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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 등 고위급들이 청탁과 비리 등 온갖 때국물(?)에 찌든 돈에 연루돼 연이어 구속됐던 2001년.

생활보호대상자인 한 1급 장애우가 손때(?) 묻은 돈 2만 원을 "도움만 받아 누군가 주고 싶었다"며 전달한 사실이 밝혀져 혼탁한 연말을 밝게 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2리에 살고 있는 이윤호(남. 46) 씨가 그 주인공. 이 씨는 12월 31일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월롱면 보건소의 신계숙(39. 보건주사보. 방문보건 담당) 씨에게 "누군가를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손에 꼭 쥐고 있던 2만 원을 내보였다.

처음에는 1만 원이었다. 신 씨가 "보육원 아이들 책을 사주겠다"고 하자 "그럼 1만 원이면 적다"며 1만 원을 더 내놨다.

이 씨는 이 돈을 내보이며 "20년만에 해 보는 불우이웃 돕기"라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직접 전하지 못하고 시켜서 미안하다"며 환한 웃음과 함께 미안하단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씨는 사고 전 서울 독산동에 살면서 매달 불우이웃을 찾았던 소외된 이웃들의 작은 독지가였다. 그러나 이 씨는 군제대 직후인 22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무릎 위부터 다리를 절단했고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만 건졌다.

또 사고 후 부인과 이혼하는 이중고를 겪고 한 때 실의에 빠져 알콜중독으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씨는 지금도 언어장애에다 당뇨까지 겹쳐 있는 상태고 팔순 노모가 7년 전부터 뇌졸중증으로 투병중에 있다.

또 79세 되신 아버지도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이 씨가 직접 조석으로 밥을 해 가며 노부모님을 극진한 효심으로 모시고 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4~5년 전 부터 보건담당 신계숙 씨와 적십자 등 주변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했고 큰 고마움과 함께 작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젊은 시절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다니던 기억에 '누군가'를 생각하게 했다. 이 씨는 20m만 걸어도 의족결합 부분이 헐어버릴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 또 생활보호대상자로 파주시에서 조금씩 지급되는 장애수당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월롱보건소 신계숙 씨는 "이 씨가 언어장애가 있어 처음에는 도와달라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도와주겠다는 뜻인 줄 알고는 가슴이 뭉클했다"며 "좋은 곳에 가면 한 끼 밥값도 안되는 적은 액수지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 씨의 2만 원의 가치는 요즘 세태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2만 원으로 몇 권 안되는 책이지만 아이들이 서로 돌려볼 수 있도록 보육원에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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