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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삼각지에서 국방부와 전쟁기념관을 지나 한남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외국인들이 유난히 많이 모이는 거리가 있다. 이곳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쇼핑 관광의 명소 '이태원'이다. 이 거리에는 쇼핑상가와 숙박, 각종 음식점, 유흥오락 시설, 관광호텔 등의 상가 2천여 개가 밀집해 있다.

이태원에서는 하루 평균 5천여 명의 외국인들이 드나들고 있다. 80년대를 전후로 한국을 대표하는 쇼핑타운으로 급성장해온 이곳은 서울에서는 최초로 1997년 9월에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사연이 있는 거리 '이태원'

지금부터 5백여년 전 임진왜란 때, 즉 선조25년(1592년) 평양에서 조·명(朝·明) 연합군에 밀리던 고니시(小西行長)의 부대와 가토오(加藤淸正)의 부대가 용산에 주둔한 뒤 이태원동에 있는 운종사(雲鍾寺)라는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가람을 습격하기에 이른다. 왜적들은 수도하는 여승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왜군이 퇴각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조정은 운종사 여승들과 같이 왜적의 아이를 낳은 부녀자들을 벌하지 않고 이곳에다 오늘날 보육원과 같은 것을 지어 아이들을 기르게 하였다.

말하자면 '태(胎)가 다른 이방인의 집'이라는 뜻으로 '이태원(異胎院)'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항복한 왜군들이 우리나라에 귀화한 뒤 여기에 모여 집단생활을 하였으므로 이곳을 이타인(異他人)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오늘의 땅 이름이 이태원(異胎院)이 아닌, 이태원(梨泰院)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효종 때. 이곳에 배나무를 많이 심으면서 땅 이름이 동음이의어가 된 내력이다.

상권의 변천

'서울 속의 아메리카', '서울은 몰라도 이태원은 알고 온다'는 말이 유행할 만큼 이곳엔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으며,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은 반드시 방문하는 서울 속의 국제 도시이다. 이태원 상권은 각종 패션과 술집, 디스코텍 등 유흥가도 외국풍이 넘치는 색다른 분위기로 특색있는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태원은 임진왜란 시기엔 일인의 보급기지로, 임오군란 시대에는 청나라 군대가, 일제시대 때는 용산, 남영동 등이 군용지로 책정되어 조선 주둔 일본군사령부가 입지하였다. 6·25동란 이후 UN군 및 미군이 주둔하면서 주변이 기지촌화 되었다. 70년대 초반 121후송병원이 부평에서 미8군 영내로 이전하면서, 미군과 관련종사자 및 상인이 이주하면서 정착했으며 그들로 인해 현재와 같은 패션가와 유흥가를 포함한 복합적인 상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다문화 공간으로 가꾸어야

이태원은 이런 다문화 공간을 만드는 기본적으로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비록 미군에 의해 시작된 이문화공간 이었지만, 이제는 서울에 있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고 편안한 지역이다. 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이태원은 불쾌한 인상을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88년 올림픽 때 최고의 인기를 구사했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마치 동두천의 한 거리 같은 싸구려 공간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이 쇼핑 관광국으로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이곳 상인들의 자구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2천 개소에 이르는 상인 회원을 이끄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회장 김경렬)는 벤치, 공중화장실, 관광안내부스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쇼핑 안내지도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홍보에 적극적이다.

그 동안 지하철 노선을 비롯해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 상권의 발달에 걸림돌이 되어 왔으나 2000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이 개통되어서 교통이 불편한 이태원 상권으로 유입하기 쉬운 길을 터주게 되었다. 또한 6호선 이태원 역은 2002년에 열리는 월드컵 경기의 주경기장과 지하철이 연계되어 월드컵 기간 중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과 쇼핑 대상지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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