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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몇 자 적어보내면 안될까요. 인터뷰하는 건 왠지 쑥스러워서..."

그를 만나기 위해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하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통화 내내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4일 결국 대구 시내 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사진 전시회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날 사진전의 주인공은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지로 잘 알려진 충북 노근리를 답사하며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던 늦깎이 대학생 정귀분(49) 씨. 정 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낯선 기자의 방문에 '부끄러운' 내색을 지우지 못한 채 말문을 열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90년부터였을 거예요.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 연 주부대학을 다니다 사진동아리에 들어가게 됐죠. 그걸 계기로 평범한 사진을 찍다가 사진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싶어서 대학을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정 씨는 몇 해 전 대학을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아직 대학을 다니는 2남 1녀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결행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사진을 사랑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로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 씨는 자식 또래의 수험생들과 함께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내년 2월엔 졸업장을 받게 된다.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 보탬을 많이 받았거든요. 특히 남편이 많이 도와줬어요. 졸업을 앞두고 나니 그 동안 고생했을 가족들에게 고마울 뿐이죠."

하지만 정 씨가 주위의 시선을 끄는 것은 늦깎이 대학생이라는 이유 외에 한가지가 더 있다. 노근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일반인들과는 예의 다르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번 사진전 '슬픈 기억의 흔적'에 대해 물어봤다.

"뉴스에만 봐왔던 노근리와는 달리 그곳에 직접 가보니 학살 당시의 흔적이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더군요. 특히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만나면서 이 사건이 아직도 이렇게 슬픈 기억으로 우리들에게 흔적을 남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www.geocities.com/gallery1952ⓒ정귀분


사실 그가 노근리와 인연을 맺은 것에는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3월 정 씨는 가족들과 함께 친척의 결혼식을 위해 영동을 가고 있었다. 영동을 목전에 얼마 두지 않고 황간을 지날 무렵 정 씨는 시선에 들어오는 현수막 하나를 놓칠 수 없었다.

"아! 여기가 뉴스에 나오던 그곳이구나 싶었죠. 그리곤 식구들하고 차에서 내려서 이곳저곳 둘러보고는 다음에 꼭 한 번 더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노근리와 가진 첫 만남이었죠."

그후 사진학과에 입학한 정 씨는 매일 쏟아지는 과제물을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노근리를 찾았다. 그곳에서 정씨는 카메라의 초점을 노근리 현장 곳곳에 갖다 대었다. 그렇게 시작된 노근리 답사는 2년째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수없이 그곳을 찾았다. 한번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곳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씨에게 노근리는 '피사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한 1년동안은 사건이 있었던 장소만을 찍었죠. 그러다 노근리 유족회 총무님을 만나게 됐고, 그 이후에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고 그분들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노근리 사건이 마음 속에 들어오더군요. 증언을 통해서 노근리의 억울한 사연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어요."

아마도 생존자들과의 만남은 정 씨에게 노근리를 자신의 문제로 더욱 다가오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정 씨에게도 잊혀지지 않은 슬픈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결혼한 후에 시아버지를 같이 생활을 했는데 양말을 벗지 않으시더군요. 꼭 가족들이 잠에 들어서야 양말을 벗던데 나중에야 알았는데 시아버지께서도 6.25 전쟁통에 오른쪽 발가락을 잃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저의 주변에서도 여전히 전쟁의 상처로 불편하게 사시는 분이 계셨던 거죠."

ⓒ정귀분


정 씨의 사진전은 14일을 시작으로 오는 20일까지 대구 고토갤러리(중구 남산동 소재. 전화 053-427-5190)에서 열린다. 그리고 오프닝 식이 열리는 17일엔 그 동안 정 씨의 노근리 답사를 도와주었던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정은용) 가족들이 방문할 예정이다.

인류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정 씨는 이번 사진전 이후에도 노근리를 잊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노근리는 계속 가고 싶어요. 또 사진전도 서울, 부산, 청주 등 전국에서 열 계획도 가지고 있고요. 그리고 '나의 어머니'라는 주제로 사진전도 열고 싶고...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을 찍을 겁니다."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는 젊은 '아줌마' 정귀분 씨의 기분 좋은 만남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정귀분


다음은 정 씨가 쓴 '작가의 말'

[ 존재 의미를 찾아 본 사진작업을 마치면서 ]

존재하는 사물은 왜 그곳에 있는지, 그 존재하는 이유는 있는 것인지.................
충북 영동으로 가는 길목에서 언젠가 스쳐가듯 들어본 적이 있는 뉴스의 한 토막이 생각나는 "여기는 노근리사건 현장입니다" 라는 현수막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빼곡이 표시되어 있는 △○□도형들과 숫자들이 그곳에 존재하는 의미는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우리시대의 쓰라린 역사의 한 순간이 뇌리를 스쳤다.

6.25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 1950년 7월 26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작은 마을 앞을 지나는 경부선 철도 쌍굴다리에서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순박한 농민 그들의 가족, 어린이 노인 여인네들이 피난길에 이유와 명분도 모르고 집단으로 무참히 죽어간 그 날의 참상을 말해주는 탄흔과 함께 반세기 동안 침묵으로 오늘에 이른 전쟁이 남긴 슬픈 상처의 숨겨졌던 악몽이 되살아 난 흔적이다.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고 그 현장의 순간을 오늘에까지 역사적 사진으로 남겨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사진의 위대한 전달력과 기록성을 배운 나는 당시 꽃다운 나이로 몸뚱이에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고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져 생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증인들을 만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분들이 고통스런 통한의 울음을 삼키며 살아온 긴 세월은 뉘라서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다. 올바른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쓰겠다는 의지로 굳센 삶을 이어 오늘에 이르는 그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나는 노근리 사진전을 갖기로 했다.

이 사진작업을 하는 내가 여자라는 것을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는 여자이기에 쉬운 점도 있었다. 그렇게 유능한 남자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의 상처를 나는 찍을 수 있었으며 그 분들 역시 혼자서 울분의 시간만 보내며 드러내고 말 할 수 없었던 부분을 터놓고 이야기 해 주셨다. 그러기에 나는 그 분들의 쓰라린 한의 흔적을 사진으로 찍어 낼 수 있었다.

나의 작은 눈은 보았다. 약한 자를 안아주는 진솔함이 진정 힘있는 자이며 인간적이라는 것을........ 얼마나 깊이 묻어 둔 침묵의 세월인가! 억울함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평화란 무엇인가,
힘이란 무엇인가? 를 이곳에 와서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 정귀분.

덧붙이는 글 | 정귀분 사진전 소개 

2001. 11. 14 - 11. 20 대구 고토갤러리(053-427-5190)
2002. 2. 19 - 2. 24 부산 영광갤러리(051-816-9500)

초청전

2001. 12. 6 - 12. 13 청주시 문화회관
2002. 3월초 국회의원 회관로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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