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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손해배상해줄 테니 현장소장 오라고 해"(북한산 도로 반대 시민연대 소속 승려)
"현장진입 금지 가처분 소송이라도 걸어야겠군"(도로 공사 현장 관계자)

8차선 고속도로가 뻥뚫린 북한산이 과연 온존할 수 있을까? 연간 3천만명의 행락객이 찾는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처 북한산 국립공원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19일 오후 공사 현장인 경기도 송추의 원각사 입구를 찾은 환경운동연합, 우이령 보존회 등 환경단체들과 북한산 내 사찰 승려들로 구성된 시민연대(집행위원장 김혜정) 인사들은 포크레인으로 패여 황토를 드러낸 숲과 전기톱으로 벌목된 나무들을 보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지난 7월 환경부가 북한산 관통 도로 공사를 허가할 때만 해도 공사가 이렇게 빨리 진척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곧바로 3군데의 공사장 중 우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포크레인을 '점거'한 후 3중으로 플래카드를 내걸고 구호를 외쳤다.

"국립공원 관통 노선 공사 즉각 중단하라"
"국립공원 우회하는 대안노선 채택하라"
"국립공원 훼손하는 도로공사 각성하라"

시민연대의 느닷없는 실력행사에 주춤한 현장 일꾼들은 일단 뒤로 물러섰고, 곧 이어 시민연대 회원들의 즉석 집회가 시작됐다. 우이령보존회의 홍철부 운영위원은 "7년 전에도 우이동 유원지와 양주군 교현리를 잇는 도로 확장 공사가 검토된 적이 있지만, 국립공원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에 밀려 기획단계에서 폐기된 적이 있다"면서 "2천만 수도권 시민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꼭 필요한 국립공원을 유지, 보존하는 것도 부족한 마당에 멀쩡한 원시림을 갈아엎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홍 위원은 또 "북한산 내 30여 개 사찰의 존폐가 걸린 상황에서 조계사에서 관련 부처에 항의만 해도 공사 저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불교계에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곧바로 S건설 관리직 직원들이 시위대의 퇴거를 종용하면서 양자간의 지루한 대치가 시작됐다.

현장 관계자: 왜 남의 사유재산(포크레인)을 점거하고들 그래요? 위험하니 거기서 내려와요!
승려: 우리 지붕 위로 길이 나는 데도 가만 있으란 말이에요?
현장 관계자: 안되겠군. (부하 직원에게) 뭣들 해? 사진 찍어. 클로즈업으로 잡으라구!
시민연대 관계자: 찍히고 싶어온 사람들이에요. 사진 찍히는 거 두려웠으면 오지도 않았어!

국립공원 내에서 벌어진 대치 국면은 논쟁의 본질에서 비껴난 엉뚱한 시비로 이어지기도 했다.

현장 관계자: 법대로들 합시다. 꼭 이래야 되겠어요?
시민연대 관계자: (현장 관계자 손에 쥐어진 담배꽁초를 보고) 아저씨, 왜 국립공원에서 담배를 피우세요? 국립공원에서 담배 피우면 벌금 30만원이란 거 모르세요? 아저씨 주민등록증 좀 봅시다.
현장: (당황하며) 여기는 공사 현장이에요.
시민연대: 국립공원 내 공사 현장에서는 담배 피우도록 허락됐나요?

결국 이날 '전투'는 시민연대 측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시민연대는 시위대를 조금씩 분산, 인근 지역에서 공사 중이던 또 다른 포크레인의 작동도 중단시켰고, 연이어 원각사 입구에서 진행되던 벌목 작업도 저지했다. 오후 2시30분경 포크레인과 전기톱 소리로 진동했던 사패산 자락은 일순 정적에 잠겼다.

시위대의 육탄저지에 밀린 현장 건설반은 오후 들어 사실상 이날 공사를 포기했지만, 공사장에서 내일부터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을 계획하고 있는 시민연대측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포크레인을 막기위해 삽날에 들어앉은 스님(사진 왼쪽).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전투'에서 이긴 시민연대, 그러나 계속되는 대치

ⓒ 오마이뉴스 이종호
'7천억원이냐. 국립공원의 보존이냐.'

북한산 관통 고속도로를 둘러싼 대립은, 국립공원 보존이 7천억원의 경비를 더 들여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느냐는 데 있다. 시민연대의 요구대로 국립공원을 보존하기 위해 북한산을 우회하는 도로를 건설하게 되면 약 7천억원에 달하는 경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도로공사가 199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130km, 일산-김포)는 200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일산-퇴계원 8차선 36.3㎞ 구간이 미개통된 상태이다. 문제는 이중 4.6㎞에 해당하는 북한산국립공원을 관통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민연대측은 고속도로가 북한산을 관통하면 인근 30여 개 사찰이 소음과 공해 등으로 시달리게 되고, 터널공사로 생기는 지하수위의 변화로 공원 내 생태계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 이 고속도로를 통해 하루 14만대의 차들이 오갈 경우 막대한 배기가스와 소음의 유출로 '서울 시민들의 녹색허파'인 북한산을 망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도로공사측은 "자동차 보유율 증가에 비해 도로 연장률이 현저히 적어 꼭 필요한 공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민연대는 그 대안으로 고속도로가 북한산을 우회하도록 변경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서울 시민들의 녹색허파가 걸려 있다"

도로공사측의 한 관계자는 "환경영향 평가 결과, '문제없다'는 평가를 받아 지난 7월 환경부로부터 공사 허가를 받았다"며 "시민연대의 요구대로 우회도로를 만들 경우 7천억원의 추가 경비가 소요되고, 훼손될 산림 면적은 현 노선보다 더 늘어난다. 재설계에 따른 공사 일정 지연 등으로 인한 손실까지 생각하면
▲길을 내느라 잘려나간 나무에서 수액이 흘러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북한산 터널 관통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 김혜정 활동처장은 "수도권 유일의 국립공원인 북한산의 심장을 뚫는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국가가 스스로 자연자산이라고 지정해놓고 스스로 나서서 파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환경단체들이 대안으로 내세우는 우회노선에 대해 비경제적이라고 말하는데,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연자산과 천년이 넘는 사찰은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이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반박했다.

시민연대는 20일경 도로공사측을 상대로 공사정지가처분신청을 낼 예정이며, 이 사업을 승인한 건교부를 상대로 사업승인취소를 요청하는 행정소송을 벌일 예정이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나무를 베어내던 포크레인을 멈추고, 그위에 반대 플래카드를 걸었다. 그 앞에는 이미 베어진 나무들이 쌓여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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