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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우리 딸 도윤이가 우리 집에 놀러왔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의미의 제목으로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저희 부부는 맞벌이 부부라 딸아이를 저희들이 사는 김천과 멀리 떨어진 대구에 맡겨 키우고 있습니다. 딸아이를 낳기 전부터 양육문제로 고민해왔던 터였는데 다행히 출가해서 초등학생 아이를 두고 있는 누나가 고맙게도 양육을 자청해와서 아이를 맡겨두고 있습니다.

저희가 사는 김천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식구가 더 믿을 만해서 아이를 부탁한 것이지요. 아이를 맡긴 이후로 저희 부부는 토요일 오후면 점심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해가며 아이가 있는 대구로 갑니다. 대구에서 아이와 함께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오후면 다시 김천으로 돌아오는 쉽지 않은 일정을 매주 되풀이해야만 하지만 아이를 보러 가는 길이니까 늘 설레는 맘으로 대구엘 갑니다.

물론 이번 주처럼 예외의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향을 찾는 길에 누나 부부가 저희 집에 도윤이를 데려다주고 가는 경우인데요. 이 경우 다시 일요일에는 저희도 고향집에 들러서 그 동안 손녀를 보고 싶었던 어머니에게 도윤이를 안겨드리고 다시 일요일 오후에는 누나부부가 도윤이를 데리고 대구에 갑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 딸 도윤이가 토요일에 우리 집에 놀러 오게 된 것이죠. 밤 열시가 되어서야 일로 바쁜 매형과 누나 그리고 조카 둘, 도윤이가 저희 집에 도착했답니다. 원래 감정표현이 서투른 저도 일주일만에 보는 딸아이라 "일루와 , 아빠한테 와봐"하고 도윤이를 안아주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녀석이 아버지를 못 알아보고 고개를 냉큼 돌리더니 울음을 터트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쉽게도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고 씁쓸한 기분으로 소파에 앉아야만 했죠. 저뿐만 아니라 아내도 도윤이에게 외면 당하기는 마찬가지. 도윤이는 엄마도 못 알아보고 손도 내밀지 않고 고개를 돌려 엄마를 외면하더군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그냥 저희 고모 품에 안겨 행복해하는 딸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커피를 마시면서 저희 부부는 씁쓸하게 도윤이를 바라보고 도윤이는 조카들과 매형 품에 안겨 놀고... 그 참 기분이 아주 묘했습니다. 마치 저희 부부가 10개월 된 딸아이를 둔 남의 집에 놀러온 기분이라고 할까요? 제 자식처럼 잘 키워주는 매형부부가 너무 너무 고맙지만 매형부부를 진짜 부모로 여기는 도윤이를 바라보며 슬픈 마음이야 어디 가겠습니까?

매형부부가 저희 고향으로 가고 드디어 저희 식구만 남았지만 도윤이는 멀뚱멀뚱 주위만 살필 뿐 매형부부에게 안겨 있을 때의 행복한 미소와 웃음소리를 저희에게 들려주지 않았답니다. 다음날 아침 도윤이는 유난히 많이 울어댔습니다. 원래 도윤이는 특별한 이유 없이는 잘 울지 않고 항상 웃는 아이인데 그 날은 유난히 많이 울었습니다.

아마도 저희 가짜엄마(고모)가 눈에 띄지 않아 참 슬펐던 모양입니다.
그런 도윤이를 바라보는 진짜 엄마 아빠는 말은 안 하지만 대상도 없는 서운함을 느낍니다. 저희 부부야 도윤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죠.

사실 전까지는 일주일마다 한 번씩 보았지만 그때마다 방실방실 웃으며 저희 부부에게 손을 내밀며 안기던 도윤이었는데 이번 주는 아주 다르더라구요. 다행히 이번 주 월요일과 화요일이 가정실습(시골학교에는 농번기에 하루 이틀 학교를 쉬고 아이들에게 농사일을 거들게 합니다)이라 도윤이하고 좀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 그제야 도윤이는 저희 엄마 아빠에게 스스럼없이 안기고 제 무릎 위로 기어오르며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엄마가 눈에 안 띄면 울음을 터트리는 보통아이가 된 것이지요.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같이 타고 산책도 하고 도윤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항상 즐겁습니다.

아! 화요일 오후 이제는 도윤이를 대구에 있는 누나 집으로 다시 데려다 주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경우 저는 좀 서두릅니다. 자꾸 자꾸 미루면 더 슬퍼질 것 같았거든요. 말은 안 하지만 아내도 도윤이를 빨리 데려다주고 미장원을 간다며 억지로 서운한 감정을 다스리는 것 같더군요.

대구로 가는 차 속에서 도윤이는 내내 우울한 표정을 짓더니(아마 차멀미를 하나 봅니다) 결국은 잠이 들었습니다. 그 우울한 표정을 보는 진짜 아버지는 맘속으로 '미안하다 도윤아'하고 딸아이에게 잘못을 빕니다. 이제 겨우 또 다시 제게 재롱을 부리는 딸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제 맘도 편치 않지만 제 고모를 제 엄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딸아이도 불쌍하긴 마찬가지지요.

대구에서 곧 자신을 떼어놓고 멀리 갈 아버지의 무릎에 기어오르며 방실방실 웃는 도윤를 바라보며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떠나는 차의 후시경으로 마지막으로 도윤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 멀어져 얼굴이 희미하지만 고모 품에 안겨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며 엄마한테 배운 "손위로 들어서 흔들기"를 하고 있는 도윤이의 모습을요.

문득 중학교 시절 고향을 떠나는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절대로 마중을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고향마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어른이 되면 그리운 것을 떠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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