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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오늘부터 드디어 아르바이트 나가게 되었어요."

대학 1년생인 큰 아이가 2명의 여고 1년생의 과외 지도를 맡게 되던 날, 다소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르바이트 목적은 대학생으로서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위해서'라고 했다.

아이가 말하는 이른 바 '문화생활비'란 부모가 주는 용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기초 생활비'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즉, 신세대의 정서가 담긴 음악CD 구입비, 어쩌다 가 보게 되는 영화 관람비, 친구들과 눈 높이를 함께 하려면 구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교양서적 구입비 등 나름대로 용처가 분명한 비용들이다.

아르바이트 광고

아들은 아르바이트 과외지도를 하기 위해 그 동안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고 한다. 동네 골목 전신주에 전화번호가 적힌 전단을 마치 '종이수염'처럼 나풀거리게 붙여도 보았다. 그러나 이런 광고는 거의 실효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광고는 역시 '투자(?)'를 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대학 선배의 귀띔을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급기야 아이로서는 거금이라 할 수 있는 1만여 원을 투자해 생활정보지에 한 줄짜리 과외지도 아르바이트 광고를 냈다.

○○대학교 ○○학과 재학, 중.고생 수학.영어 책임지도. 전화.....

고교시절 비교적 성적이 좋았던 과목이라, 제 딴에는 웬만큼 자신 있다고 판단하여 내걸은 과목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한 줄짜리 '구인·구직 <과외지도>'란에도 엄격한 질서가 있었다. 재학 중인 학교 이름의 첫 글자를 '가나다라' 순으로 배열하였고, 과외 지도를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학생의 신분증이나 자격증 등 강사의 신원확인을 철저히 거치도록 안내문까지 친절하게 게재해 놓았다. 그러나 대학의 배열 순서 따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대한 학부모의 인지도가 무엇보다 선택의 기준이 되는 듯 보였다.

귀한 자식을 맡긴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며

신청한 광고가 활자로 찍혀 나오던 첫날. 잇따라 3통의 학부모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한다.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한 것이라고 아이는 좋아했다.

추측컨대, 단 한 줄의 광고를 보고 우리 집 아이를 선택한 그 학부모 역시 아이가 재학중인 대학에 대한 남다른 신뢰감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집 아이의 '실력'을 어떻게 진단하고 귀한 자식의 과외지도를 맡긴단 말인가.

그러나 조금만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러한 과외열풍의 근원은 최근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수능시험의 난이도 논란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학부모의 우려와 염려를 넘어 심적 고통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업성적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아이를 둔 학부모도 그렇다. 한결같이 안심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소위 널뛰기식 예측 불가능한 대학 입시제도 하에서는 무슨 특별한 공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온갖 지혜를 다 짜내게 되는 게 요즘 학부모들의 모습이다.

재연되는 과외 열풍

더군다나 자녀의 성적이 속상할 만치 떨어지는 경우라면 어찌 하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적을 올릴 수 있는 학습방법을 강구해 보려는 것이 학부모의 한결 같은 마음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 바 '용하다'는 점쟁이처럼, 실력이 소문난 과외선생은 인기가 높아 만나보기조차 어렵고, 웬만큼 이름 있는 대학의 인기학과 학생들도 아르바이트 과외교습으로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생활 광고지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첫째 날, 아이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학생들을 찾아갔다고 했다.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이는 고1 여학생들은 벌써부터 대학입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 학부모는 수학, 영어뿐 아니라 과학 등 또 다른 과목도 도움 주길 간곡히 당부하더라는 것이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고민이기도

나는 그들 학부모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이제 곧 고3에 올라가는 우리 집 둘째 아이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큰 아이에게 이렇게 제의했다.
"네 용돈은 이 아빠가 댈 테니, 남들 가르치려 하지 말고 네 동생이나 좀 가르쳐라!"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몇 번 시도해 보았는데 잘 안돼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형이 아우를 가르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무엇보다 진지함이 부족하다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열의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서 학식이 높았던 옛 어른들도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못하고 서당에 보낸 걸까? 학문은, 아니 '입시지도'라는 것은 사제(師弟)간이라는 어떤 공적(公的)인 관계일 때만 가능한 것이고, 가족이라는 혈육관계에서는 어째서 어려운 걸까?

가족끼리는 왜 과외공부가 잘 안 될까?

이러한 의문은, 우리 집 큰 아이가 남의 자식을 가르친다는 소위 아르바이트를 나가면서부터 나에게는 커다란 근심거리로 다가왔다. 미술에 소질이 있어 꾸준히 학원에 다니는 둘째 아이는 나름대로 특기를 살려 그에 마땅한 대학을 지망하면 되겠지 하는 단순한 믿음을 가지면서도, 보다 나은 학업 성적을 위해서는 큰 아이가 동생을 틈틈이 지도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좀처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 아비의 욕심이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두 아들이 오락 게임은 한 컴퓨터 안에서 자판기 하나로 나란히 두들겨대는 게 가능해도, 공부는 각자 해야 하는 별개의 분야로 인식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선 자신이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아르바이트 이틀째(주 2회, 밤 7시∼9시까지 2시간) 되는 날이었다. 큰 아이는 지긋지긋한 입시공부를 떠올리기도 싫다며 꼭꼭 묶어 두었던 수험서적을 다시 꺼내 온종일 공부했다고 한다. 수능시험 준비하던 당시로 돌아가 무려 4시간 이상 골똘히 학생들을 가르칠 준비를 하였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로 소위 '문화생활'을 하려던 당초 목적도 중요하지만, 성적이 낮은 학생의 실력을 웬만큼 끌어올려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우리 집 아이는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아비는 노파심에서 이런 당부를 했다.
"네가 아르바이트로 벌어 온 돈은 이 아비가 벌어 온 돈보다 몇 배 더 값지고 귀한 돈이다. 아버지로서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네가 그렇게 힘들게 벌어 온 돈을 과연 '문화생활비'로 쓸 수 있을까? 돈이 생기면, 단순하던 머리가 갑자기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대학시절의 이런 귀중한 생활경험을 큰 보람으로 알고, 모쪼록 열정과 성의를 다해 지도해주길 이 아빈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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