 각 초·중등학교의 교장이 자율적으로 방학시기를 정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28일 관련 법 조항을 '학교장이 학교여건과 지역특성 등을 감안해 휴가·휴업일 등을 정해서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개정……."

하지만 이 기사는 교육부의 탁상행정과 교장들의 분리불안증이 만들어낸 오보였습니다. 지난 해 자율방학을 실시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교육현실이 만들어낸 오보

서울의 초등학교 대부분은 이 교육부 발표가 난 지 3개월을 넘긴 2월 봄방학까지 학사일정을 제대로 잡지 못했지요. 교장협의회에서 각 학교에 자율방학 일정을 늦게 통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교무부장은 새학기 전에 학교운영계획서를 인쇄해야 하는데 발만 동동 구르고, 학년 부장은 교장 눈치만 살폈죠.

언론보도대로라면 교장이 법에 따라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서 학교운영위 심의 후 자율방학을 정하면 그만이었죠. 하지만 모든 일에서 그렇듯 이들은 교장협의회의 결정이 떨어지기만 쳐다본 것입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서울초등교장협의회(회장 남암순)는 올 초 서울 500여 개 초등학교에 한 장 짜리 업무연락을 내려보냈죠. 그 내용은 '2002학년도 교육과정일정을 확정했으니 학교에서 실행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이 업무연락에 따라 학사일정을 짰는데요. 교사들의 의견이 수렴될 여지는 이미 막혀 있는 셈이죠.

현행 초·중등 교육법 제 32조 3항은 학사일정과 같은 학교교육과정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공립의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및 특수학교에 두는 학교운영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의한다. 3항. 학교교육과정의 운영 방법에 관한 사항."

법 위에 있는 교장협의회

올 2월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은 학교교육과정계획안을 보긴 했지만, 이미 교장협의회 지침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었을 겁니다. 계모임과 같은 법외 임의단체인 교장협의회의 명령이 법보다 우선하는 학교현실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새 학기 실제 학교행정을 움직이는 힘은 교사와 아이들, 또는 교육부와 교육청 가운데 어디에서 나올까요? 놀랍게도 학교행정의 많은 부분이 학교관리자와 교장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 교사 동의 없이 교육청 시범학교를 강행하고 있는 서울 O초를 비롯한 몇몇 학교들, 중등학교의 0교시 수업 문제 등은 교사와 학부모가 동참하는 의사결정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교장 개인을 만나보면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바른 교육관을 가진 분도 있는데요. 왜 이런 분들까지 학교 관리자라는 직함을 갖는 순간 위와 같은 일을 벌이고 있을까요. 혹시 '교사·학부모와 논의해서 학교 자율로 정하면 불안하니까' 그런 것은 아닐지.

두산대백과사전은 '분리불안장애'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는 대상과 떨어지는 것을 심하게 불안해하는 증상'이라 설명하고 있군요. 현재 초등학교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학교 관리자들의 애착 대상을 크게 의심하게 됩니다.

여지껏 다룬 시리즈 1탄부터 6탄까지 '소신 있는 교장'이라면 생각만 고쳐도 쉽게 바꿀 수 있는 내용이죠.

교사와 학부모들은 분명히 박수를 칠 겁니다. 돈(교육재정)도 한푼 들지 않는 일이고요. 그런데 현실은 왜 거의 50년째 바뀌지 않고 있을까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단체들의 협조공문, 과학행사에서 보듯 해마다 넘쳐흐르는 학교 행사, 보여주기식 연구시범학교운영에 따른 '연극 수업 진행.' 이 모두 애착의 대상을 잘못 두었기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요?

선출보직제의 필연성

더구나 이 애착이 심하면 대부분 잘못된 승진 경쟁이 빚어낸 불륜으로 빠져버리는 형국입니다. 최근 불거진 경기 지역 일부 교사의 연구대회 비리 따위가 이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군요. 교장·교감 선출보직제가 불쑥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여기에도 있는 것입니다.

아래 내용은 경기 성남 은행초등학교 이상선 교장이 '선출보직제가 필요한 까닭'을 주간 교육희망에 실은 글이다. 이 교장의 '선출보직제 호소'는 교육과 아이들을 우선하는 교사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육자치시대의 필연이다

이상선·경기 은행초 교장


농경사회와 산업화 사회까지의 주류를 이어온 교육제도는 국가의 국민교육제도이다. 따라서 국가교육체제하에서는 교장과 교사는 교육의 주체가 아닌 국가의 '대리인'으로서 권한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국민교육체제는 관료중심의 교육행정일 수밖에 없었고, 그 영향으로 학교 운영 역시 민주적이고 자율적이기보다는 학교장의 획일적 지시. 명령. 전달위주의 경직된 모습에 얽매였다.

민주화와 자율화. 지방화가 진전되고, 국민과 교육 주체들의 교육권과 학습권 의식이 높아진 오늘날에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지시와 명령 감시와 감독은 더 이상 정당성을 갖기 어렵고, 교육주체들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오늘날 학교장에게 필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지혜와 참여를 모아 학교를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민주적인 리더십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학교장의 독점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교육주체들이 참여하는 공동체적 의사결정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장은 국가의 임명제보다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가 참여하여 선출하는 보직제가 시대정신에 맞는 합당한 제도이다.

또한, 새시대 정보화 사회의 기본 이념은 분권화. 특성화. 다양화. 자율화이다. 이를 담보하기 위한 교육조직의 지향은 교육자치이며 진정한 교육자치는 학교자치이다.

학교자치는 교육기본법 제5조에 규정되어 있으며 하위법인 초중등교육법에 규정된 학운위는 학교장을 초빙할 수 있게 했다.

교장초빙제가 학교운영의 민주화를 위한 소극적인 인사제도라 한다면 교장 선출보직제는 학교운영의 민주화를 확실하게 담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인사제도라 하겠다. 물론 학교별 선출방안, 교장출마임용조건, 소규모학교 문제 등을 고려하여 좀더 완벽한 제도로 다듬어내기 위한 연구와 함께 교직사회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한 노력들은 교장선출보직제도로 전환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과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교장선출보직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육자치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학교자치시대의 필연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주간 교육희망과 월간 우리교육에 실린 내용을 상당 부분 깁고 고친 것입니다. 


"학교 교육의 뿌리는 바로 초등학교. 이 초등학교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를 흔드는 주범은 누구일까요? '7死 7生'으로 나눠 다루어봅니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은 학교의 문제를 없애는 게 모범을 창출하는 길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새학기를 맞아 학부모와 교사들이 학교의 발전방향에 대해 머리 맞대기를 바라는 마음도 큽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선 눈에 보이는 것부터 찾아보자고요. 우린 혹시 생각만 바꾸면 될 일을 50년 동안 거리낌없이 해오거나 그저 지켜만 본 건 아닐까요? 

2월말부터 알아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동안 성원해주신 독자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초등교육 7사 7생 시리즈 차례>
1사=교사·학생은 배달부, 1생=소년신문 가정 구독
2사=아이들 돈으로 내는 교장단 회비, 2생=교원단체 회비는 스스로 힘으로
3사=공포의 폐휴지 수합, 3생=가정 분리수거에 맡기자
4사=3월 2일자 담임발령, 4생=담임발령은 방학 전에
5사=학교 안 청소년 단체, 5생=지역 청소년 단체
6사=있으나 마나 어린이회, 6생=어린이회를 학생자치기구로
7사=관리자의 분리불안증 7생=교육소신에 바탕한 관리자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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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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