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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차기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은 저마다의 경쟁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홍보하는 방법은 물론 여러 가지.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인터넷을 이용한 멜진의 운영이 급부상하고는 있지만, 역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것은 책을 통한 것이다. 대선 주자들이 최근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갖고 자신의 저서를 알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지지자와 독자 입장에서도 한 정치인의 숨겨진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물론, 정치인들의 저서는 가볍게는 일반 에세이에서부터 무겁게는 자신의 정책적 비전을 다룬 책들까지 실로 다양하다. 점차 대선 정국의 중심으로 다가서고 있는 대권주자들의 책을 모아 소개한다.

블루 프린트

지난 1월 초순, 정몽준 의원은 자신의 이-메일 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첫 번째 웹진을 선사했다.

여야 대선 주자급의 정치인들만이 매주 고정적으로 네티즌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이런 그의 행보는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의 이니셜을 딴 'MJ Letter'의 또 다른 명칭이 '청사진'을 뜻하는 'BluePrint'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과연 정 의원의 올 한해 청사진은 무엇일까.

정작 본인은 여러 자리를 통해 "당장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만 생각할 뿐"이라고 단언하지만, 역시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은 '대권'이라는 또 다른 정치적 포석에도 쏠려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18일, 여야를 막론 대다수 인사들이 참석해 관심을 모았던 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자리에서 정 의원은 자신의 '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들은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한 연설 중에서 'I have a dream'이라고 한 구절을 기억하실 겁니다. 저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노력하면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한 본격적인 '청사진' 제시가 이번 웹진의 발행과 함께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10가지 이야기

이런 점에서 지난해 말 출판기념회를 가진 정 의원의 저서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다소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여타의 주자들같이 '희망'이나 '신한국'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노무현 고문의 경우처럼 어떤 위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 의원이 선택한 화두는 바로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이다. 새로 나온 <일본에 말한다>(김영사)는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발간된 <일본인에게 전하고 싶다>의 한국어판이다. 부제는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일본인에 주는 메시지'.

그는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 가져야 할 건전한 관계를 설정하지 못한 채 불안정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이것은 양국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2002 월드컵의 공동개최는 상호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발간 의의를 설명했다.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말고 미래를 개척하자"는 게 정 의원의 기본적인 입장이지만, 과연 일본인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부족하고 빠져 있는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의 발간 목적이 국내인이 아닌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당초 준비됐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 말한다>는 크게 양국의 과거사와 현재를 통해 일본인들의 자각과 이해를 촉구하는 '일본인에게 하고 싶은 10가지 이야기', 2002 월드컵 개최 결정까지의 뒷 이야기를 상세히 다룬 '지금에야 밝히는 공동개최 비화', 자신의 정치관과 삶의 일면을 담은 '21세기형 리더론-나와 정치'로 구성돼 있다.

'10가지 이야기'에선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의 관계 ▲왜, 일본은 주변국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가 ▲종군위안부와 역사 교과서 문제 ▲아시아통화기금 구상을 포기하지 말라 ▲일본은 큰 나라라는 자각을 가져야 등의 주제로 '일본인에 대한 충고'를 어렵지 않으면서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일제 36년과 전후 일본 정부가 전쟁의 책임 문제를 어물쩍 넘기고 명확히 청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도 한일 간에는 '반일'이나 '혐한'의 구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 의원은 이어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해 성의있는 역사인식을 통해 솔직하게 반성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하루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것이야말로 아시아의 리더로서 존경받을 만한 국가가 되는 길이다"고 충고를 던졌다.

"이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하는 한 2002년 한일 공동개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며 "지금까지 두 나라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였지만, 이제는 라이벌이자 파트너로서 함께 가는 관계로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게 정 의원의 지적.

이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제정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다.

전문 경영인 출신답게 일본 경제의 불황 탈출, 우리 IMF위기와 일본 자본 회수설, 아시아 통화기금 등에 대해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공동개최 비화

또한 "공동 개최가 결정된 과정을 그 당사자의 자격으로 기록해 두고 싶은 마음에서 굳이 이 시기에 붓을 들게 됐다"고 설명한 "공동개최 비화"부분에선 "공동개최는 가로챈 것이 아니라 한국은 당당히 개최할 자격이 있다"며 개최 결정 당시의 상황과 뒷이야기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마지막 '21세기형 리더론' 에서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간략한 인상과 아버지 정주영 전 회장에 대한 회고,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술회 등이 담담하게 담겨져 있다.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국 국회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는 대목도 있다. 이와 함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윤보선 전 대통령을 두고 "조금 더 임기가 길었으면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셨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평한다거나,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해 "등산 뿐 아니라 골프나 테니스 등 경쟁적인 스포츠를 했었다면 더욱 유연한 정치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고 지적한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박정희 전대통령을 다루는 대목에서 박근혜 의원에 대해 "한나라당의 부총재이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친의 인기와 함께 그녀의 인기도 상당히 높다"고 설명한 부분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정 의원은 권위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승만 정부에서 노태우 행정부까지를 하나의 테제라고 한다면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정부 이후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선거에 의한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뜻에서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다고 구분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혼돈과 대립을 넘어선 신테제의 정치가 요청되는 시대다"며 "제도에 의한 정치, 경제문제극복, 국민화합, 남북통일의 토대 마련 등 시대적 요청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신테제의 시기에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인간은 상대를 보고도 그 상대를 거울로 여기고 거기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 밖에 볼 수 없는 '거울형 인간'과 창 너머로 보이는 자연풍경을 보듯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창문형 인간' 두가지 타입이 있다"며 공동개최를 앞둔 한일 관계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배우는 관계로 성숙해져가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정 의원은 그 과정 속에서 창문 너머 선배·동료 정치인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꿈'이 깃들인 청사진을 만들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민주신문> 249호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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