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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학교에 가려는 나를 어머니께서 부르셨다. "현이야 오늘 할머니 제삿날이니까 일찍 오렴. 부산고모와 서울고모 모두 오시니까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녜, 학교 마치고 바로 올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가을단풍이 붉게 물들 때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께서는 친손녀인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시고 아껴주셨다.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은 손녀가 무엇이 예쁘셨는지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시면서 맛있는 것 예쁜 것 귀여운 것들을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보여주셨다.

할머니께서는 몸이 무척 뚱뚱하셨다. 당뇨병 때문이었는데, 몸무게가 100kg이 넘게 나가셨다. 그런 할머니는 자연히 걸음도 늦으셨는데, 바깥으로 놀러다니기를 좋아하는 어린 나는 밖에만 나오면 혼자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다가 할머니 손을 놓쳐서 할머니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나 혼자 뛰어 놀라고 은행 안에 데려다 놓고는, 당신께서는 은행 문턱에 앉아서 내가 지쳐서 집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시곤 하셨다.

나에게는 고모님도 많고 고종사촌 언니도 많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언니들이 입던 옷들을 얻어 오시곤 했는데, 그랬다가 한번은 할머니에게 커다란 꾸지람을 들으셨다고 했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데 이런 옷들을 얻어 오느냐면서 가지고 온 옷들을 당장 갖다 주라고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께서 절대로 고모님 댁에서 옷을 가져오시지를 않았다고 하신다.

할머니께서는 내 머리를 빗겨 주시기를 좋아하셨다. 유치원에 갈 때면 할머니께서는 "어이고 우리 귀여운 공주 이리 안으소"하면서 존칭을 쓰시고는 빗으로 머리를 다듬어주셨다. "우리 공주 오늘은 어떤 스타일로 해 드릴까? 디스코, 아니면 두 갈래로 땋기. 아니면 생머리로...." 이렇게 꼭 물어 보셨다. 그러면 내가 말한 대로 아주 이쁘게 내 마음에 쏙들게 해주셨다.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서 척척 잘해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나는 어리광이 점점 심해졌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예, 애를 그렇게 키우면 안됩니다"라고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아이고 그만 놔두거레이 내 하나밖에 없는 손녀데" 그러시면서 "너는 어릴 때 이렇게 안자랐는 줄 아냐"라고 말씀하셔서 아버지 입을 다물게 하셨다.

유치원이 끝날 때쯤 할머니께서는 문 밖에서 항상 기다리고 계셨다. 멀리서 보고 할머니라고 소리치면, 할머니는 무거운 걸음걸이로 내 가까이에 조금이라도 빨리 오시려고 뒤뚱뒤뚱 걸어오셨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야 너희 할머니 오리처럼 걷는다'고 막 놀려대면 난 그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안 그렇게 되는 줄 아느냐고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오리 흉내를 내면서 멀리 도망을 가곤 하였다. 그럴 때면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와 나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놀러 갔었다. 할머니께서 사시던 집 근처였는데 그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이쁜 옷도 샀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도 할머니께서 집으로 돌아가시지 않으셔서 그 동네 어른들이 울산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께서 부산까지 할머니와 나를 데리려 온 적이 있었다. 좀더 커서 알게 된 일이었지만 그때부터 할머니께 치매 현상이 왔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할머니께서는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내가 유치원을 마치고 나와도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전처럼 "어이구 우리 공주"하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또 매일 빗겨 주시던 머리 손질도 해주시지 않으셨다. 그대신 이상한 눈빛으로 천장을 쳐다보시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시고, 생전 처음 보는 행동들을 하셨다.

병원에 있는 이불에다가 밥그릇이며 숟가락을 챙기셔서는 집으로 가야 된다고 하시며 문밖으로 나가는 행동을 자주 하시고, 그리고는 금방 식사를 하셨으면서도 고모님들이나 아버지께서 오시면 어머니께서 밥을 굶겼다면서 밥을 달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이런 모습에 놀란 내가 울기 시작하면 어머니께서는 할머니께서 몸이 많이 아프셔서 그런 거니까 괜찮다면서 재미난 이야기나 노래를 많이 불러드리라고 하셨다.

병원에서 얼마 계시다가 집으로 돌아오신 할머니께서는 더욱 이상한 행동을 하셨다. 드시다 만 사탕을 팬티 속에 넣기도 하시고 어머니께서 고기 반찬을 주시면 너희들은 맛있는 것 먹고 나한테는 채소만 준다고 하시기도 하고 대소변을 방 안 아무 곳에나 보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나 친척들이 오셔서 인사를 들이면 생전 처음 보는 분처럼 "어서 오세요 아저씨 아줌마"라고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겁이 나서 할머니 가까이에 가지 않으려고 하면 어머니께서 "현아 할머니께 노래 불러드려라"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동요를 불러 드리면 "어이고 우리 공주 노래 참 잘 부르재. 이렇게 노래 잘 부르는 애는 처음 본다"하시면서 제 정신인 듯 말씀하셨다.

다른 분들의 이름은 몰라도 내 이름만은 꼭 '현아'라고 불러주셨다. 이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 "평소 그렇게 귀여워하시더니만 그래서 손녀만은 잊지 않으셨네요"라고 말씀하시며 한숨을 쉬곤 하셨다.

이런 할머니께서 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얼마 안돼서 돌아가셨다. 그때는 할머니께서 나를 사랑해주신 것이, 내게 잘해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할머니께서 안 계시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제 조금씩 철이 들려고 하는 나에게 할머니와 놀던 어릴 때 추억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따뜻한 사랑으로 자리잡혀 있고 할머니께서 아프실 때 좀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게 가슴 속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교정에 들어서니 코스모스 위에 빨간 고추잠자리가 맴돌며 놀고 있다. 오늘 저녁 제사를 지낼 때 할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오빠 생각"을 꼭 불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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